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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146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7/08/31 [08:35]
‘자기 자신’ 이상의 ‘자유’는 없다

통찰! 天問天答 146

‘자기 자신’ 이상의 ‘자유’는 없다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7/08/31 [08:35]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理解)를 통해 무지(無知)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은,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비정상적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依支)하고 의존(依存)하며,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와 종교가 발전을 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와 갈등으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와 철학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一部)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밝혀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知性) 인류의 이야기가 될 것이며, 자산(資産)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고 의지하고 의존하고 따르든지,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지, 그러기 이전(以前)에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먼저 알고 깨우치는 것이 상식(常識)중의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상식적 ‘깨달음’과 인간정신과 더불어서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가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談禪모임 眞鏡> 
 
‘자기 자신’ 이상의 ‘자유’는 없다

질문319: 진경님,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무엇입니까?    

설혹 모든 것을 저에게 다 물어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으로서 ‘나’에 대해서는 저에게 물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자기 자신’조차도 참다운 ‘나’에 대해서는 생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일체로서 ‘자기 자신’, 즉 ‘나’는 절대적 주체로서 어떤 대상도 어떤 상대적 무엇도 없기 때문에, ‘나’라는 생각이 필요하지도 않으며 생각으로 도달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만은 자기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320: 수행자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제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올바른 길’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티베트의 한 린포체는 마음 안에 자애와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살아 왔다고 여기고 있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동안의 삶은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꿈’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은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경험의 주체이자 인식의 주체, 즉 ‘지금의 나’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비추어내고 있는 ‘나’의 반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꿈을 어떻게 꾸어야 하는지, 즉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니라, 꿈은 깨어나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진리’의 보편성과 무조건적 이치를 알게 되면, 마음 안에 자애와 연민으로 가득 차 있을 때만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 ‘진리’의 무조건적 이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수용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허용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포용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절대적으로 무한한 수용과 무한한 허용과 무한한 포용이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드러날 수 있으며,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질문321: 저는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에 따라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스스로’일 수 없으며, 그로인해 ‘생각’조차도 ‘존재’적인 측면의 틀,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틀에 부합하는 생각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유롭게 생각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태어난 나, 태어나 살고 있는 나, 태어나 살고 있으며 늙어지고 병드는 나, 태어나 살고 늙어지고 병들며 죽는 나라는 ‘틀’에 부합하는 ‘생각’만을 평생 동안 할 것입니다.    

질문: ‘생각’조차 자유롭고 싶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아세요. ‘자기 자신’ 이상의 ‘자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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