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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문제에서 찾는 종교의 본질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2/03 [14:59]
화평서신

죽음문제에서 찾는 종교의 본질

화평서신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2/03 [14:59]
 
◈ 만약 인간이 죽음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종교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후의 세계는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기에 더욱 두렵습니다. 제 아무리 영화를 누리더라도 인간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신이나 절대적인 힘에 기대게 됩니다. 구원과 영생, 환생과 부활의 세계를 동경합니다. 현세에서 고달픈 사람들도 내세의 행복을 기약합니다. 그래서 인간세상에는 수백만개의 종교가 탄생했고, 또한 탄생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을 위로하며 선하게 이끌어 줍니다. 


삶의 방식 바꾸는 죽음에 대한 인식


◈ 종교를 뜻하는 ‘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religio’로서,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외경과 그것을 표현하는 의례 등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종교(宗敎)라는 말은 원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불교용어입니다. 결국 종교는 초월적·절대적 존재에 대한 외경과 그에 따르는 논리와 행동방식, 의례들을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종교학자들의 분석입니다. 각 종교는 지리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나름대로 초월적·절대적 존재를 해석했습니다.

유일신이냐 다신이냐, 창조주 신의 모습을 어떻게 문자화․ 형상화시키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종교가 됩니다. 하늘나라의 존재유무와 구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부활과 윤회 등 사후세계를 보는 관점에 따라 새로운 종교 공동체가 태어납니다. 어떻게 살아야 구원 받고 천당을 가는지에 대한 교리해석에 따라 공동체가 또 다시 분화되기도 합니다. 영혼의 형태, 심지어 귀신들의 존재와 성격 규명으로 다른 종교와 종파가 생깁니다. 한 공동체였던 종교가 분화된 교파의 교조주의에 젖어 갈등과 이단시비를 벌이기도 합니다. 죽음문제를 넘어서 삶의 방향과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 궁극적으로 종교의 문제는 죽음과 사후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을 사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스럽게 보는 동양적 문화와 사후의 심판과 구원을 절대시하는 서양적 문화는 다른 형태의 종교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의식 중 가장 비중있고 엄숙한 장례의식과 절차 등 생활양식에 영향을 줍니다. 또한 포용성과 배타성 등 삶과 신앙의 자세가 틀려집니다. 종교신념을 지키기 위한 실천 방법에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 죽음 문제를 해결하려는 원초적 목표를 가진 종교가 이제는 정치·경제·사상·예술·과학 등 사회의 전 영역에 넓고 깊이 관련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원초적 영역인 기복(祈福)과 구도(求道)에서 나아가 사회를 발전, 변혁시키고자 하는 개벽(開闢)의 신앙이 뿌리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모든 종교의 공통된 지향점입니다. 개별 종교의 교리는 모두 이러한 사명을 명기하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의 교리가 절대적이라거나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어떤 교리든 절대선, 절대진리가 아닐 수도 있으며 역설적으로 절대선, 절대진리이기도 합니다. 그 좋은 교리를 진심으로 믿고 행하고 따르면 바로 절대선, 절대진리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실천인 것입니다.


종교사명 다 못해 무신론 대두


◈ 종교가 좋은 세상을 구현하는 실천을 하지 못하니 무신론이 대두합니다. 무신론이 종교의 영역인 죽음의 문제를 깊이 있게 거론하고 세상의 호응을 얻습니다. 베스트셀러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셸리 케이건 예일대 교수가 한국을 방문해 “나는 영혼과 사후 세계가 없다고 믿는다.”며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현재의 삶이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종교인보다 종교적 삶을 이야기해 국내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외에도 중세시대에는 죽임을 당했을 발언들이 설득력있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만들어진 신’을 펴낸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걱정 말고 인생을 즐겨라”라는 무신론 광고운동을 펼쳐 9·11사태 이후 기독교 근본주의, 이슬람원리주의 등 근본주의들이 야기한 전쟁과 테러 등에 대한 반발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시켰습니다. 프랑스의 알랭 드 보통은 에세이 ‘무신론자들을 위한 종교’를 통해 철저한 무신론자가 오히려 종교의 효용성을 부각시키는 발언으로 포용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 그러나 그런 무신론들이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시 종교가 근원적인 죽음문제로 돌아가, 원초적인 종교의 의미를 되새겨 봄으로써 종교의 본질을 회복해야 된다고 봅니다. 창조주 신을 향한 종교의 지향점은 하나임을 재인식할 때 종교간, 종파간 이해와 화합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이 세상에서 천국을 이루고자 하는 사명도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그 방식을 놓고 진영을 나누어 갈등과 다툼을 벌이는 모양새는 좋지 않습니다. 제각각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세상을 지옥처럼 만들고 있는 게 요즘의 현상인 것 같습니다. 이제 패를 가르는 지나친 사회참여보다는 차분히 종교의 근원적인 문제인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종교의 본질을 회복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 천국같은 세상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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