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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 質問6
自分自身を正しく知ることが、真の平安
기사입력: 2018/03/08 [08:0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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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6) 말씀하시는 ‘고요와 정적’은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質問6:眞鏡さんがおっしゃる「静けさと静寂」は、どのように理解すればいいですか。
    

제가 말하고 있는 ‘고요와 정적’은 바로 자기 자신, 즉 ‘나’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요와 정적’에 대한 이해는 ‘이해’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생각으로 규정하고 있는 개념적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개념적 존재가, 즉 그림자가 어떻게 생각의 주인이자 ‘스스로’인 ‘나’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私が言う「静けさと静寂」は、自分自身、つまり「私」を指し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静けさと静寂」への理解は、「理解」としては不可能です。なぜなら、自分自身が考えている「今の私」は、実在するのではなく、「私」の考えで規定している概念的な存在に過ぎないからです。概念的な存在が、即ち、影がどうやって考えの主人となり、「自ら」である「私」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    

따라서 어떤 존재도 비존재의 ‘고요와 정적’을 추측하고 상상할 수는 있다 할지라도 ‘이해’할 수는 없으며, 참다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는 ‘스스로’인 자기 자신, 즉 개념적 동일시의 허구를 알아차리는,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したがって、どんな存在も非存在の「静けさと静寂」を推測して想像することはできるとしても、「理解」することはできず、真の自分自身への理解は、「自ら」である自分自身、即ち、概念的な同一視の虚構に気が付く、即ち、自分自身に対して誤解していないといえます。    

(질문) 진경님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質問)眞鏡さんは自分に対する理解を強調し続けています。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이 개념적 동일시만을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개념적 동일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오해이기 때문에, 참다운 이해는 어떤 ‘앎’이나 상상과 추측이 될 수가 없으며, ‘스스로’ 자기 자신을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私ができるのは、それがすべてです。なぜなら、「自ら」自分自身を肉体と同一視して、このような事実を忘却して、この概念的な同一視を自分自身として受け入れているからです。そして、この概念的な同一視は、自分自身に対する理解ではなく、誤解であるため、真の理解はどんな「知」や想像や推測されることがなく、「自ら」自分を何であると考えないことであるといえます。    

따라서 ‘고요와 정적’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서의 자기 자신, 즉 ‘나’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したがって、「静けさと静寂」は、何もなく、何でもないものとしての自分自身、即ち、「私」を指しているのです。    

(질문) 말씀하시는 ‘고요와 정적’은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합니까?    

(質問)眞鏡さんがおっしゃる「静けさと静寂」は、考えは消えることではなく、断たれるものでもないと理解しても構いませんか。
    

거듭 말씀드리지만 ‘나’는 생각의 주인입니다.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주인인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으며, 어떻게 내 자신으로서의 ‘고요와 정적’을 깨뜨릴 수 있겠습니까?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어떻게 생각의 주인을 규정하며 속박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구속이 ‘자유’를 속박할 수 있겠습니까?     

繰り返しますが、「私」は考えの主人です。私が作り出している考えがどうやって主人である「私」に影響を与えることができますか。どうやって自分自身としての「静けさと静寂」を否定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不便だという考え、足りないという考え、不幸だという考え、そのような「考え」がどうやって考えの主人を規定して束縛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どんな拘束が「自由」を束縛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    

따라서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참다운 평안이며 참다운 만족이며 참다운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したがって、自分自身を正しく知ることが、真の平安であり、真の満足であり、真の幸せといえ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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