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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작가-기행 산문∥'천하제일 도자기, 조선의 백자'

박현선 | 기사입력 2024/01/22 [08:51]

박현선 작가-기행 산문∥'천하제일 도자기, 조선의 백자'

박현선 | 입력 : 2024/01/22 [08:51]

▲ '이삼평은 아리타의 도조임은 물론 요업계의 대은인이다' 도자기 창성 300년 기념으로 1916년 기념비를 세움  © CRS NEWS


도공 이삼평은 도자기 빚는 마을
, 아리타 사람들에게 신()으로 모셔졌다. 1658년 세워진 도산(陶山) 신사는 바로 그가 하늘에 닿은 끈기로 신의 힘을 얻어낸 곳이다. 입구에는 청화 백자로 만든 도리이 관문이 우뚝 서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지나 신사에 오르면 아리타 사람들의 도자기 역사를 볼 수가 있다.

청화 백자인 큰 물독은 순백의 바탕에 푸른 무늬 그림이 새겨져 있다. 번잡스럽지 않은 편안한 무늬의 앉음새에서 짜임새를 잃지 않은 신기한 일면을 봤다는 느낌이다. 사발 모양의 수반에 그려진 용의 얼굴에 시선이 멈췄다. 청룡이 사람들의 여망을 품고 승천을 꿈꾸는 모습이다. 노련함이 느껴지는 입수염과 콧등에 돋아난 뿔, 그리고 부릅뜬 눈매, 용두의 씩씩한 기개를 보는 내내 힘이 나게 만든다.

 

천하제일 도자기, 조선의 백자‘”

조선 시대 막사발은 이름 없는 도공들이 일상에서 두루두루 쓰기 위해 만든 그릇이다. 이 때문에 볼품이 없고 안정감도 없이 거의 찌그러져 있는 형상을 한 사발도 있다. 언뜻 보면 마치 초보 도공이 빚다가 실패한 그릇처럼 보인다. 이런 막사발이 일본에서는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 1658년 창건된 도산신사(陶山神社, とうざんじんじゃ)  © CRS NEWS

 

일본 전국시대가 막바지로 치닫던 158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야마자키 전투를 앞두고 다이와군산의 성주인 쓰츠이 준케에게 즉시 참전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그는 즉시 참전하지 않았고 이쪽저쪽의 사태를 관망하는 사이 전투는 이틀 만에 히데요시 승리로 끝났다. 명령에 따르지 못해 문책을 받게 된 준케는 사죄의 뜻을 담아 다도를 미치도록 좋아했던 히데요시에게 조선의 막사발을 찻그릇 대용으로 바쳤다. 히데요시는 그 막사발을 받고 매우 기뻐하며 준케를 용서해 주었다고 한다. 아무런 장식도 문양도 없이 어수룩하게 빚어진 그릇이었지만 일본에서는 자연미의 극치를 이룬 막사발을 존귀한 보물로 인정하고 있다.

 

도산 신사에 가면 꼭 들러야 할 장소가 있으니 바로 도조의 언덕이다. 오솔길을 따라가다 비탈진 도로를 걸어 올라간다. 산새 소리를 따라 한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훈훈한 땀 기운이 목덜미에 묻어나는데 바로 그럴 때쯤 반갑게도 도조 이삼평 비(陶祖李參平碑)”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도자기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삼평은 도자기 생산의 시조이고 요업계의 대은인임을 잊지 않기 위해 세웠다. 석축으로 제단을 쌓고 양쪽에 계단을 설치했으며 상단에는 화강석 비석이 서 있다.

 

젖은 낙엽을 밟고 서 있으려니 슬픔인지 모를 적요가 나를 엄습해 온다. 아마도 타국에서 뜻은 이루었지만, 조선의 고향을 그리워했을 이삼평 도공의 쓸쓸한 눈물이 상상돼서일까. 우리 문학인들은 도조 이삼평 비 앞에 모여 앉았다. 이삼평 도공의 그때 그 역사의 아우성 속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떠밀리다 온 타향살이의 애달픔을 생각하며 슬픔을 줄이는 데는 한숨보다 노래가 낫다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을 도공들을 생각하며 아리랑노래를 부르며 고결하신 넋을 기렸다. 불안과 위축 속에서도 굳게 살아내신 도공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 '한국도자기 문화 진흥 협회에서 기증해 설치한 작품 '  © CRS NEWS

 

아리타 마을을 굽어보니 가마를 분해해서 한국식으로 만든 담장이 눈에 띄었다. 꿈에서라도 가보고 싶은 고향을 떠올리며 만들었을 터. 그는 조석으로 그리워짐이 견디기 어려워 매일 이곳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골골이 파진 낙수 면이 입체감 있게 묵직이 흘러내렸고 힘주어 허공으로 불끈 내뻗은 기와 끝의 섬세함은 보는 이를 숨죽이게 한다. 아리타 사람들은 그때 자주 사용하던 조선말을 잊지 않고 있다. 힘들어요! 배고파요! 도와주세요! 그 시절 모습이 그려져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그 옛날, 조선은 천연자원도 없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도, 그다지 자랑스러울 것 없는 시련의 역사였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거센 정복자들과 남쪽 바다 건너 밀려오는 왜인들의 야망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조상들은 그야말로 불안과 위험 속에서 살아왔다. 일본은 식민 정책과 도발로 많은 문화재와 기술을 빼앗았고 철저하게 억압했다. 이제 한국은 우수한 두뇌, 기술로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기적도 이루어 냈다. 정녕 그것은 수많았던 고난과 시련을 해지면서 면면히 살아왔던 조상들의 저력이 지금까지 이어진 숨은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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