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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01.25 [19:56]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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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기사입력: 2021/12/06 [09:1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주형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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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73, 24세의 체코 다이빙 선수인 마틴 스테파넥은 놀라운 세계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깊은 바다 속으로 다이빙해 들어가서 무려 86초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습니다.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그 해 923일에 그는 245초 만에 바다 속 90미터까지 들어갔다 나옴으로 새로운 심해 다이빙 세계기록을 세웠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오래 숨을 멈출 수 있는지 시도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1, 길어야 2분 정도 참을 수 있습니다. 심해 잠수부들은 산소 호스를 통해 수면으로부터 계속해서 산소를 공급해주는 한 거의 무한정으로 물속에 잠수한 채로 머물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공기가 있어야 함을 모두가 압니다. 아무도 공기 없이 몇 분 이상 살 수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공기의 근원으로부터 차단된다면, 만일 공급된 것이 다 떨어져 버린다면 그 결과는 비참할 것입니다,

 

수 천 년 전, 지구 어느 곳에서도 부족한 것이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불행하거나, 외롭거나, 죄책감에 빠지거나, 다치는 일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걱정하거나 내적인 공허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주위를 한 번 둘러보십시오. 무엇이 보이십니까? 우리는 매일 무거운 짐과 문제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100퍼센트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외로움과 두려움과 죄책감과 공허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그것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와 같습니다. 도대체 이 땅에 과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우리 인간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심해 잠수부에게 산소 호스를 끊어버리면 큰 어려움에 빠지는 것처럼, 모든 생명과 기쁨과 평화와 행복의 근원이신 분과 연결된 선이 끊어진 이래로 우리는 이 아래에서 재난 중에 있어왔던 것입니다. 문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성경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성경은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합니다.

 

창세기로 가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완전한 세상에 두셨습니다. 공기는 신선했고, 물은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질병도, 상심도, 두려움도, 죽음도 없었습니다. 이 에덴동산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타락한 천사, 루스벨이었습니다. 이 타락한 천사가 지구라 불리는 행성으로 찾아왔습니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아니라 아담에게 지구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아담은 이 지구의 왕자였고, 사단은 기만자로서 동산에 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마음을 기만자가 아무리 꾀어도 넘어가지 않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을까요?

 

사단은 하나님의 정부가 공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공정하지 못하고 독재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절대로 미혹당하지 않도록 창조하셨다면 사단은 자기의 방법이 더 낫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랬노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이 동산에 오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중에 오직 한 나무만을 정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 나무에 가까이 가지도 말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 나무에 가까이 가자 사단은 거기서 그녀를 유혹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3:1)라고 묻습니다. 하와가 대답합니다.

 

(3:2,3) “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간단한 선택사항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시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의 실과를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것은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충성심과 순종을 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뱀의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단은 하나님을 반박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단은 하와에게 너도 하나님과 같으니 너 좋은 대로 행하라. 너도 너 자신의 하나님이 될 수 있다. 그 나무의 실과를 먹기 원하면 그렇게 해라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와의 죄는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죄는 훨씬 더 깊은 것입니다. 하와의 죄는 최상의 권위를 가진 하나님을 거절한 것입니다. 하와의 죄는 하나님께 반역하고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 위에 둔 것입니다.

 

사단은 기만자입니다. 그는 기쁨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죄는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죄는 죄책감과 수치심과 두려움을 가져다줍니다. 예수께서는 사단을 모든 거짓의 아비라고 부릅니다.

 

(8:44)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아담과 하와에게 거짓말한 사단은 지금도 우리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범죄하기 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왕국의 왕자로서 지구의 통치권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범죄하자 그들은 종이 되었습니다. 다른 주인의 종, 죄의 종이 되었고, 그 결과로 죄는 그의 자녀들인 우리 세대에까지도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슬픔에 잠겨 동산을 떠났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한 이 지구상에 타락으로 인한 어떤 결과가 찾아왔을까요? 기쁨, 즐거움, 행복이 슬픔, 고통, 눈물, 실망, 죽음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거룩하게 창조하신 이 세상이 이제 깊은 어둠이 빠져든 것입니다. 지구는 반역의 행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하나님,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라고 외쳐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그렇게 좋은 분이라면 세상은 왜 이렇게 힘이 듭니까?”라고 원망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땅에 슬픔이 있는 이유는 이 지구는 반역의 행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죽음이 있는 이유는 이 행성은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행성은 죄의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탐욕, 육욕, 이기심, 방종, 죄와 비탄, 슬픔, 죽음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반역에 빠진 이 지구를 포기하시고 그냥 떠나버리셨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이 그토록 좋은 분이라면 세상은 왜 이렇게 악한가?”라고 의아해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는 오직 좋은 씨만 뿌렸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가라지, 즉 악과 슬픔과 비탄이 그 밭에서 싹이 텄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덧붙이시기를 (13:27,28)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예수님은 집 주인으로서 좋은 씨를 뿌리셨습니다. 완전한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질병과 죄의 아픔 속에 던져졌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후손들에게 전해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 하고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권위를 거스려 반역하려하는 욕망입니다. 고통과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악의 세력인 사단의 반역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이 사단에게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18년동안 병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자 유대인들이 분노했습니다. (13:16)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여인은 사단에게 매인 바 되어 18년간 병을 앓았습니다. 모든 질병과 죄, 고통과 비탄과 죽음은 루스벨의 타락, 이 지구의 타락에 근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313절은 우리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이 지구는 어두운 그림자, 죽음의 형벌로 싸여 있습니다. 반역,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다시 찾아올 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의 계획이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사단에게 네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반면에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에 나타난 메시야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분은 탈출한 길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 죄보다 더 큽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정해진 때가 이르러 메시야는 마리아의 태를 통해 나시어 오실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지구는 죽음의 형벌 아래 있게 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형벌을 뒤집으시고 새 생명의 소망을 주십니다.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었으나 그들이 범죄하였을 때 죽음은 인류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그 때에 구세주인 메시야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이 구세주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가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정면으로 사단의 유혹에 직면하셨습니다. 아담이 실패한 그곳에서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아담이 굴복한 그곳에서 예수님은 견뎌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들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과 같은 이 잃어버린 세상에 구원의 손길을 뻗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목자에게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목자가 어떻게 하였을까요? 그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다녔습니다. 예수께서는 충성된 99개의 세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의 잃어버린, 반역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공의는 멸망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반역한 지구에게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반역의 형벌은 죽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았어야 할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사단을 대면하셨습니다.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문제는 한 두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멸망할 지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심은 이 지구를 구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온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이는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하므로 너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사망의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깨어졌습니다. 이 지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어떤 짓이든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는 십자가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로 인해 영생이 보장되었습니다. 그분은 그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제공하십니다. 이사야 4915절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어미가 그 자식을 잊을지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고통, 슬픔, 질병, 가난, 전쟁, 사고, 깨진 관계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모른 척 하십니까?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십니까?” 예수께서 그런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나는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겪었다. 고통과 슬픔을 겪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가 잘 안단다. 네 이름이 내 손바닥에 새겨져 있단다.” “네가 질병으로 괴로워할 때 내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네가 외로울 때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내가 잘 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고통을 다 이해한다.” 그 날은 어둡고 어두운 금요일이었습니다. 그 금요일에 새들은 노래하기를 그쳤습니다. 그 금요일에 꽃들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금요일에 땅에는 지진이 일어났고, 하늘에서는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그 금요일에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그 금요일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아주 어둡고 어두운 그 금요일에 저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거룩한 토요일에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평안히 쉬셨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한 천사가 내려옵니다.

 

(28:2,3,6)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그 형상이 번개 같고...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천사가 말합니다. “두려워 말라. 그가 죽음에서 살아나셨다. 두려워 말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부활하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면, 여러분도 질병의 고통, 상실의 아픔, 경제적인 어려움, 슬픔과 상심, 심각한 역경들.....이런 것들로부터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너의 인생을 바꾸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해하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그분의 능력을 부여해 주십니다.

 

베트남전쟁에 젊은이 여섯 명이 참전을 하였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이제 중위를 갓 단 소대장이었습니다. 소대장은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이 꼭 살아서 귀향하도록 도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임무 수행 마지막 달에 그들은 전투 중에 있었습니다. 베트콩들은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기관총 사격에 그들은 꼼짝 못하고 있었습니다.

 

중위와 네 명의 소대원은 참호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소대원이 다리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은폐, 엄폐도 할 수 없는 들판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의 다리는 피투성이였고, 적군이 그에게 점점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소대원들은 쓰러진 동료가 나를 버리지마!”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누구하나 용감하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 때 이 젊은 소대장이 들판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낮은 포복으로 부상당한 소대원에게 가서 그를 감싸 안고 뛰었습니다. 빗발치는 총알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습니다. 소대원들이 있는 참호에 거의 다 와서 소대장은 부상당한 소대원을 먼저 참호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참호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등에 총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참호 속으로 쓰러지면서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부상당한 소대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은 패망했습니다. 이 젊은 소대장의 가족들과 다른 소대원들 모두 미국으로 이주해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2년 후, 소대장의 부모들은 아들이 위하여 목숨을 마친 그 병사가 자신들이 사는 시애틀에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초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들의 용기와 용감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 병사는 술에 취해 도착했습니다. 어머니는 훌륭한 만찬을 준비하였습니다. 식탁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으로 잘 차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례하게도 그 병사는 식사도중 트림을 하고, 군에 대한 비도덕적인 농담을 하느라 침을 튀겼습니다. 술에 취해 온갖 주정을 부르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버지는 그 젊은이를 대문까지 동행하여 차를 태워주며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그 병사는 차에 올라타더니 엔진을 부르릉거리고 사방에 자갈을 튀기며 작별인사도 없이 그냥 가버렸습니다. 아버지가 대문을 잠그고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는 소파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내를 보았습니다.

 

! 우리 귀한 아들이 저런 것 때문에 목숨을 바쳤단 말이에요?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그렇게 많은 것을 준 사람에게 이렇게 무심하다니!”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그분의 피를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분은 용서와 평안과 죄로부터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분의 가장 고귀한 생명을 우리를 위하여 주셨는데, 우리는 혹시 그분의 고귀한 사랑과 희생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아무런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주에 선과 악 사이에 쟁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전쟁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그리스도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언젠가 그리스도께서 이 전쟁을 끝내실 것이고, 선과 악의 쟁투는 마쳐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마침내 사단을 멸하시기 위해, 그가 구한 이 지구를 구속하시기 위해 그분께서 다시 오십니다.

 

(19:11,14,16)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마침내 예수께서 천천만만의 영광중에 빛나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사단은 패배하고 지구는 새롭게 만들어 집니다. 에덴동산이 다시 지구를 덮고 마침내 전적으로 완전히 사단을 멸망시킬 사건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그 선택을 하도록 초청하십니다.

 

마틴 루터는 고뇌에 찬 젊은이였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기쁨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1505, 그는 독일의 한 숲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천둥과 번개소리가 마틴을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수호성인 안느 밖에 몰랐던 그는 위롤 쳐다보며, “, 성 안느시여, 나를 보호하소서라고 울부짖었습니다. 번개가 번쩍거리고, 천둥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그는 나를 보호해 주소서, 그러면 사제가 되겠나이다라고 서약했습니다. 자신의 서약에 충실하기 위해 그는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수도원에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정지됨을 느꼈습니다. 그는 매일 수많은 고행을 하면서 구원의 기쁨을 경험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평안은 없었습니다. 그는 내 몸이 죄가 많으니 만일 이 몸을 충분히 오래 때리면 평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분이 상하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면 나는 무엇인가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로마인에게 보내는 사도의 서신 부분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한 성경절에 그의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로마서 623절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마틴은 그 은사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평화가 그의 영혼에 넘쳤으며,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를 느꼈습니다.

 

어느 날 밤, 마틴은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그에게 나타나 그의 죄목이 적힌 두루마기를 펼쳐 보였습니다. 마틴 자신이 그의 것임을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죄들-속임수, 거짓말, 부정한 생각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마귀가 물었습니다. “이것이 너의 죄인가?” 마틴이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마귀가 다시 묻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너는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한가?”

 

마틴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마침내 조용히 응답하였습니다. “네 손을 치워라!” 사탄의 손이 두루마리의 위에 있었습니다. 마틴은 다시 말했습니다. “네 손을 치우라!” “안돼!”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손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네 손을 치우라!”

 

사탄은 그리스도의 이름에 두려워 떨며 도망쳤습니다. 그 손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마틴 루터를 그의 모든 죄로부터 깨끗케 하느니라바로 그 피가 오늘 우리를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그 피가 우리의 삶 속에 기쁨과 평안, 그리고 용서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1930, 토마스 도르시라는 음악가가 아내와 함께 시카고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했고, 아내는 만삭이었습니다. 어느 날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토미, 이곳 세인트루이스로 와서 연주를 해주었으면 좋겠소.” 그의 아내는 만삭이어서 언제 아기가 태어날지 몰랐습니다. 고민하는 그에게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가세요. 아기가 오늘밤 태어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기를 낳고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니 다녀오세요.” 토미는 기차를 타고 세인트루이스로 가서 연주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차에 오르며 울었습니다. 그날밤 아내를 혼자 내버려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시카고로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들도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토미는 심하게 우울증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낙심했습니다. 음악도 포기했습니다. 한 주, 두 주가 지나고 한 달, 두 달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우울하고 낙심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피아노 앞에 문득 앉고 싶어졌습니다. 피아노를 치며 손가는 대로 조금씩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곡이 떠오르고 가사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1) 주님여 이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2)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이 시간, 예수님은 마틴 루터가 보았던 그 글귀에 여러분의 이름을 적고 싶어 하십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너희의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신다

 

주님의 피는 우리를 위해 흘려졌습니다. 우리가 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신뢰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낙담하고 정죄함을 느낄 때, 우리는 사탄아!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대신하여 귀중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 네 손을 치우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과 악 사이,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예수님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혈과 육에 대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에 대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사단의 힘은 너무나도 강합니다. 악한 자의 힘을 우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도 제 마음에 약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제가 약할 때 예수님은 강하십니다. 사단이 강할지라도 예수님은 더 강하십니다.

 

주님, 제 손을 잡아주십시오. 폭풍이 지날 때까지 저를 안아주십시오. 견딜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주십시오라고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저의 손을 잡아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우리의 손을 전적으로 내밀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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