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평화(平和)는 나로부터 시작 된다

원영진 | 기사입력 2016/11/22 [06:01]
“스스로 가정과 사회의 빛과 소금이 돼야한다.”

평화(平和)는 나로부터 시작 된다

“스스로 가정과 사회의 빛과 소금이 돼야한다.”

원영진 | 입력 : 2016/11/22 [06:01]
스스로 가정과 사회의 빛과 소금이 돼야한다.”
 
한 작가가 깨달음을 얻으러 인도로 떠났다. 이름난 영적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얻고 명상센터를 찾아 마음의 수행을 익혔다. 그러나 깨달음은 심오한 경전이나 가르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찾아 방황하는 그 순간 속에 있었다고 했다. 지저분한 먼지 밑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발견했고 무질서 속에서 거대한 삶을 움직이는 질서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부딪히는 삶의 수많은 문제 속에서 진정한 자아의 삶이 깃들어 있음을 알았다고 고백한다.
 
우리의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극우, 극좌, 보수와 진보 부딪침이 칼날 같이 날카로워 진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긴 벽, 여와 야의 끝없는 갈등, 북한 공산주의와 남한 민주주의 대립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이기적인 자기 우물 지식으로 이루어진 가달된 뇌의 고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내 지식이 이기적인 사고에 몰입되면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내 주장이 옳고 상대는 무조건 그르다. 나를 따라야 진리이고 내 말이 항상 옳다.
 
젊은 시절 영생한다고 큰 소리 치는 교주를 만났다. 그는 자기는 영생한다고 긴 이론을 전개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나를 설득했다. 나이가 지긋한 터라 예의로 들어주다가 하도 어처구니없는 해괴한 말을 하기에 한마디로 말했다. 영생한다는 당신이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단정하며 일설을 가했다. 그는 깜짝 놀라 무슨 말이냐고 반문했다. 나는 그에게 마치 그의 앞니가 빠진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이를 보라 벌써 이가 빠져 죽어가고 있지 않느냐 머리는 흰머리가 보이고 깊은 주름이 죽음에 이르는 증거라고 했더니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수년 후 그는 사망했으나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아직도 영생한다고 거리를 외친다. 이기적 자기 편견에서 오는 일종의 마음의 질병이다. 그 마음의 질병이 무수히 번져가고 있다.
 
한 작가의 깨달음이 수많은 방황과 고난 속에서 자기스스로에서 깨달음을 얻듯이 진정한 세상의 평화는 지금 나로부터 시작됨이다. 나의 부끄럼 없는 정의와 선행이 평화를 안긴다. 세상에 무지를 보지 말아야 한다. 편협한 진리와 대중은 스스로의 자아(自我)를 잊게 하고 본성(本性)은 아득함 속으로 묻히게 한다.
 
공자는 “군자의 덕(德)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풀은 바람이 불면 바람에 쏠려 따르게 마련이다.” 라고 했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는 덕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심이다. 덕이 없는데도 복종하는 자가 많으면 반드시 스스로 멸망하고 만다는 경고도 생각하게 한다. 시골 마을에 가장 나이 많은 연장자가 웃어른이 되어 마을의 정사를 폈다. 마을의 안녕과 질서를 순리로 다스렸다. 그를 마을의 장로(長老)로 모시고 칭송했다. 그 장로는 덕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자덕(慈德),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다함없는 정(情)이다. 그런 정을 목민관이 백성들에게 베풀어야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존경할 만한 장로도 국가의 존경받는 지도자도 없다. 모두가 제가 잘나서 부모도 스승도 부인하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함께 떠밀려 가면 같은 무리일 뿐이다.
 
스스로가 세상에 부끄럼 없이 바로 서고 스스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돼야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로부터 훈훈한 가슴에 얼굴에는 미소로 세상을 보이자. 내 마음의 평화로움이 가정을 안정케 하고 그 가정이 사회의 한부분에 안정을 그리고 사회를 넘어 민족과 국가의 평화를 이루어 냄이다. 내 자신으로부터 평화로움이 시작되지 않으면 사회와 민족 국가의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환란과 시련이 있어도 지금 나로부터 세상의 평화(平和)가 시작된다. 세상이 내게 평화를 주기를 바라지 마라. (단군정신선양회장·전 대종교 총전교)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