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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불교와 바미얀 대불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11/20 [10:36]
불국토로서 영광스러웠던 과거는 사라지고 이슬람 전성시대가 돼

아프가니스탄 불교와 바미얀 대불

불국토로서 영광스러웠던 과거는 사라지고 이슬람 전성시대가 돼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11/20 [10:36]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47)

 

모든 종교가 다 그렇지만, 불교사를 연구하다 보면 참으로 뜻하지 않는 사건들이 연출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어느 한 특정 지역에서 불교가 왕성하게 발전하다가 뜻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여 급전직하하는 결과를 직면하게 됨을 알게 된다. 물론 불교의 본고향인 인도에서 불교가 생겨나서 왕성하게 발전하다가 소멸해 버리는 끔찍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도 불교가 거의 8백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다시 부흥하는 상황을 맞이했는데, 이런 종교사의 흥망성쇠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인도 북부나 중앙아시아도 한때는 불교가 석권했던 불국토였으나 지금은 거의 소멸되어 버렸다. 극히 제한된 유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대불. 쿠샨왕조 시대에 조성된 이 대불은 2001년 3월 8일과 3월 9일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운 탈레반 정권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되었다.  © CRS NEWS

 

아프가니스탄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마우리아 제국의 세 번째 황제인 아소카(기원전 268~232)의 정복을 통해서이다. 이때 불교가 함께 전해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주목할만한 유적지 중에는 기원전 2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칸다하르 근처 칠 제나(Chil Zena)의 암석 노두에서 발견된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된 이중 언어로 된 산비탈에 서 있는 비문이다.

 

▲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된 비문이 있는 칠 제나 암석 산.  © CRS NEWS

 

불교 역사상 많은 저명한 불교 승려들이 이 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 기반을 두고 수행과 전법에 매진했다. 특히 그리스-박트리아 왕인 메난드로스 1(기원전 165~130)는 유명한 불교 후원자였으며 빨리어 불교 경전인 밀린다 팡하(Milinda Panha)에 불멸의 존재로 남아 있다. 스리랑카의 역사서인 마하왕서(大史)에 의하면, “2세기 인도-그리스 승려인 마하담마락시타(Mahadharmaraksita)는 요나스의 도시인 알라산드라(Alasandra)에서 30,000명의 불교 승려들을 이끌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나스(Yonas)는 알렉산더 대왕의 식민지인 그리스 식민국가였다.

 

▲ 밀린다 왕으로 알려진 메난드로스 1세 소테르(재위:기원전165년∼기원전 130년)는 인도 북서부 사갈라를 수도로 세워진 헬레니즘계 왕조인 인도-그리스 왕국의 국왕.  © CRS NEWS

 

▲ 그리스 식민국가였던 그레코-박트리아 왕국 지도.  © CRS NEWS

 

마하왕서에 의하면 그리스 식민국가인 박트리아에서 마하담마락시타 승려는 3만 명의 비구승가를 거느리고 있는 지도자로 언급하고 있다. 이 지도자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마하투파(大塔) 봉헌식에 참석했다고 기록했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이 지역에서 불교가 얼마나 왕성하게 발전하고 있었는가를 추론할 수가 있다.

 

또한 2세기 쿠샨 승려인 로칵세마는 한나라 시대에 중국 수도인 뤄양(낙양)을 여행했으며, 대승불경을 중국어로 최초로 번역한 승려이다. 

 

▲ 그리스 승려들이 참석한 스리랑카의 대탑.  © CRS NEWS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고대 도시 발크 근처에 위치한 나바 비하라(Nava Vihara 새 절) 수도원은 수 세기 동안 중앙아시아 불교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불교가 서서히 압박을 받기 시작한 것은 7세기 경 부터이다.

 

불교는 7세기에 이슬람이 부상하면서 아랍 무슬림이 정복한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10~12세기 무슬림 가즈나 왕조 시대에 이 지역은 더욱 쇠퇴했다. 불교는 13세기 몽골의 정복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라졌으며, 14세기 이후 이 지역에 불교가 존재했다는 언급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

▲ 메스 안악 탑.  © CRS NEWS

 

인도에서 불교가 처음 형성되면서 한동안은 부처님 승단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세기가 지나면서 불교 승단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런 승단의 변화형태를 부파불교 시대로 파악하고 있다. 승단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 유지하려고 하는 보수적인 단체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영합하는 진보단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리스 식민국가였던 이 지역은 당연히 진보적인 승단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대중 진보적인 부파였던 마하상기카(Mahāsāṃghika, 대중부)의 지파(支派)였던 로코타라와다(Lokottaravāda, 설출세부)가 두드러졌다. 이 부파는 바미얀 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 중국의 인도 구법승 현장 삼장법사.  © CRS NEWS

 

중국의 인도 구법승인 승려 현장은 서기 7세기에 아프가니스탄 바미얀에 있는 로코타라와다수도원()을 방문했으며, 이 수도원 유적지는 이후 고고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마하야나(Mahāyāna 대승) 경전을 포함하여 이 수도원 컬렉션의 텍스트에 대한 자작나무 껍질과 야자잎 사본이 현장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들은 현재 쇼엔 컬렉션에 있다. 일부 사본은 간다리 언어와 카로스티 문자로 되어 있는 반면, 다른 사본은 산스크리트어로 굽타 문자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베트남 승가회 회장(총무원장)을 각 나라 대표들과 함께 방문하고 있다.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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