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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종교개혁과 “I love me‘’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0/16 [15:47]
화평서신

유연한 종교개혁과 “I love me‘’

화평서신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0/16 [15:47]
 
내 것이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남이 생각하는 절대적 가치가 뭔지도 생각해보는 자세가 개혁과 혁명의 시초.
내 것만 고수하며 이를 주입시키려 노력하는 행태는 반목과 다툼을 더해 줄 뿐이다. 
 
 
◈ 근래 개혁적인 교황의 행보를 보면 중세시대의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의 종교개혁이 연상됩니다. 거꾸로 가톨릭이 개신교의 부패와 권위적 자세를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역사의 반복을 느낍니다. 가톨릭의 전통관례를 파괴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과 아래로의 행보가 이어지며 많은 사람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무신론자들에게도 관용을 베푸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신을 믿지 않아도 자신의 양심을 따르면 신은 자비를 베풀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가톨릭의 핵심가치나 개신교의 교리를 뒤엎는 파격적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종교 다원주의 문제로 WCC 총회 개최를 놓고 격심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엄두도 못낼 발언입니다. 중세시대 개혁교회도 놀랄 개혁적인 선포입니다.
 
◈ 교황은 이외에도 이슬람 신자와 여성에게 사상 처음으로 세족식을 거행했으며 가톨릭에서는 터부시됐던 동성애자, 낙태에 대한 배려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성 사제의 서품에도 긍정적 태도를 갖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고 그의 권위와 위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슬람 왕비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대학생 등 일반신자들에게 불쑥 ‘깜짝 전화’를 하지만 그의 권위와 위엄은 더욱 돋보이고 겸손과 청렴성을 갖춘 종교지도자로서의 존경심이 생겨납니다. 저뿐만 아니라 진취적 개신교 성직자를 비롯한 많은 종교인, 그리고 국민의 절반인 무신론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평판입니다.
 
◈ 물론 교황의 이러한 개혁적 행보에 대한 반발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황이 가톨릭 신자인 것은 맞느냐”는 이야기까지 등장했습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는 진보 개신교계에 대한 비판과 같습니다. 보수적이기 때문에 약화되어 가는 가톨릭의 세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적 예수회 출신의 교황의 자연스런 행동과 실천으로 보입니다. 모든 개혁에는 항상 반발이 있어 왔던 반복의 역사를 보는 듯 합니다. 
 
◈ 종교가 권위와 위엄을 쌓아가며 그 속에서 안주하는 모습을 고금(古今)을 통해 많이 접했습니다. 종교뿐 아니라 세속 사회의 생리가 그러했습니다. 이를 거부하고 탈피하는 것이 개혁이고 혁명입니다. 기존의 전통가치에 집착해 타인과 타 세력을 비판하고 매도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것은 갈등과 분쟁을 초래할 뿐입니다. 내 것이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남이 생각하는 절대적 가치가 뭔지도 생각해보는 자세가 개혁과 혁명의 시초입니다. 그로 인해 종교적으로 말하는 ‘세상의 평화와 화합’이 마침내 이루어집니다.
 
내 것만 고수하며 이를 주입시키려 노력하는 행태는 반목과 다툼을 더해 줄 뿐입니다. 각 종교의 하나님 뜻이 절대적이라며 각자 포섭하고 억압하게 마련인데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고 봅니다. 세상의 화합과 평화를 파국으로 끌고 가는 것은 어느 종교에서든 진정한 ‘창조주 신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 근래 한국사회에서는 종교인․비종교인을 막론하고 가톨릭의 유연한 모습에 대한 평판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신자 수가 늘어나는 것이 이를 반영합니다. 가톨릭의 유연함에는 개혁적, 관용적 자세가 들어 있다고 봅니다. 한국적 풍속을 융화시키는 제사의식 등을 비롯해 타 종교에 그다지 배타적이지 않은 모습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난달 별세한 최인호 소설가의 인생여정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1987년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가톨릭에 귀의해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자유로웠고 유연했습니다. 하나님을 ‘엿장수’로 보았습니다. 고지식한 신자들에겐 불경스런 비유라 하겠지만 정말 자연스럽고 적합한 표현이었습니다. 자신을 엿장수 마음대로 하는 엿가락으로 비유하는데선 찬탄이 생겨났습니다.
 
그는 또한 ‘불교에 길을 묻고 천주교에 의지한’ 초종교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교적 가톨릭 신자’라고 나 자신을 부르고 싶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했습니다. 프라치스코 교황이 만인의 존경을 받는 종교지도자라면 최인호 소설가는 만인의 귀감이 되는 신자임에 틀림없습니다.
 
◈ 이번 달에는 종교지도자와의 대담으로 경국사 주지인 정산 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총무원장선거로 불교계가 한창 어수선할 때도 의연하게 자신의 연구와 구도에만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종교에 ‘I love me'를 설파했습니다. 운동하면 건강이 따라오듯 나와 내 종교를 사랑하면 남과 타 종교도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종교 때문에 타 종교를 폄훼하고 피해를 보게 하는 것은 진정한 자기사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I love me'하면 ’I love you‘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문득 김수환의 추기경 때의 ’내탓이오’ 운동이 떠 올랐습니다. 나의 마음부터 개혁함으로써 세상과 종교도 개혁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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