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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정토삼부경의 『효』사상③
『부모은중경』과 달리 극락정토 태어날 중요한 덕목으로 효를 가르친 『정토삼부경』
기사입력: 2020/02/19 [20:5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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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순서>

정토신앙은 샤머니즘으로 모든 종교 이해하는 한민족에게 가장 잘 수용된 불교신앙

정토삼부경-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극락정토에 태어날 중요한 덕목으로 효를 가르친 정토삼부경』    

▲ 극락세계 표현한 ‘영천 은해사 괘불탱화’    

 

정토삼부경의 수용-불교의 효는 어디까지나 서로 예배하는 부처로서의 관계

 

불교는 붓다께서 처음으로 이룬 종교로서 불법을 깨닫고 그 깨달은 내용을 가르침으로 성립된 종교현상이다. 그것이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나타나서 불교로 대체로 84천의 법문이라고 한다. 이것을 다시 대승경전과 소승경전으로 나누고 또 붓다가 직접 설했다는 경전과 이와 같은 경전을 중심으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새롭게 찬술되었다는 위경으로 구분된다. 대승경전 가운데 대표적인 경전인 반야삼매경과 함께 정토삼부경(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이며 대승 불교에서는 정토신앙이 불교 기본신앙으로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정토신앙 중에는 미타정토, 미륵정토,약사정토, 반야정토 등의 구별이 있으나 정토사상하면 미타정토사상이 기본이다.

 

불교에서는 이상적 공간으로 아미타부처가 건설하고 머물고 있다는 극락정토가 있다. 이곳은 과거 법장비구가 극락정토를 세운 원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정토삼부경에서 극락 가는 길을 살펴보면 법장비구가 붓다에게 자신의 성불을 이루고자 할 때 48서원이 먼저 이루어진 이후 선택할 것을 말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선인도 악인도 현명한 자도 어리석은 자도 남녀노소 구별없이 나의 본원력을 믿고 따르는 자는 모두 다 반드시 구제하여 현생불퇴의 자리고 왕생이 시작되며 죽어서는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하여 급기야는 성불을 이루어 주리라 만약 이일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나는 부처가 될 자격이 없으니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법장비구의 이와같은 서원은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모든 붓다의 성불인연을 의미한다.

 

법장비구가 말하고자 하는 48원 가운데

 

1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모든 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저의 불국토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울 때, 그들의 임종 시에 제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그들을 마중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다.

 

2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저의 불국토(극락세계)를 흠모하여 많은 선근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우리나라에 태어나고자 마음을 회향(回向)할 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법장비구가 세우고자 하는 불국정토 청사진을 살펴보면

 

한없이 넓고 청정 미묘하여 비할 데가 없으며, 또한 그 나라는 영원불멸하여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쇠미하지 않은 극락의 정토이다. 정토에 태어나는 것은 윤회하는 것과 같이 태어나 죽고, 다시 태어나는 생이 있는 세계가 아니고 열반, 해탈을 체득하기 위해 태어남이 없는 무생의 생이다.

 

법장비구의 발원으로 건설한 정토세계를 붓다의 설명으로 살펴보면

 

그 불국토는 금· · 유리· 산호· 호박·자거· 마노 등 칠보로 땅이 이루어지고, 그 넓이는 광대하여 끝이 없으며, 그곳 온갖 보배들은 서로 빛나서 한량없이 찬란하고 미묘 청정하게 장엄 되있다. 시방세계의 어느 세계보다도 뛰어나게 훌륭하니, 그것들은 모든 보배 중의 으뜸으로서, 마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보배와도 같으니라.

 

또한, 그 국토에는 수미산과 금강철위산 등 일체 산이 없고, 바다나 강이나 시내나 골짜기 우물 등도 없으나, 보고 싶어 할 때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바로 나타나니라. 그리고 지옥과 아귀와 축생 등의 괴로운 경계도 없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도 없으니,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항시 온화하고 상쾌 하느니라.

 

또 붓다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그러면 그대는 야마천(夜摩天)으로부터 색구경천(色究景天)까지의 모든 천상들은 모두 어디에 의지하여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무량수불(아미타불)의 불국토인 극락세계에는 칠보로 된 갖가지의 나무가 온 세계에 충만하여 금으로 된 나무, 은으로 된 나무, 유리나무. 파려나무. 산호나무. 마노나무. 자거나무들이 있는데, 혹은 두 가지 보배로 되고 혹은 세 가지 보배에서 일곱 가지 보배가 합하여 이루어졌느니라......극락세계에 있는 인간이나 천신들이 이 보리수나무를 보면 삼법인(三法忍)을 얻게 되는데, 첫째는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마음이 안온한 음향인(音響忍)이요, 둘째는 진리에 순종하여 법대로 행하는 유순인(柔順忍)이며, 세째는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니라.......아난아, 저 극락세계의 강당과 절과 궁전과 누각들은 모두 칠보로 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저절로 변화하여 이루어졌으며, 진주와 명월마니주로 엮은 보배 그물로 그 위를 덮었다.

 

부처님께서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만 억의 불국토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는데, 그 이름을 극락이라 하느니라.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그 명호(이름)를 아미타불이라 하며, 지금 현재도 그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사리불아, 그 나라 이름을 어찌하여 극락이라 부르는가 하면, 그 나라의 중생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고 다만 모든 즐거움만을 받으므로 극락이라 하느니라.“

 

붓다의 상세한 설명을 들은 아난이 붓다에게 정토에 태어나는 길을 묻는다.

 

붓다는 아난에게 그길을 알려주고 있다.

 

누구든지 무량수불(아미타불)의 명호(名號)를 듣고 기쁜 마음으로 신심을 내어 잠시라도 지성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이는, 그 부처님의 원력으로 바로 왕생(往生)하여 마음이 다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에 머물게 되느니라. 그러나, 오역죄를 범한 자와 정법(正法)을 비방한 자는 그럴 수 없느니라."

 

오역죄와 정법을 비방한자는 제외하고 지극한 믿음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오역죄는 5, 5무간업이라고도 한다. 불교에 대한 5종의 역적중죄 1)소승의 5살부(殺父)살모(殺母) 살아라한(殺阿羅漢) 파화습승(破和合僧) 출불신혈(出佛身血) 혹은 12를 합하여 1로 하고, 다시 제5의 파갈마승(破羯摩僧)을 더하여 5로 한다. 2)대승의 5: 탑사(塔寺)를 파괴하고 경상(經像)을 불사르고,3분의 재물을 훔침 삼승법(三乘法)을 비방하고 성교(聖敎)를 경천하게 여김 스님네를 욕하고 부림 소승의 5역죄를 범함 인과의 도리를 믿지않고 악구(惡口),사음(邪淫)등의 10불선업(不善業)을 짓는 것(운허 용하,불교사건,동국역경원,1985,p.615)

 

그 곳에 갈 수 있는(태어날 수 있는) 사람으로는 효를 강조하고 있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이는 첫째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모시며 자비심으로 실행하지 말고 열 가지 착한 업을 닦으라, 둘째는 삼귀의례를 받아 지니고 여러 가지 계를 지키며 위의를 업무 수행하지 말아라, 셋째는 보리심을 발해서 극락정토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제일은 효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물직절 효뿐 아니라, 부모들이 가르쳐 충고하면 눈을 부릅뜨고 말대꾸하며,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거역하며 반역하느니라, 비유하면 원수와 같이하여 자식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부모의 은혜도 모르고, 스승과 친구의 의리는 사람까지 포함시켰다.

 

다섯 번째 음주의 악으로 술에 빠져서 좋은 것만 즐기고 음식에 절제가 없어 여러 가지 혼란과 허물을 막기 위해 설한 것이다. 음주에 대한 경계는 단순히 이 경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선생자경, 제법요집경, 보살행방편신통변화경등 여러 경전에 자세하게 있다. 술의 패해는 참된 사람을 죽이려 하고 화합된 승가를 분열시키려고 하며 부모, 형제, 권속 등을 해치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불교에 가르치고 있는 효는 넓어서 깨달음을 통한 소위 사생자부(四生慈父)가 되는 것이며 불교의 효가 지향하는바 일체중생을 받들고, 더구나 나의 부모뿐만 아니라 타인의 부모라도 윤회의 과정에서 나의 부모가 되었을 지도 모를 가능성을 깊이 통찰하여 진실한 자비를 실천할 때, 효는 더욱 깊이가 있을 것이다. 마음을 중요시하여 행하는 것으로 물질적 봉양보다 정신적 위안을 앞세우며, 평등한 원리에 전개되며, 내세관을 가진다.

 

불교에서 부모와 자식의 인연 관계는 자신의 전생업에 따른 인연으로 자신에게 책임을 두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에서 부모를 만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 부모를 골라 그것을 인연으로 해서 태어났다고 한다. 즉 부모가 마음대로 자식을 낳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골라 전생의 업을 인으로, 부모를 연으로 해서 태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불교의 독자적 인생관이며 연기사상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효는 어디까지나 서로 예배하는 부처로서의 관계에 선 것이었다. 효란 물론 자식이 부모에 대해 가지는 보은의 사상이고, 행위지만, 한편 이 효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자애와 예경을 의미하는 윤리였다. 즉 윤회설과 연기설에 바탕을 두는 불교의 효 사상은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직접적인 조건을 제공해 준 지금의 부모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최상의 효도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일체중생이 전생에 내 부모였다는 윤회사상에 근거하여 모든 존재를 자비와 선행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점에 불교 특유의 효 사상이 있다고 할 것이다.

 

불교적 효행은 일체중생을 나의 부모와 같이 여기는 동채대비사상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대해 붓다의 가르침은 서로 상호성을 가지며 자식이 부모에 대한 보은 사상으로 나타난다. 또한 불교의 효 사상은 현세적인 물질적 정신적인 부모봉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윤회 속의 고통과 괴로움을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삼세적 효행이다. 더 나아가 효행 대상이 나의 부모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을 나의 부모와 같이 여기는 동채대비사상으로 불교적 효행은 그 가치와 완성을 이룬다.

 

불교의 효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며, 윤회를 통해 자식이 부모가 되고 부모가 자식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다생의 반복을 통해 일체의 남자는 아버지요, 일체의 여자는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식으로 형성된 부모은중경에서 설명되고 있다.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가시다가 마른 뼈 한 무더기를 보시자 다섯 활개 땅에 던져 마른 뼈에다 절을 하셨다. 이때 아난 등 대중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삼계의 큰 스승이시며 사생의 인자한 어버이시어서 많은 대중들의 공경을 받으시거늘 어찌하여 이 마른 뼈에다 절을 하시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비록 나의 우두머리 제자로서 출가한 지가 오래되었건만 아는 것이 넓지 못하구나, 이 한 무더기의 뼈는 혹시 나의 전생의 할아버지이거나 부모일 것이기에 절을 하였느니라,

 

육도집경43,섬도사본행 부처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면

 

붓다가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전생에 모든 부처님을 받들고 지극히 효행을 하였기 때문에 덕이 높아지고 복이 융성하여져서 마침내 하늘 중의 하늘로서 삼계에 홀로 서게 되었으니라, 그때 섬이란 자가 바로 나였으며 국왕은 아난이었고 섬의 아버지였던 자는 지금의 나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였던 이는 나의 어머니이고, 하늘의 제석은 미륵이었느니라

 

윤회는 돌고 도는 것이다. 말 그대로 바퀴가 돌 듯, 지금의 인간관계가 전생, 혹 내생에 어떤 인연이었는지는 알 수없다. 전생에 부부, 부자, 형제, 자매일 수 있다. 지금의 인연만 생각한다면 상대에게 섭섭하게 할 수 있지만 불교에서는 그럴 수 없다. 한번의 죽음으로 모든 인연이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것이 불교에서 보는 세계관이다. 그것은 불교에서 나이가 어린 사람의 죽음 앞에서 예를 갖추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본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아사세 태자와 빈바사라왕 그리고 위제희 부인 세 명에 얽힌 과거의 인연이 금생에 이와같은 악연으로 이어졌다. 빈비사라왕이 뒤를 이을 자식이 없어 고민하였다. 신에게 기도하였지만, 영험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왕은 점치는 사람에게 상담을 하게 된다. 점치는 사람은 산중에 한 사람의 신선이 있는데, 오래지 않아 죽지만 삼 년 뒤에 다시 태어나 왕의 자식이 될 것입니다.”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지만 과인은 이미 나이를 먹어 도저히 삼 년을 기다릴 수 없다며 신하를 통해 신선에게 왕을 위해 빨리 죽기를 청한다. 왕의 부탁을 따를 수 없다는 신선의 말을 전해 들은 왕은 그의 목숨을 끊을 것을 말한다. 죽음에 임한 신선은 유언으로 나는 아직 수명이 남아있는데 왕 때문에 죽는다. 만약 내가 왕의 자식으로 바뀌어 태어나면 반드시 원수를 갚을 것이다.”라고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후 위제희 부인은 임신하였다. 점술가를 통해 전해들은 아이와 빈바사라왕, 위제희 부인과 관계는 왕을 위해 좋지 않다는 소식이다. 왕과 부인은 공모하여 태어나는 순간 아이의 목숨을 거두는 일을 벌인다. 그러나 아이는 무사했다. 후일 두 사람이 원치 않았던 아사세 태자가 왕이 된다. 그리고 신선으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 품었던 일을 벌이게 된다. 이것이 왕사성의 비극이다. 제바달다가 알려준 아사세 태자의 탄생 비밀, 후계자를 만들기 위한 피의 서막 왕사성이란 무대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빈바사라왕, 우제희 부인, 아사세 세자, 제바달다) 모두 죄의 경중을 논할 수 없다.

 

내 생에 원수로서 서로 해치는 허물이란 세간의 부모와 자식 사이다. 금생에 있어서 원한의 마음을 일으켜 미워하고 질투하면 다음 세상에서는 큰 원수가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부모와 자식, 형제, 부부, 가족, 일가, 친척 간에는 마땅히 서로 공경하고 사랑해야 하며 미워하고 시기하지 말지니, 있든 없든 서로 도와서 탐하고 아끼지 말며, 말과 얼굴은 항상 부드럽게 하여 서로 다투고 다투지 말아야 한다……. 다음 생에는 더욱더 심해져 원수가 된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연이 아니다. 그러나 전생에 심어놓은 인과에 의해 악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빈바사라 왕, 아사세 왕, 위제희 부인 이들은 복수를 다짐한 선인에 의해 왜곡된 부모, 자식으로 만나고 있다. 좋은 인연과 전생의 원한을 갚으려는 악연으로 만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기에

 

붓다는 태어날 때는 혼자이나, 전생에 원한이 있으면 서로 같은 곳에 태어나서 보복하여 마지않으며, 그 악업의 종자가 다하기 전에는 서로 떠날래야 떠날 수도 없느니라

 

처자를 버리고 부모를 모시지 않으며 머리를 자르고 후사를 끊는 불교의 전통수행법이다. 연구자의 의견과 유교에서 주장하는 불교의 특징으로 멸인륜(滅人倫), 무군(無君), 무충(無忠), 무효(無孝)를 근거를 통해 불교가 효와 거리가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출가와 재가로 나눠 있으며 재가인들에게 극락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효를 통한 것을 보고 있다.

 

붓다는 아미타경에 극락세계 교주 아미타불과 그곳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하고 있다. 아무런 괴로움이 없고 다만 즐거움만을 받으므로 극락이라고 한다. , , 유리, 파려 등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졌고 천상에는 음악이 흐르고 극락세계에 들어가는 길은 어느 누구든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이미 발원하였거나, 이제 발원하거나 또는 장차 발원한다면, 그들은 모두 위없는 바른 진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극락세계에서 벌써 왕생하였거나, 이제 왕생하거나 또한 장차 왕생할 것이니다.

 

마가타국의 왕사성에 아사세라 하는 한 태자가 제바달다라는 나쁜 벗의 꼬임에 빠져 아버지 빈바사라왕을 일곱 겹의 담으로 둘러싼 깊은 감옥에 가두어 놓고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한 사람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였다.

 

붓다가 위제희 부인에게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세 가지 복을 닦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첫째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섬기며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말고 지성으로 십 선업을 닦는 것이다.

 

사리불아, 그대 생각에 저 극락세계의 부처님을 어찌하여 아미타불이라고 부르는지를 아느냐? 사리불아, 저 부처님의 광명은 한량이 없어서, 시방세계의 모든 나라를 두루 비추어도 걸림이 없으니, 그러므로 무량한 광명의 부처님(無量光佛) 곧 아미타불이라 하느니라. 또한, 그 부처님의 수명과 그 나라 사람들의 수명이 한량이 없고 끝이 없는 아승지겁이니, 그러므로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無量壽佛) 곧 아미타불이라 이름하느니라. 사리불아,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신 지는 이미 열 겁(十劫)의 세월이 지났느니라.

 

위제희 부인이 붓다에게 묻는다.

 

당신(붓다) 사후 남아있는 우리는 극락세계를 볼 수 없다.

 

붓다는 친절하게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부인은 잘 모를 일이나 아미타불은 결코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인은 마땅히 마음을 가다듬어, 청정한 업으로 이루어진 저 극락세계를 자세히 관찰해 보시오. 나는 지금 부인을 위하여 널리 가지가지의 비유를 들어, 다음 미래 세상의 모든 중생들도 청정한 업을 닦아서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세 가지의 복을 닦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첫째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섬기며 차비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말고 지성으로 선업(善業)을 닦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처님과 불법과 성인네 등 삼보에 귀의하여 여러 가지 계율을 지키며 위의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위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보리심을 내어 깊이 인과의 도리를 믿고 대승경전을 독송하며, 한편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힘써 권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세 가지의 수행을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청정한 업(淨業)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은중경과 달리 극락정토 태어날 중요한 덕목으로 효를 가르친 정토삼부경

 

붓다가 설한 경전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제자들이 청하고 그에 대한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정토삼부경만큼은 스스로 붓다가 법을 청하고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그것은 출가자들에 교단으로 구성되어있어 간과할 수 있는 효 문제가 외도들 때문에 제기될 것을 염려함 때문이다. 유교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부모와 떠나 출가함으로 보은의 실천에 문제와 자손을 남기지 않는 인륜에 맞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본 정토삼부경에서 효 연구는 유교의 비판에 대해 편찬된 부모은중경과 달리 중생들의 이상세계인 극락정토에 태어날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효를 가르치고 있다.

 

경전 속에 효를 강조한 예도 드물지만 그를 인간들이 가고자 하는 이상적 세계, 번뇌가 없고 근심·걱정이 없는 세계에 갈 수 있는 가르침으로 하고 있다.

 

본 논문은 단순히 이상적 세계인 극락에 태어나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사고에 대해 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붓다의 가르침을 경전 속에서 찾아 연구하였다. 기존의 연구가 얼마 되지 않아 단순히 붓다의 설법을 소개하고 있다. 차후 중복되는 설법과 당시의 시대 상황 연구를 통해 시대 배경이 이 경이 성립된 연구를 하게 된다면 보다 나은 연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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