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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육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들’ 중 ‘윤회사상의 역사(2)’

정영부 | 기사입력 2023/09/01 [10:46]

‘영혼육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들’ 중 ‘윤회사상의 역사(2)’

정영부 | 입력 : 2023/09/01 [10:46]

 

▲ 130여회에 걸쳐 연재 중인 「영혼학 그 표준이론」이 ‘지식과감성 출판사’에서 최근 출판되었습니다. 독자븐들의 관심 기대합니다


윤회사상의 역사(2)

 

캐나다 원주민족 중 하나인 기트산족(Gitxsan)은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의 스키너(Skeena) 강 유역에 있는 인디언 소수민족으로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최소 10,000년 동안 그곳에 지속적으로 거주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의 원주민 영성에 따르면 많은 조상들이 다시 그 가계(家系)에 환생한다고 믿는다. 이에 대한 이안 스티븐슨의 사례연구도 상당하다.

 

나이지리아 남서부의 요루바(Yoruba)족은 조부모가 죽은 직후에 태어난 아이를 아버지가 돌아오셨다는 뜻의 바바툰데 또는 어머니가 돌아오셨다는 뜻의 예툰데라고 부른다.

 

또 호주의 원주민에게는 천상의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상징물인 무지개 뱀(Rainbow Serpent)이 있다. 이 뱀은 전생의 영혼들이 다시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 세상으로 되돌아오는 길을 상징한다. 남태평양 파푸아 뉴기니의 트로브리안드 제도(Trobriand Islands)나 솔로몬 제도(Solomon Islands), 뉴 헤브리디즈 제도(New Hebrides Islands)의 원주민들에게도 환생에 대한 믿음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영지주의와 헤르메스주의1)등에서도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교 또한 주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전래한 윤회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2)는 환생을 기본교리로 믿었다. 기독교도 예수님 생시의 유대인들은 환생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 이를 반영하여 성경 여기저기에서 윤회를 암시하는 흔적들3)이 많다. 또 기독교 초기 교부들과 기독교 내부의 신비주의인 영지주의파를 중심으로 윤회사상을 신봉하였다.4)3~5세기에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중근동에 크게 유행한 영지주의 계통의 마니교5)또한 윤회교리를 신봉하였다. 이후 유대교는 카발라를 중심으로 아직까지도 윤회교리가 그 전통을 잇고 있으나6)기독교의 경우에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받는 4세기에 이르자 상황이 바뀌어 영지주의파와 윤회론자들은 로마황제와 정통파 교부들에 의하여 거세당하거나 논박7)당하였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으로 영지주의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자행되었고 윤회론은 교리에서 배제되었으며 553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소집한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이후에는 윤회론자들 또한 이단으로 낙인찍혀 크게 박해당하였다.8)

 

▲ 이태리 산 비탈레 성당의 유스티니아누스 초상 모자이크. 그가 553년 소집한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이후에는 윤회론자들은 이단으로 낙인찍혀 박해당했다.

 

12~13세기에 프랑스 랑독 지방에서 번성하다 교황의 극심한 박해를 받고 사라진 카타리파(Cathars), 알비파(Albigensians) 등 중세 기독교 종파에서도 환생을 믿었다.9)

 

이슬람의 경우 시아파(Shiah)의 일파인 드루즈교10)와 알라위교11)도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코란에도 윤회와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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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釋>

1) 헬레니즘 이집트(BC 305~30) 시대와 기원후 1~3세기에 주로 성립된 코르푸스 헤르메티쿰에 기초하는 일군의 철학적. 종교적 믿음들 또는 지식들로, 헤르메스주의에서는 어떤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계속하여 윤회한다.

 

2) 카발라(Kabala)의 주요 주제인 길굴(gilgul)은 환생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미주 270 ‘유대교와 윤회론참조) 카발라의 경전인 조하르(Zohar)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영혼은 절대계에서 생겨났으며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서는 완성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데, 모든 영혼 안에는 완성의 씨앗이 잉태되어 있다. 만일 한 번의 생애에 완성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신과 합일할 때까지 여러 생을 계속 살아야 한다.”(8.16. ‘카발라의 인간론참조)

 

3) 신약성경이 윤회론을 긍정하고 있다는 주장

 

1. 경에서는 히브리서 9:27(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이나 루카복음 16:20-31(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에서는 분명히 환생을 부인하고 있다.

 

2. 그러나 요한과 예수님도 윤회의 법칙에 대해 암시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선 예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今世, 현생)과 영혼이 육신을 떠나간 후에 사는 내세(來世)가 있음을 말했고, 육신은 다만 영혼이 깃드는 곳일 뿐 영혼은 사람의 육신을 빌려 그 두 세계를 들락날락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 영적인 세계는 환상적인 곳이 아니라 실재하고 그가 세상에 처음 있던 곳(영혼세계)에서 이 땅으로 왔음을 알려 주고 있다. 또 예수님의 부활은 결국, 영혼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초월적인 시공간의 이동을 실현한 경우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실제로 보고 듣고 행동을 같이하면서 줄곧 기억해 낸 것은 예수님이 저세상에서 인간세상으로 온 메시아라는 것이다.

 

3. 루카 2027~40의 부활논쟁

1) 이 부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 저승에 시퍼렇게 살아있으니 최후의 공심판을 위한 부활에 대하여 의심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통 해석된다. 그러나 그런 해석보다도 이는 환생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을 전제한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도 고려하여야 한다고 본다. 사심판을 받고 저승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이삭의 하느님이요 야곱의 하느님이시며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다.” 잠자고 있은 자는 지금 살아있는 자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깨어 살아있는 사람이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이미 이승에 환생하여 살아있다. 그러니 모두가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부활논쟁의 부활은 심판을 위한 부활이 아니라 이승으로의 환생인 것이다.

2) 부활의 헬라어 αναστασις(anastasis, 아나스타시스)는 라틴어로는 resurrectiō에 해당되고 이는 영어의 resurrection이며 우리말로는 부활이다. 이렇게 번역하고 보면 부활은 환생(reincarnation)과는 다른 뜻이니 αναστασις에 그런 차이가 있었을까? 신약성경의 작성 시에 사용된 헬라어의 뜻이 예수님 말씀을 알아듣는 데 매우 중요하다. 추측컨대 헬라어의 αναστασις는 부활과 환생의 의미를 모두 가진 단어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는 전제하에 루카의 복음서 2034~38절은 다음 3)과 같이 번역할 수도 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승에 가서 거기서 죽은 이들의 환생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환생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환생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어서 저승에 잠자고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서 이승에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4. 성경에서 윤회를 직시 또는 암시하는 구절을 보면

1)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태 11:13-15)

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마태 17:11-13)

3)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누가 9:19 마가 8:27)

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요한 7:33-34)

5) 그러면 너희가 인자(the Son of Man)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요한 6:62)

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한 8:56-59)

7)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한 9:2-3)

8)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요한계시록 3:12) 이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남을 상징한다.

9)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로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요한계시록 13:10)” 이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 6:7)”는 말씀과 함께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과론을 이야기하는 성경의 대표적 구절이다.

 

(*) ‘부활의 헬라어 αναστασις (anastasis, 아나스타시스)위에, 상부를 뜻하는 접두어 ανα (ana 아나)일어서다, 굳게 세우다의 뜻을 가진 어간 ἱστημι (histemi 히스테미)가 합성된 동사형 단어 ανιστημι (anistemi 아니스테미)에서 유래된 여성 명사형 단어다. 헬라어의 어원에 따르면 하늘, 즉 하느님을 향하여 다시 일어나다라는 뜻이며 우리말로는 다시 살다라는 뜻이다. 다시 살게 된다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죽은 사람이 다시 생명을 얻어 되살아나는 것을 뜻한다.

(blog.naver.com/god_manlife/222675635118 참조)

 

4) 1. 초기 기독교와 영지주의 전문가인 프린스턴 대학의 종교학 교수 일레인 페이글스(Elaine Pagels 1943~) 등은 사도 바울도 영지주의자였다고 본다.

2. 윤회를 가르친 초기 교부들로는 2세기경 로마에 최초의 기독교학교를 설립했던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us ?~165)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150~215), 그리스의 신학자 오리게네스(Origenes 184~253), 히에로니무스(St. Hieronimus 347~420),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 등이 있다.

 

5) 마니교(Manichaeism)

 

마니교(Manichaeism)3세기에 빛의 사도로 알려진 예언자 마니(Mani 210~276)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영지주의적 종교다. 마니가 조로아스터교의 박해를 받아 처형된 후 마니교는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거쳐 4세기 초에는 로마에도 전해졌으나 그리스도교와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아 5세기 말에 이르러 거의 사라졌다. 동쪽으로는 인도 북부, 티베트 그리고 7세기경에는 중국 서부에 명교(明敎)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다. 마니교의 주요 교의는 선과 악의 이원론(二元論)과 윤회 그리고 윤회를 벗어나기 위한 영지주의적 지혜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도 젊은 시절 마니교를 믿었다. 마니교 교리를 간략히 보면 다음과 같다.

 

1. 영혼은 신의 빛의 불꽃이며 신의 일부로서 빛을 물질의 노예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물질세계에 보내졌다. 영혼은 성인들의 거룩함과 함께하면서 영적 무기로 악과 끊임없이 싸워 물질세계를 정화하고 고양하는 것이 그 의무이다.

 

2. 그러나 영혼은 악의 힘에 의해서 물질의 어둠 속에 흡수되면서 육에 갇히고 육의 욕망에 묶여 버렸다. 물질을 정복하기 위해 온 영혼이 어둠의 사악한 힘에 사로잡히면서 그 본성과 사명을 잊고 비참하고 무기력한 물질의 노예가 된 것이다. 영혼은 육의 욕망을 뿌리뽑고 물질적인 것에서 자신을 정화하려는 노력으로 육체와 윤회에서 해방된다. 이러한 노력은 마니나 예수그리스도 등 하느님의 전령이 영혼을 일깨움으로써 더욱 용이하다.

 

3. 명종 후 평범한 영혼은 물질계에 다시 환생하게 되는데 이는 육신에 대한 사랑을 떨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영혼이 성령에 대한 갈망으로 세속적 쾌락을 벗어나 신과 신의 사자 그리고 신의 교회에 헌신하여야 더 이상 물질계에 태어나지 않는다. 선하고 순수하고 의로운 영혼이 죽으면 천사들이 빛의 옷과 면류관과 화환으로 꾸며서 빛의 왕국으로 인도한다. 영혼이 빛의 불꽃으로 정화될 때 신의 빛 영역 안의 영원한 지복과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면 사악한 영혼은 마귀들에 이끌려 어둠과 불과 고통의 지옥으로 가는데 그 고통은 살아서 육신과 그 쾌락에 집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네이버 빛소리 블로그 blog.naver.com/kks12041204/222826619098 등 참조)

 

6) 유대교와 윤회론

 

1. 12세기에 저술된 카발라의 경전 세펠 하 바힐(청명의 서)은 환생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13세기의 카발리스트 모세스 데 레온(Moses de Leon 1250~1305)2세기에 활약한 랍비 시메온 벤 요하이(Rabbi Simeon ben Yohai)의 사적(事績)을 기록한 조하르(광휘의 서)는 성경의 카발라적 해석이 어떤 것인가를 나타내는 근본 경전인데 여러 부분에서 윤회론을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2. 또한 카발라는 길굴(gilgul)’에 대한 믿음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환생에 대한 믿음을 신성하고 권위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히브리어 단어 gilgul은 주기(cycle) 또는 바퀴(wheel)라는 뜻이다. 보통 윤회의 수레바퀴(bhavachakra)라고 표현하는 그 수레바퀴인 셈이다. 대부분의 정통 Siddurim(기도서)에는 이번 길굴이나 이전 길굴에서 지은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기도문이 있다. 18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인 랍비 모세 하임 루짜토(Rabbi Moshe Chaim Luzzatto)’는 그의 책 신의 길에서 길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개별 영혼은 다른 육체를 입고 여러 번 환생할 수 있고, 이러한 방법으로 이전 환생에서 타인에게 입힌 상해를 교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전 환생에서 이루지 못했던 영혼의 완성도 이룩할 수 있다.”

 

3. 환생은 오늘날 현대 유대교의 많은 흐름 내에서 祕敎적 믿음으로 널리 퍼져 있다. 18세기 초 폴란드나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대중 사이에 널리 퍼진 聖俗一如의 신앙을 주장하는 종교적 혁신운동인 하시디즘(Hasidism)에서도 환생을 믿었으며, 현재 카발라가 아닌 정통 유대교는 환생에 중점을 두어 담론하지는 않으나 환생을 유대교의 유효한 가르침으로 인정한다. 유대교에서는 유대교로 개종하는 이유를 환생의 관점에서 이해하기도 한다고 한다. 비유대인이 유대교에 끌릴 때, 그것은 그들이 전생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 루리아닉 카발라에서 환생은 불교처럼 解業이나 보속 등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적 우주관에 따른 신성한 동정심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그들은 주장한다. “길굴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천상의 계약이다. 영혼의 참된 본질은 그 안에 존재하는 신성한 불꽃(divine spark). 돌이나 잎사귀조차도 발전(rectification)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그런 혼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혼은 때때로 낮은 무생물, 식물 또는 동물로 추방될 수도 있다.” 표준이론은 解業을 발전과 진화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만큼 환생의 동기면에서 볼 때 불교보다는 카발라적이다.

 

5. 환생을 주장하는 카발라는 육체의 부활교리와 어떻게 타협하였을까?

1) 육체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주의

2) 정통 유대교리와의 조화를 꾀하는 주의 : “최후의 심판 때 개인의 영혼은 한때 살았던 여러 몸으로 나뉘며, 합일을 이룬 특정한 몸에는 영혼의 많은 부분이 그 몸으로 돌아간다.”

카발라가 정통파와의 화합을 위하여 이런 구차한 해석을 고안하였을 것은 자명하나 고차원의 祕敎라는 카발라에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환생 중의 여러 육에서 얻은 경험과 특질을 물질에 재투사하여 육의 종합판을 창조한다고 함은 어떨까?

 

7) 윤회론의 주장대로 信者가 생전에 행한 바에 따라 영혼의 내생이 결정된다면 원죄론, 구속론, 구원론, 그리스도론, 심판론 등 기독교 주요 교리 전반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또한 교황과 로마황제는 윤회론으로 인해 왕권신수(王權神授)의 이론적 근거를 잃는다. 따라서 많은 교부들은 황제와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되어 그때까지 기독교의 교리로 허용되던 윤회론을 배척하는 일에 서로 협조하게 되었다.

 

8) 콘스탄틴노플에서 소집된 제5차 종교회의에서 동로마 출신의 주교들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에 따라 오리게네스에 대한 15개 조항의 이단 선고문을 채택하여 윤회론을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9) 1. 미주 106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카타리파 살육참조

2. 엘리 크리스탈의 홈페이지(www.crystalinks.com), reincarnation 참조

 

10) 드루즈교(Duruz)는 이슬람교의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로 AD 9세기경에 시작되었다. 이 종교를 신앙하는 아랍인을 드루즈인이라고 하는데, 드루즈인은 시리아에 약 65만 명, 레바논에 약 22만 명, 이스라엘에 약 14만 명, 요르단에 약 3만 명 등 전 세계 총 130만 명이 있다. 영혼은 불멸하며 영원한 환생(타나수크, tanāsukh)을 지속한다. 따라서 죽은 뒤에도 영혼은 다음 세대에 깃들어 다시 태어나기에 최후심판도 천국이나 지옥도 없다. 심판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이루어지며 천국도 지옥도 이 지상 위에 우리 삶의 형태로 존재한다.

 

11) 알라위파(Alawites)는 이슬람교 시아파의 한 종파이며, 신자들은 시리아 지중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신도 수는 시리아 300만 명을 포함하여 약 460만 명이다. 알라위파 사람들은 그들이 원래 천국에서 쫓겨난 별이나 신성한 빛이었고, 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반복적인 환생을 겪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죄를 지으면 기독교인이나 다른 종교로 환생할 수 있고, 불신자가 되면 동물로도 환생할 수 있다고 한다(위키백과, 알라위파 참조).

 

12) 코란에 나타난 영혼의 진화와 환생을 암시한다는 구절

 

(Surah Nuh 71:17) Here, the creation of man out of the substances of the earth has been compared to the growth of vegetation. Just as at one time there was no vegetation on the earth, then Allah caused it to grow, so at one time man did not exist, then Allah created him.

(Surah Nuh 71:18)and He will later cause you to return to it and will then again bring you out of it.

(71:17) 여기에서 땅의 물질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식물의 성장에 비유하셨습니다. 한때 지구에 초목이 없었지만, 알라께서 그것을 자라게 하셨듯이, 한때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알라께서 그를 창조하셨습니다.

(71:18) 그리고 알라께서 나중에 여러분을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며, 그 후에 다시 여러분을 땅에서 이끌어 내실 것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위 구절을 인간의 창조론과 육체의 부활론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할 것이나 표준이론으로 보면 영혼의 진화론과 윤회론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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