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한국 개신교 산실, 새문안교회의 풍수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0/27 [11:12]
복이 겹친 땅이라 간절한 기도가 닿았을까

한국 개신교 산실, 새문안교회의 풍수

복이 겹친 땅이라 간절한 기도가 닿았을까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0/27 [11:12]

유서 깊은 고궁이나 오래전 지은 건물들이 신축한 초고층 건물에 짓눌려 속앓이 하기가 일쑤인데, 도심에서 새문안교회를 에워싸고 있는 동서남북의 높은 빌딩만 한 사신사도 없을 듯…. ‘한국개신교의 어머니 교회’로 일컫는 새문안교회의 복이런가.
 
▲ 1972년 새로 건립한 새문안교회. 전통완자무늬를 가미한 한국적 모더니즘 양식으로 조선왕조 마지막 황세손 이구가 설계했다. 사진은 한때 새문안교회를 상징했던 종탑.     © 매일종교신문

수도의 심장부 광화문 네거리에 위치한 새문안교회는 전후좌우에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풍수학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축복받은 자리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42번지.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역사박물관 중간 지점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새문안교회는 한반도의 프로테스탄트교회, 즉 개신교 역사의 산실이다. 고종 24년(1887) 9월 27일 화요일 밤 미국 장로교 선교부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 목사가 14명의 한인들과 예배를 보면서 ‘우리나라 최초 예배당’, ‘한반도 효시 교회’는 비롯된다. 서구식 현대교회의 문이 처음 열리고 한국교회 역사가 잉태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심에서 남들이 건물을 지으며 내 건물에 이만큼 좋은 영향을 주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이런 지형과 지물을 조성하려 해도 이렇게 보합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연치고는 복이 겹친 거지요.”
 
새문안교회를 에워싸고 있는 동(좌청룡) 서(우백호) 남(남주작) 북(북현무)의 높은 빌딩들을 샅샅이 살펴보고 난 뒤 동아문화센터 동우 정헌주 선생이 결론짓는 말이다. 유서 깊은 고궁이나 오래전 지은 건물들이 신축한 초고층 건물에 짓눌려 속앓이 하는 걸 보아온 입장에선 뜻밖이기도 하다.
 
서울 시내에서도 풍수적으로 좋은 자리라 하여 옆 건물보다 세를 높게 내놓아도 불티나게 입주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시설 좋고 관리비가 저렴한데도 비어 있는 사무실이 있다. 청계천 옆 모 빌딩의 경우, 들어오기만 하면 부자가 된다고 소문나 세를 올려도 꿈적 않는다고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용맥에도 논과 밭을 가로지르는 천전협穿田峽과 물길을 건너는 도수맥渡水脈이 있잖습니까. 청와대 뒷산의 우백호가 사직공원의 황학정 활터에서 멈칫한 후 다시 활룡으로 살아 오른 맥이 강북 삼성병원에서 새문안교회까지 가로누운 구룡맥丘龍脈(가로누운 언덕)입니다.”
 
동우의 지세 설명과 함께 표고를 살피니 광화문 도로보다 꽤 높은 언덕이다. 평소 인파에 떠밀려 오가는 이 거리를 고갯길로 생각한 사람들이 몇이나 되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옛 경기여고 자리와 미국대사관저가 있는 건너편이 언덕을 이루면서 안산 몫을 해내고 있다.
 
“좌청룡에 해당하는 용마빌딩(옛 교총회관)과 옆 건물들이 종로 쪽에서 불어오는 북동풍을 막아 주고, 강북삼성병원이 있는 우백호는 훨씬 두툼하여 재물이 새나가는 것을 비보해 주고 있습니다. 금호아시아나빌딩이 높기는 하지만 부담될 정도는 아니며 계좌(북에서 동으로 15도)정향(남에서 서로 15도)이니 약간 비킨 정남향입니다.”
 
조선개국 초 국사였던 무학 대사가 음택이나 양택을 고를 때 주로 사용했다는 좌향이다.
 
학교, 사찰, 교회, 아파트 등을 지으면서 원용하는 것이 양기풍수인데 사람이 집중적으로 머무른다 하여 민감하게 따지지는 않는다. 사람의 집단적 생기가 사기邪氣를 눌러 음택이나 단독주택보다는 영향을 덜 받는다는 의미에서다. 오히려 사무실 집기 배치나 금고 위치 등을 선정하는 인테리어풍수에 비중을 두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서양에서도 양기나 양택풍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동우에게 “교회 뒤 북현무에 해당하는 신문로빌딩, 세종빌딩, 미도파 광화문빌딩이 너무 낮아 썰렁한 것 아니냐”고 물으니 “로얄빌딩과 변호사회관까지 겹겹이 싸고 있어 이만하면 양호하다”고 한다. 다만 남주작 위치의 세안빌딩(옛 정보통신부), 오피시아빌딩과 새로 짓고 있는 금호아시아나빌딩이 안산을 가로막은 채 내려다보고 있어 마음에 걸리지만 “내 집 앞 가린다고 층수를 내려 지으랄 수 없는 게 도시생활 아니겠느냐”고 덧붙인다.
 
“안산이 높아버리면 남에게 멸시당한다거나 위상이 손상받는 것으로 봐야지요. 하기야 신예 교회들이 무섭게 성장하는 세상에 옛 영화를 지켜낸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프로테스탄트교회의 탄생은 1517년 독일 마르틴 루터의 면죄부 비판으로 시작된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죄 있는 사람도 돈을 내고 ‘면죄부’만 사면 죄를 사함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 하여 신자들에게 이를 팔았다. 급기야는 가톨릭교회 비판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어 스위스의 츠빙글리와 칼뱅이 프로테스탄트적 종교개혁에 앞장서면서 구교와 신교로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장로교는 칼뱅신학의 핵심인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서에 의해서’, ‘만인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사제’라는 세 가지 원리를 믿음의 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후 복잡다단한 변화와 진전을 거쳐 신학이 완성되지만 성서를 정확하고 무오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예정론과 신의 영광에 핵심을 두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다.
 
개신교는 이 땅에 상륙하면서 조정의 배려와 호의 속에 별다른 충돌 없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1세기에 걸친 천주교인 도륙으로 조선과 서양 각국은 이미 긴장관계에 있었고 끈질긴 개항압력을 버텨낼 명분과 여력도 없을 당시였다. 신학자들 사이에선 유교이념과 직접적인 상충을 피하면서 의료, 교육, 사회사업으로 우회전도한 전략적 성공을 높이 사고도 있다.
 
“원래 언더우드 목사가 새문안교회를 설립한 곳은 중구 정동 13번지(현 예원중학교 운동장)였습니다. 1907년 현 위치의 염廉 정승 집을 사 지은 것으로 정승이 집을 지을 때 풍수를 소홀히 했을 리가 없지요. 현재 사용하는 건물은 1972년 건축가였던 이구 조선왕조 마지막 황세손이 설계하여 새로 지은 것으로 전통완자무늬를 가미한 한국적 모더니즘 양식으로 철근 콘크리트로 되어 있습니다.”
 
새문안교회는 ‘한국 개신교의 어머니 교회’임을 자임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정동제일 감리교회는 2개월 늦게 첫 예배를 보면서 최초의 자리를 내주고 말게 된다. 한국 개신교는 일제강점기 민족교회로 변신하며 항일운동에 적극 나섰고, 3·1독립선언 33명 서명인 중 절반이 개신교 목사와 교인이었다. 주기철 목사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여 옥고를 치르고 순교를 당하기도 한다.
 
현재 국내 개신교 세력분포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으로 신학 성향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갈려 내홍을 겪고도 있다. 한때는 구교인 가톨릭과 상호교류 없이 소원한 관계이기도 했으나 최근에 와서는 상당히 개선되었다. 여호와를 지칭하는 표기와 일반적 용어도 조금씩 달라 가톨릭은 전교와 교우, 개신교는 전도와 신자라 하여 구분 짓고 있다.
 
장로교는 목사와 장로가 대등한 지위에서 제직회를 구성하며 특히 개척교회의 경우는 더욱 철저하다. 새문안교회가 ‘이 땅에 제일 먼저 세워진 기독교 복음의 전당’임과 ‘한국의 모母교회’임을 강조하는 데는 분열된 한국장로교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구심점이 되고자 함이다. 현재 장로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공동명칭 아래 고신 측, 통합 측, 합동 측, 대신 측 등 수많은 교파가 난립해 있다. 타계한 강원룡 목사가 오래 시무했던 경동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으로 역시 장로교의 한 지파에 속한다. 최근 들어서는 장로교의 통합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어 개신교 신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새문안교회 예배당 입구 좌측에는 한때 새문안교회를 상징했던 종탑이 있다. 1893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가 1950년 배편으로 원한경(언더우드 장남) 목사가 들여와 기증한 것이다.
 
“예배당 좌측의 언더우드 기념관 앞의 제3교육관이 앞을 막아섭니다. 남향의 동사택에서 본관 건물 앞에 있는 부속건물은 운기의 내왕을 방해한다 하여 꺼리고 있지요. 나경만 갖고 새문안교회에 들러 용, 혈, 사, 수의 사신사와 동, 서, 남, 북의 사대국을 살펴본다면 도시풍수 현장학습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사에는 우연찮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잘해 보려고 시도한 일이 재앙으로 변해 위해를 끼치게 될 경우도 있다. 이럴 때마다 ‘운수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앙인은 ‘기도가 하늘에 통했다’고도 한다. 새문안교회 주변에 새로 지어진 건물들은 신자들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모두가 도움을 주는 위치에 있는 것일까.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