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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성녀’ 마더 테레사, 어떻게 빈자의 대모가 됐나

문윤홍 대기자 | 기사입력 2022/11/14 [20:00]
18살에 수녀회 입회 뒤 평생을 빈자 곁에서 헌신…교황청, 2016년 성인으로 추대

‘세계의 성녀’ 마더 테레사, 어떻게 빈자의 대모가 됐나

18살에 수녀회 입회 뒤 평생을 빈자 곁에서 헌신…교황청, 2016년 성인으로 추대

문윤홍 대기자 | 입력 : 2022/11/14 [20:00]

18살 수녀회 입회 뒤 평생을 빈자 곁에서 헌신교황청, 2016년 성인으로 추대

 

199795일 인도 캘커타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에서 87세를 일기로 선종한 테레사 수녀는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에 바쳤다.

 

테레사 수녀는 1910년 오스만제국의 위스퀴브(현 마케도니아공화국 스코페)에서 로마가톨릭교회 신도인 알바니아계 집안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아녜즈 곤제 보야지우. 집안의 영향을 받아 이 나라에서 소수 종교였던 가톨릭을 믿었다. 특히 어머니가 독실한 신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홉살이던 1919년 사업가이자 정치가로 활동하던 아버지 니콜 보야지우가 독살되는 아픔도 겪었다.

 

열여덟 살이던 1928년 아일랜드로 가서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고 이곳에서 테레사라는 영세명을 받았다. 19세기말 프랑스의 수녀이자 성인인 리지외의 테레사를 본받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1929년 테레사 수녀는 인도 제국으로 떠나 서벵골주의 캘커타(현 콜카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여학생들에게 지리와 교리 등을 가르치던 테레사 수녀는 1946년 캘커타에서 다르즐링으로 피정(避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해 조용히 자신을 살피는 일)을 가던 도중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리고 수녀회를 떠나 속세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 테레사 수녀가 세운 ‘사랑의 선교회’는 지구촌 120개 나라에서 가난한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

 

테레사의 어린 시절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매우 영민했으며 신앙심이 돈독해 12세에 인도에 가서 수녀가 되고 싶다고 했고, 18세에 마침내 수녀가 되는 것을 허락받아 고향을 떠나 아일랜드에 가서 로레타수녀회에 들어갔다. 당시 로레타수녀회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 많은 수녀들이 교육을 이수하고 파견되었다.

 

테레사 수녀 역시 인도의 콜카타에 있는 '성마리아 수녀원의 부속학교'에서 소녀들에게 1931~1947년 기간에 지리학을 가르치고 교장으로까지 승진했다.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도 미혼모와 고아들을 위한 집을 만들고 병든 사람들을 간호하고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을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집을 만들었다. 또한 나병환자들이 모여 재활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의 헌신적인 봉사와 박애를 인정하며 마더 테레사를 돕기 위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1950'사랑의 선교 수녀회'가 결성되어 세계 각국에서 기부금이 모여지고 많은 유명 인사들이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았다. 가톨릭 교단과 교황도 그의 활동을 지지했다.

 

마더 테레사는 언제나 흰색 사리 하나만 걸친 채 가난한 사람들을 돌봤고, 들어오는 기부금은 가난한 환자를 위해 썼다. 1979년 마더 테레사의 업적을 인정하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때 받은 상금도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썼다. 테레사는 죽을 때에도 더 나은 의료기술로 치료받기를 거부하고 자신이 돌보았던 환자들과 똑같이 치료받기를 원했다고 한다. 흰색 사리를 입은 성녀(聖女), 우리가 기억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인 마더 테레사의 모습이다.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마더 테레사의 뜻올 확인한 교황청은 1950년 사랑의 선교회를 정식 인가했다. 마더 테레사가 세운 사랑의 선교회는 지구촌 120개 나라에 4400여 명의 수녀와 평수사 등을 보내 장애인과 고아, 에이즈환자 등을 돌보고 있다. 그가 세운 병원과 구호시설도 전세계에 517곳에 달한다.

테레사 수녀는 검은 수녀복을 벗고 흰색 사리를 입은 채 평생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헌신했다. 흰색 사리는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고 미천한 여성들이 입는 옷이다. 심장 질환을 지병으로 갖고 있던 테레사 수녀는 199795일 캘커타의 본원에서 선종했다. 전세계가 마더 테레사의 영면을 기원했다. 장례식은 인도의 국장(國葬)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사랑의 선교회 구내 묘지에 묻혔다. 20163월 교황청은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아동 인신매매

 

20187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마더 테레사가 창립한 '사랑의 선교회' 소속 수녀들이 인신매매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인도의 매체 NDTV는 마더 테레사 수녀교회가 운영하는 '니르말 흐리다이 보육원'에서 돈을 받고 아기를 판매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육원은 미혼모나 가난한 가정에서 보내는 아이들을 돌보는 곳인데, 이곳의 수녀와 직원들이 총 4명의 아이를 판매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고 경찰에 따르면 아기는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의 한 가족에게 1700달러(189만원)에 팔렸다는 것이다. 니르말 흐르다이 보육원은 폐쇄조치가 내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팔려나간 아이들은 소아성애자나 아동 변태성애자에게 보내졌고 그 댓가로 벌어들인 돈은 바티칸 교황청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또한 이 단체를 통해 아이들을 인신매매 했다고 하는데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성녀로 추앙받으며 살아 있을 때에도 마더 테레사는 피임과 낙태를 반대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당시에도 수상소감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어떤 모습으로 마더 테레사 수녀를 기억하게 될지는 역사가 말해줄 뿐이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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