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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144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7/08/24 [09:50]
우주는 무형의 자유의지 반영, 고정된 이미지 없다

통찰! 天問天答 144

우주는 무형의 자유의지 반영, 고정된 이미지 없다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7/08/24 [09:50]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理解)를 통해 무지(無知)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은,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비정상적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依支)하고 의존(依存)하며,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와 종교가 발전을 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와 갈등으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와 철학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一部)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밝혀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知性) 인류의 이야기가 될 것이며, 자산(資産)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고 의지하고 의존하고 따르든지,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지, 그러기 이전(以前)에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먼저 알고 깨우치는 것이 상식(常識)중의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상식적 ‘깨달음’과 인간정신과 더불어서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가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談禪모임 眞鏡>  
 
우주는 무형의 자유의지 반영, 고정된 이미지 없다    

질문315: 모든 만물이 이미 ‘진리’를 증거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진경님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항상 ‘지금’ 모든 일들이 ‘진행’되어 지고 있습니다. 진행되어지고 있다는 것은 반드시 ‘시작’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시작되어진 ‘시작’은 반드시 ‘끝’으로 귀결되어, 시작과 진행과 끝은 하나의 ‘작용’적인 측면으로서 태생적 한계를 가지며, 어디에도 ‘스스로’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작’이 있기 이전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시작’을 유발하였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작’에서 이어진 모든 것은 결국 ‘존재’하여지면서, ‘존재’하게 하는, 즉 ‘시작’을 유발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디에 ‘근거’를 둘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 ‘진리’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정의’나 ‘규정’으로 도달할 수도 없으며,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최선을 다하여 이해를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질문316: 이 우주의 고정된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일각에서는 ‘타원형’으로 보는 설도 있습니다.    

고요와 정적으로 대변될 수가 있는 무형의 대자유로서, 스스로 말미암은 ‘알 수 없는 무엇’이 불현 듯 ‘자각’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와 같이 스스로 말미암은 ‘알 수 없는 무엇’이 ‘자각’함으로서 자기 자신에게로 관심을 기울이며, ‘주의’를 집중하자 에너지의 응축이 일어나며, 응축된 에너지는 한 점을 형성하고, 형성된 한 점은 밀려드는 고에너지의 응축, 즉 고밀도를 이기지 못하고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 대폭발을 유도하는 것은 ‘한 점’의 고밀도와 고에너지 영향도 있지만, 사실은 초기 폭발과 동시에 고요와 정적으로 대변되는 무형의 대자유가, 시간과 공간을 형성하며 마치 누에고치에서 실이 뽑아져 나오듯이, 이 우주가 확장되어 지는 것입니다. 팽창을 가속하고 있는 주 에너지는 초기 폭발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고요와 정적으로 대변되는 ‘자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우주는 무형의 자유의지를 반영하며, 무한과 완전을 지향하며 ‘존재’로의 여정, 즉 창조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우주는, 무형의 자유의지가 유형적 ‘자기 자신’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우주는 고정된 이미지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질문: 이 우주의 중심은 어디입니까?    

이 우주에는 ‘중심’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지금의 나’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분리해서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운데와 균형점등의 의미로 ‘중심’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우주는 한 몸으로서 ‘하나’입니다.    

그러니 중력이 없는 곳에서는, 어떤 사물이 질량과는 상관없이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든 사물이 있는 곳이 중심이 될 수도 있으며, 중력에 의해서 간섭을 받게 되면 중심을 벗어난다고도 이야기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력’에 의해서 간섭을 받는다는 것은, 제한된 상태로 물질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 그렇다면, 저도 이 우주의 중심이 될 수가 있습니까?    

‘한 사람’은 결국 물질적인 육체와의 동일시로 인해서 제한적이며, 생각의 ‘중력’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동일시를 포기하는 것만이, 즉 ‘자각’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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