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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한국민속종교에 나타난 죽음인식(上)
과학적 입장에선 모든 종교가 미신-무속은 민간신앙 중에서 가장 확고한 신앙체계
기사입력: 2020/04/23 [07:0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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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순서>

()과학적 입장에선 모든 종교가 미신-무속은 민간신앙 중에서 가장 확고한 신앙체계

()죽음은 천수를 다한 최종점에서 발생한다는 무속에서의 믿음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삶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죽음죽다의 명사로 한문으로는 인데 비해서 주검은 죽은 상태로서 한문으로 ()’이다. ‘()’()’은 모두가 사람이 죽은 모양을 상형화한 것이다.

 

죽음은 집에서 맞이해야 한다는 풍습 때문에 죽음과 집()과 같은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객사를 당하면 시신이 집으로 들여오는 것을 유난히 금기시하였다.

 

민속종교의 기록은 여느 종교와 달리 연구자에 의한 기록이다. 불교, 기독교 등 여타종교의 경우 일부 사제자에 의한 직접기록이라면 민속종교의 경우 연구자 중심 기록이다. 연구자 중심의 장점은 객관적이며 냉정함을 잃지 않는 점과 연구자 종교가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연구자 개인의 종교에 의해 민속종교의 세계관이 기록될 수 있다. 현재는 민속종교 사제자의 종교 체험, 예를 들어 천주교, 개신교 신자 출신의 경우 기도의 경문 속에 성경의 구절이 나오는 종교혼합현상이 두드러진 종교다.

 

우리는 영화, TV 연속극에서 불멸의 시청률이 나오는 소재가 있다. ‘춘향전’, ‘이순신이다. 현대물로 춘향전은 시대 흐름에 비겨갔다면 이순신은 아주 좋은 소재다. 한일 관계가 매끄럽지 않을 때 일본과 갈등을 유발하는 정치집단이 잘 사용하는 소재다. 그 외 잘 만들면 뜨는 소재가 귀신 이야기다. 데미 무어 주연의<사랑과 영혼>처럼 공효진이 출현했던 <주군의 태양> 최근에 종영한 김태희 주연의 <하이바이 마마>에서 보듯 귀신의 이야기는 가끔 이용되는 소재다. <사랑과 영혼>이후 한국의 귀신영화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전설에 고향>에서 보였던 문이 열려야 들어오고 사또를 통해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것에서 벗어나 문을 통과하고 단체로 몰려다니며 논다.  

 

무속은 무당을 주축으로 하여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종교적 현상이다. 무당의 기능은 산 자와 죽은 자, 이승과 저승 양쪽을 연결하는 중계자의 역할과 예언능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살아서는 갖지 못하는 그런 이름 하나 때문에

그리움만 눈물 속에 난 띄워 보낼 뿐이죠

스치듯 보낼 사람이 어쩌다 내게 들어와

장미의 가시로 남아서 날 아프게 지켜보네요

따라가면 만날 수 있나 멀고 먼 세상 끝까지

그대라면 어디라도 난 그저 행복할 테니

(장윤정의 초혼’)

 

이 노래의 주제는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영혼의 접신이다.

 

민간의 종교적 현상인 민간신앙 중에는 여러 가지 많은 종교적 현상이 있지만, 무속은 민간신앙 중에서도 가장 확고한 신앙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 구성을 살펴보면 종교적 지도자로서 무당이 있고, 그 속에 우주의 질서와 교리적 지침이 있다. 이와 같은 외형적 모습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은 종교의 요건을 갖춘 종교로 규정, 무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문제는 무속인들인 외형적 사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불교 신도의 삶을 살고 있다. 이와 같은 종교현상을 배제한 채 종교라는 주장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무속은 현대적 차원에서의 인위적 손질이 미치지 못해 자연적 원시종교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 종교로서의 제 요소를 갖추고 있다.

▲ 무속탱화  

 

죽음은 종교의 가짓수만큼 다양한 해석

 

이것을 과학적 입장에서 비합리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을 옳지 않다. 종교는 종교적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과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종교는 미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무속의 사제자가 되는 과정은 다른 종교와 일정 부분 차별화되어 있다. 무당은 강신체험을 통해 예지력을 얻은 강신무와 혈통적 세습(가족력) 때문에 사제권이 계승되는 세습무, 학습 무로 크게 구분된다.

 

예언능력은 강신무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이들 가운데 간혹 예언이 다르게 나오는(틀린) 경우를 우리는 흔히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한다라는 표현을 쓴다.

 

강신무가 굿을 할 때 신이 내려 무와 신이 합일해서 제의형식이 일원화하는 데 반해 세습무는 굿할 때 신을 향한 일방적인 사제로 신과 무가 대치된 이원화 현상을 보인다. 세습무는 굿의 의식절차가 강신무보다 체계화된 반면에 신복을 상징하는 무복의 수가 극히 적거나 거의 없는 편이다. 강신무는 영력 위주에서 세습무의 굿에 비해 의석절차가 유동적인 편이다.

 

학습무는 세습무와 달리 신명과 상관없이 개인적 기예(기능)를 학습을 통해 수련 후 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세습무는 집안 내력으로 무의 사제권이 대대로 세습된다. 사제권은 부계를 따르고 이 사제권 계승자와 결혼에 의하여 여자는 무당이 된다. 이때의 결혼은 남녀 양쪽 모두 무업에 종사하는 집안이면 무계혼(巫系婚)이 된다. 세습무는 신관이 매우 희박하다. 학습 무, 세습무의 경우 개인 신당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지역적 분포를 살펴보면 강신무는 무당’,‘박수등으로 주로 중부와 북부지방에 치중되어 있으나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세습무는 호남의 단골’,영남의 무당’,제주도의 심방등 주로 남부지방에 분포되어 있고 사제기능만을 가지며 무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굿의 과정을 12거리 혹 더 이상의 거리 수가 있다고 하는데 거리 중간중간 무당이 떡을 판다.(나눠 준다) 그때 내는 돈이 떡값이고 우리 사회 고위공직자가 돈을 받으면 떡값이라고 한다. 절에서 사십구재 날 위패를 소각할 때 승려들은 작은 그릇을 놓고 기도를 한다. 그때 놓는 돈이 노잣돈이다. 돈은 죽어서도 필요하다. 인식이 시인의 시에도 등장한다.

 

소릉조(小陵調)

70년 추석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천상병 시인>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을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죽음은 민족과 사회구성원에 따라 다양하게 인식하고 있다. 죽음은 부정적 시각에서 볼 수도 긍정적 견해에서 논의될 수 있다. 죽음은 종교의 가짓수만큼 다양한 해석을 한다. 종교 교세에 따라 그 종교의 죽음 인식이 사회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의 차이가 있을 뿐 개별종교 그들만의 죽음 인식이다.

 

계로사 귀신 섬기는 일에 관해서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도 아직 섬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계로가 말하였다.

감히 죽음에 관해 묻습니다.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 (선진 편 12)

 

공자는 귀신이나 죽음보다는 사람과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다.

 

미녀 여희(麗姬)는 애()라는 곳 변경 지기 딸이었네. ()나라로 데려갈 때 여희는 너무 울어서 눈물에 옷깃이 흠뻑 젖었지. 그러나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과 아름다운 잠자리를 같이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자, 울던 일을 후회하였다네. 죽은 사람들도 전에 자기들이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장자재물론)

 

여희가 고향을 떠날 때 슬피 울었지만 이후 왕의 여인이 되어 호의호식하면서 크게 후회를 한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왜 슬퍼했을까 하는 후회다. 여희는 먹고 입는 그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후세계도 지금 우리 삶보다 더 좋은 곳이라면 방금 여희처럼 죽음을 피해 다녔던 것을 후회할 것이다. 죽음 이후 세계를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후회와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장자는 죽음을 찬양하거나 이 땅에 살고 있음을 일방적으로 괴로움으로 인식을 피하고 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위로하려는 의도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막연한 두려움은 경계하고 있다.

 

인류가 생긴 이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누구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그곳이 이곳보다 살맛 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으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공간을 우리 스스로 만들고서 위안을 찾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살 곳을 나와 죽을 곳으로 들어가는데, 사실 장수하는 사람도 열에 셋은 되고, 요절하는 사람도 열에 셋은 되고, 살 수 있는 인생을 공연히 움직여 사지로 들어가는 사람도 또한 열에 셋은 된다. 무엇 때문이가? 그 인생을 사는데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다. 내가 듣기로는 삶을 기르기를 잘하는 사람은 육지를 여행해도 외뿔소와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군대를 들어가도 갑병을 입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 50)

▲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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