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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카 대왕 전도 후원과 불교 확장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08/14 [09:21]
부파 형성과 경전결집, 법장부파 실크로드 따라 중앙아시아 중국에 전파

아소카 대왕 전도 후원과 불교 확장

부파 형성과 경전결집, 법장부파 실크로드 따라 중앙아시아 중국에 전파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08/14 [09:21]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33)

 

불교 역사 25백 년사에서 아소카 대왕의 전도선언과 후원은 불교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한국에서 불자라고 자처하는 것은 어쩌면 아소카라는 위대한 불교도 왕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인과관계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석가세존의 깨달음과 가르침이 시대와 중생들에게 맞아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당대 사회 최고 권력층의 비호가 없었다면 그런 이상적인 진리는 사장될 수도 있다. 아소카라는 왕의 귀의가 있었기에 불교가 인도 밖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 산치대탑 남문에 조각된 아소카 대왕의 사원 나들이 장면을 묘사.  © CRS NEWS

 

▲ 산치 대탑의 전륜성왕으로 묘사된 아소카 대왕의 전차가 스투파(탑)로 경배하러 가는 길을 확대한 모습.  © CRS NEWS


아소카(304232 BCE)는 일반적으로 아소카 대왕Ashoka the Great)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원전 268~232년 사이에 인도 아 대륙을 통치했다. 그의 제국은 파탈리푸트라(파트나)를 수도로 하여 서쪽으로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쪽으로는 방글라데시까지 이어지는 인도 아대륙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다. 불교의 후원자로서 그는 고대 아시아 전역에 불교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소카의 칙령에는 재위 8(기원전 260년경)에 잔인한 전쟁 끝에 칼링가를 정복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후 아소카는 칙령의 주요 주제인 담마또는 의로운 행동을 전파하는 데 전념했다. 아소카의 칙령은 칼링가 전쟁 후 몇 년이 지난 다음 점차 불교에 끌렸다고 암시한다. 불교 전설에 따르면 아소카는 수많은 사리탑을 세웠고, 3차 불교 경전 결집회의를 후원했으며, 불교 전도사를 지원하고, 승가에 후한 기부를 했다.

 

역사적 황제로서의 아소카의 존재는 거의 잊혀졌지만, 19세기에 브라흐미 문자로 쓰여진 자료의 해독 이후, 아소카는 가장 위대한 인도 황제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얻었다. 현대 인도 공화국의 상징은 아소카의 사자 주두이다. 아소카의 수레바퀴인 아소카 차크라는 인도 국기의 중심에 문장으로 채택되었다.

 

▲ 인도의 상징적 문장(紋章)인 네 마리 사자의 아소카 주두(柱頭).  © CRS NEWS

 

아소카에 대한 많은 정보는 그를 위대하고 이상적인 왕으로 제시하는 불교 전설에서 나온다. 아소카 대왕에 대한 찬사를 말하려고 하면 지면이 너무나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아소카 대왕 치세의 마우리아 왕조시대부터 건설된 산치대탑.  © CRS NEWS

  

아소카의 암벽 칙령은 그가 재위 8~9년 동안 보드가야의 보리수 순례를 하고 법을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사회 복지 활동을 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복지 활동에는 인간과 동물을 위한 의료 시설 설립, 약초 재배, 도로를 따라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었다. 이러한 활동은 인도 아대륙은 물론 그리스 왕국들에게 까지 포함한 것이다. 칙령에는 그의 재위 10~11년 동안 아소카가 불교 승가와 더 가까워졌고 적어도 256일 동안 제국을 여행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재위 12년이 되자 아소카는 담마를 전파하기 위한 칙령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그의 관리들에게 5년마다 칙령을 검사하고 담마 설법을 위해 관할 지역을 순회하도록 명령했다. 재위 14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탑 증축을 명하였다.

 

스리랑카의 자료에 의하면 아소카 대왕이 후원하는 불교전도단은 목갈리뿌따띠사 대장로 스님에 의하여 주도되게 된다. 9개 지역에 불교 사절단을 보내는데, 각 전도단은 다섯 명의 비구(승려)로 구성되며 그 가운데 단장은 한 명의 고참 장로가 이끌었다. 스리랑카로는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 비구를 다른 4명의 비구와 함께 파견했다. 아소카 대왕은 불교 전도사들을 카슈미르, 간다라, 히말라야, 요나스(그리스)의 땅, 마하라슈트라, 수완나품, 스리랑카와 같은 먼 지역으로 보냈다. 아소카 대왕은 재위 18년에 이 임무를 수행했으며 다음과 같은 전도사를 지명하여 파견했다. 

 

▲ 제3차 경전결집회의에서 아소카대왕이 목갈리뿌따 띠사 스님에게 예를 표하면서 불교전도의 의지를 전달하고 있다.  © CRS NEWS

 

마힌다 비구는 스리랑카에, 마지한티카는 카슈미르와 간다라까지, 마하데바는 마히사-만달라(현대 마이소르 지역), 락키타는 바나바사까지, 그리스인 담마락키타는 인도 서부지역으로, 마하담마 락키타는 마하라슈트라에, 마하락키타는 그리스 국가로, 마지마는 히말라야로 소나와 웃따라는 하버마로 파견했다.

 

이후 불교 승가는 부파불교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이와 같은 자료는 주로 스리랑카의 사서(史書)가 출처가 된다. 스리랑카의 편년체 역사서인 도사(島史 )Dīpavamsa대사(大史),Mahāvaṃsa에 기록된 남방불교의 설에 따르면 총 18부파로 분열되었다. 이에 비해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등의 북방불교의 설에 따르면 총 20부파로 분열되었으며, 이 계통에서는 소승20(小乘二十部)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부파 발생의 주된 원인은 계율의 해석에 관한 학설상의 차이에 있었지만, 학설보다는 지도적 장로(長老)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달랐거나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부파를 형성하는 일도 생겼다고 보는데, 법장부파는 화지부(化地部)에서 분파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중앙아시아와 중국으로 전파되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보검스님이 인도 문화계 인사와 담소하고 있다.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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