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사명대사 추계향사 준비로 분주
밀양 표충사(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23번지)는 사명대사의 영정이 모셔진 사찰로 유명하다. 지난 9월2일 신임주지로 도원법기(道源法機)스님이 취임했다. 법기스님은 통도사 극락암, 문경 봉암사 선원에서 수십 안거를 성만했으며, 젊은 시절 대만에 유학하여 중국어에도 능통, 세계불교승가회 이사로 오랫동안 활동해 오고 있는 조계종 국제통 스님이다. 법기주지스님은 취임하자마자 10월2일 봉행되는 사명대사 추계향사 준비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데,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이끌고 왜적을 물리치고 일본에 잡혀간 포로들을 귀환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신 승병의장(僧兵義將)이셨다. 사명대사는 1592년(49세 때) 의승병을 모집하여 평양에 도착, 의승도(義僧徒) 대장으로서 유성룡과 도총섭 서산대사의 휘하에서 승병을 이끌고 전투에 임했다. 다음 해에 평양성을 탈환한 전공으로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인 당상관직을 제수 받았다. 1594년에는 일본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와 두 차례 회담을 하고, 적정을 정탐하고 상소를 올려서 강화(講和)와 토벌(討伐)의 장점과 단점을 논했으며, 정3품 절충장군 점지중추부사직을 제수 받는 등, 왜적을 물리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사명대사는 또한 팔공산성(대구),약견산성(경남합천),용기산성(가야산 성주)을 수축했다. 1597년(54세 때)에는 가토 기요마사와 회담을 하였고, 울산성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여러 전투에서 승병을 이끌고 큰 공을 세웠다. 1603년(60세 때)에는 임란 때 파괴된 통도사 사리탑을 중수하고 금강계단을 복구했다. 사명대사는 1605년(62세 때)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첫 대면 후에, 외교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서 조선인 3천여 명을 송환해 왔다. 1606년(63세 때)에는 스승 서산대사가 입적하자 대상(大喪)을 치루고 궁궐수축을 마쳤다. 이에 조정에서는 공로로 정2품 형조판서 의금부사직을 제수 했다. 1608년(65세 때)에 선조임금이 붕어하자, 해인사로 물러갔으나, 광해군의 명령으로 승병들을 이끌고 북변을 방어했다. 사명대사는 1610년(67세 때) 8월 26일 열반에 드셨다.
원래 표충사(表忠祠)는 밀양시 영축산에 있던 백하암 자리에 있었으나, 병자호란으로 폐허가 되자, 1714년(숙종 40)에 복원하였으나 산세가 옹색하고 길이 험하여, 1838년(헌종4)에 사명대사의 8세 법손 천유(天有)스님이 예조에 보고, 부사 심의복의 도움으로 1839년에 영정사가 있던 현재의 자리로 옮겨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 표충사는 대광전(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과 향교와 서원 등이 있어서 유교와 불교를 합쳐 놓은 듯한 모양새를 갖게 되었다. 한편 1742년에는 사명대사의 비석(密陽表忠祠松雲大師影堂碑銘幷序)을 세웠는데, 나라에 큰 일이 있으려면 비석에서 땀이 나는 신비함을 보이고 있다. 신임주지 도원법기스님은 취임 후 첫 행사로서 사명대사의 추계향사를 봉행하게 되어서 주지소임을 잘해보라는 사명대사의 경책으로 알고 이번 추계향사를 잘 모시겠다고 하면서, 앞으로 표충사가 사명성사 호국성지(四溟聖師 護國聖地) 도량으로 큰 역할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번 추계향사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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