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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현대세계불교35●캄보디아 불교(2)
급속하게 성장하는 상좌부
기사입력: 2017/08/12 [07:19]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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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톤레 삽 호숫가에서 필자(2003년).   

필자는 그동안 캄보디아를 세 번 정도 가봤다. 캄보디아 불교를 소개하면서, 잠시 언급하고 싶은 말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라고나 할까 아니면 어떤 방법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노하우이다. 나는 영국유학에서 서양학자들에게서 한 가지 영향을 받은 것은 ‘현장탐사’란 화두였다. 필드 학습이야말로 도서관에서 섭렵한 자료나 탁상에서 쓴 논문이나 에세이를 보다 확실하게 고증하고 실감을 더할 수 있다는 철학이다.

또 한 가지는 인문학상의 연구에서, 어학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이란 상투적인 말만을 들어온 터였다. 불교계에서의 글쓰기 흐름도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상상력의 논문 제조만이 정도인 것처럼 여겨 왔었는데 서구학자들은 전혀 달랐다. 서구의 유명한 불교학자들은 어학학습이 먼저였고, 어학소양에 기초한 문헌자료섭렵이었다. 다음은 관련된 현장 답사나 탐사 내지는 학습이었다.

서구의 어떤 학자가 테라와다 불교를 전공한다고 하면, 첫째는 테라와다(상좌부)의 경전어(經典語)인 빨리어 공부를 철저하게 한다. 그런 다음엔 상좌부 국가를 다니는 것이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지를 가능한 한 자주 방문하고 인맥을 형성하고 각종 세미나 등에 참석하고 비구들과의 접촉 등이다. 자신의 전공을 위해서는 때로는 상좌부 승가에 입문해서 직접 비구생활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을 갖고 매진하는 학자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이론무장만이 아닌 실제적인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학문적 온축(蘊蓄)과 역량을 극대화 시켜서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특히 종교, 불교분야에서는 일반 학문분야와는 다르게 종교적 체험 또한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 캄보디아 승가의 두 종정스님이 동석해 있다. 왼쪽은 텝 봉(1932-) 마하니카이 파 종정이며 오른 쪽은 부크 리(1945-) 담마윳파 종정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문을 한다는 것은 첫째 석학을 잘 만나야 하고, 좋은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재정적 도움 또한 필수적이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상황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모래 속에서 금을 찾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학문적 위업을 이룬 분들은 가히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런 분들 즉, 머리는 있는데, 경제가 어려운 연구자들을 위해서 장학제도가 있는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의욕이 있고 머리가 있으면 가능하도록 풍토가 조성되어 있다. 이런 조건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고, 우리하고는 거리가 너무 먼 이야기일 뿐 아니라, 학위를 받고서도 연구할 수 있는 터전이 없다. 그래서 각자도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니겠는가.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캄보디아 불교를 처음 접한 것은 ‘80년대 초,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정작 태국에서 비구생활을 할 때는 캄보디아 불교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때는 크메르 루주 기간이라서 갈 수도 없었고, 캄보디아 비구들이 해외 나들이를 한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잠시 파리의 라오스 사원, 아잔 마하타완 대선사 문하에서 사마타(명상)를 연마할 때, 파리에 있는 캄보디아 담마윳(보수파) 소속 비구(부크 리)가 와서 마하타완 선사를 뵙고 가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그는 1991년 캄보디아 담마윳 파의 상가라자(종정)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이민자들이 수십 만 명이 살고 있고, 사원도 몇 개 된다. 캄보디아의 정정이 불안하고 정치적 격변으로 인하여 캄보디아 불교는 침체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앙코르 왓(사원)이 공개되고 서서히 캄보디아 불교 또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 앙코르 왓을 배경으로 한 필자.   
▲ 캄보디아의 사미승들과 잠시.    

나는 2003년과 2004년 2013년 앙코르 왓을 방문하고 이후, 국제회의 등에서 캄보디아 비구들을 접하면서 캄보디아 불교는 서서히 정착되어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캄보디아 불교가 상좌부로 선회하게 된 것은 13세기 이후인데, 현재는 95% 상좌부 불교국가가 되었다.

캄보디아에 대한 역사나 불교를 접하려면 크메르 말을 하지 못하는 한, 불어나 영어권의 자료를 접할 수밖에 없고, 고대와 중세 역사는 중국자료이다. 불교 자료도 프랑스어로 된 자료를 접해야하는데, 프랑스어 실력이 중급인 나에게는 아무래도 영어권 자료인데, 다행하게도 이안 하리스(IAN HARRIS)의《Cambodian Buddhism, History and Practice》란 책을 얻게 되어 그나마 캄보디아 불교를 소개할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캄보디아는 푸난 왕국(Funan Kingdom 68–550CE), 첸라 왕국(Chenla Kingdom 550-706), 크메르 왕조(Khmer Empire 802-1431)를 거쳐서 암흑시대가 전개되고, 19세기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한 다음 1953년에야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캄보디아 불교사는 크메르 왕조 중 후반기에 대승과 힌두에서 상좌부로 전환하게 되어서 암흑시대와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도 상좌부 불교가 그대로 지속하게 되었다.     

크메르의 언어는 오스트로아시아어파의 몬-크메르어족이다. 크메르(캄보디아) 언어는 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힌두교와 불교를 통해서 영향을 받았고, 일반 서민들의 언어보다는 왕실이나 관청의 관화(官話)에서다. 타이 라오 베트남어와도 상호 영향을 받았고, 크메르 문자는 인도의 브라미 문자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남인도의 팔라와 문자(Pallava script)를 통해서다. 팔라와 왕조(Pallava Dynasty 275-897CE)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영향을 미친 남인도 왕조로서, 아리안 계통의 북인도 왕조들과는 다르다. 남인도의 타밀족은 원주민들이다. 북인도의 아리안과는 언어체계가 다르다. 하지만, 문자는 아리안어의 브라미 문자에 영향을 받아서 창제되었다. 동남아시아에 무역을 통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팔라와 왕조는 자바 몬 버마 크메르 타이 라오(라오스) 등의 문자에 직.간접의 영향을 미쳤다. 말은 다르지만, 문자는 남인도 팔라와 왕조의 문자에 영향을 받아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1천 6백만 캄보디아 인구의 90%는 크메르 족이지만, 메콩 삼각주에 70만 정도의 베트남인이 살고 있고, 20만 정도의 중국인이 함께 살고 있다. 캄보디아(크메르)어를 몬-크메르 어족이라고 하는데, 몬족은 인도차이나반도에 상좌부 불교를 수입한 종족이다. 이들은 주로 하 버마에 살고 있으며, 지금의 태국의 남서부 일부 지역에도 살고 있고, 캄보디아의 푸난 왕국 시대에는 캄보디아 영역 권에 있었다. 그러므로 크메르어를 몬-크메르어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 베트남 중남부에 있었던 참파왕국(192〜1832 녹색부분), 처음은 힌두, 15세기부터서는 이슬람으로 전향.    
▲ 현재도 남아 있는 힌두교사원 유적  

캄보디아의 종교는 불교가 대세이고 그 가운데서도 시바파와 비슈누파의 브라만교의 영향을 받은 상좌부 불교이다. 캄보디아에는 기원전 3세기부터 상좌부 불교가 전해졌다고 하지만, 지금의 캄보디아 영토가 아닌 몬족의 영토였던 하 버마와 태국 지역으로 기원전 시대의 수반나부미를 말한다. 아소카 대왕이 이곳에 전도단을 파견했다고 한다. 캄보디아 땅에 불교가 존재했던 것은 기원후 5세기와 13세기이다. 푸난 왕국 때의 불교는 힌두의 영향으로 불교가 묻혀 들어왔지만, 확실하게 정착한 것은 아니고, 크메르 왕국 때에도 처음에는 힌두와 대승이 함께 들어왔다가 13세기경에는 하 버마의 몬족의 영향으로 상좌부 불교가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사실, 캄보디아의 푸난 왕국 시대에는 주류 종교가 힌두교였다. 힌두교는 크메르 왕조의 국교였고, 앙코르 왓은 힌두사원으로 처음 지어진 것이다. 나중에 상좌부 사원으로 사용되었지만, 앙코르 왓은 힌두사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캄보디아에는 20만 명 정도의 무슬림들이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는 한 때 20만 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2만 명 정도의 가톨릭 신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소수의 부족 종교인도 있다. 캄보디아는 불과 30여년사이에 불교가 급성장했고, 정부 또한 정체(政體)실험을 통해서 혼란을 겪다가 지금은 입헌 군주국으로 전향하면서 불교를 더욱 장려하는 분위기다.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권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불교라고 필자는 진단하고 싶다. 이제는 인도나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캄보디아 출신 비구들을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만큼 캄보디아 불교가 안정되어 가고 있고 비구 승가의 숫자 또한 증가하고 있으며, 사원들도 신자들로 붐비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베트남에 가서 목격한 일이지만, 베트남의 상좌부 비구는 90%가 크메르 출신 비구들이다. 베트남의 참족(Cham)은 15세기에, 남부 베트남의 캄보디아 지역은 18세기에 병탄했는데, 참족은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말레이계 민족이다. 두 나라 외에 타이에도 약 40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참족은 이슬람 수니파에 속하는 무슬림이다. 참족은 베트남 남.동부 해안에 7세기에서 15세기까지 존속했던 참파 왕국의 후예이다.    

베트남은 18세기 남부 캄보디아 지역을 병합하고 자기들의 영토로 삼았는데, 이 지역에는 캄보디아 상좌부가 있는 지역이었다. 이들은 베트남의 대승불교로 전향하지 않고 상좌부 불교를 고수해서 1957년 베트남에서 상좌부 승가를 설립해서 상당한 교세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물밑 신경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국적은 베트남이고 불교는 친 캄보디아인 상좌부 계통이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상좌부는 1981년 텝 봉 스님을 통합승가회 종정으로 선출했다. 담마윳 (Thommayut 보수)파와 마하니카이(Mohanikay 진보 대중)파의 분리를 통합한 것이다. 베트남군이 철수하고 1991년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시아누크 국왕이 귀국하여 1981년 베트남 정권하에 만들어진 단일 통합 승가를 각각 담마윳파와 마하니카이파를 복원하여 각각 우리 불교로 말하면 종정격인 상가라자(승왕) 제도를 두도록 했다.     
보검 이치란 박사(해동세계불교연구원 원장·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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