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복지천국' 북유럽의 허실과 한국모델은?

양형모 | 기사입력 2018/05/29 [18:17]
사난다지 “한국에 1960년대의 스웨덴과 덴마크를 권하고 싶다”

'복지천국' 북유럽의 허실과 한국모델은?

사난다지 “한국에 1960년대의 스웨덴과 덴마크를 권하고 싶다”

양형모 | 입력 : 2018/05/29 [18:17]
"이탈리아형 국가에서 북유럽형 국가로 변신했다."

영국의 대표적 펀드매니저인 에르메스자산운용의 프레이저 런디가 얼마 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최근 변화를 이렇게 요약해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후 1년간 프랑스가 북유럽형 국가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도 마크롱의 6개월을 평가할 때 "북유럽 모델을 프랑스에 이식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이를 놓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고용제도를 바꾸고 투자 활성화를 강조하는 '친(親)시장 전도사'다. 그런 마크롱이 '복지 천국'인 북유럽을 따라간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다.

행여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이는 '샌더스식(式) 오류'에 가깝다.2년 전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소수가 많은 것을 가진 미국은 덴마크식 사회주의 국가로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가 "우리는 사회주의가 아니다"며 즉각 반박했다. 그는 "덴마크는 복지국가이면서 동시에 성공적인 자유시장 경제체제"라고 강조했다. 샌더스의 선입견과 비슷하게 국내에서도 북유럽을 '복지 혜택이 선물처럼 쏟아지는' 유토피아(이상향)로 자주 소개한다. 복지에 앞서 기업 규제를 최소화하고 경제적 자유를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사실은 잘 언급하지 않는다.

실제 올해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세계 186개국을 상대로 집계한 국가별 '경제자유화 지수'를 보면, 덴마크(12위)와 스웨덴(15위)이 미국(18위)보다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노르웨이(23위), 핀란드(26위)도 상위권이다.마크롱이 북유럽을 모방한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그가 사회안전망 구축과 동시에 경제적 자유 증진에 열심이기 때문이다. 마크롱은 고용시장에서 유연성을 최대한 확보해 기업 부담을 줄이는 한편 실업급여 대상을 농민·자영업자까지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를 놓고 프랑스 공무원들은 북유럽 경제를 상징하는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security)을 결합한 합성어인 이 말은 두 요소가 경제의 핵심 기둥이라는 뜻이다.    

스웨덴학자 니마 사난다지의 경고 “복지천국? 노르딕 모델은 환상이다”    

“버니 샌더스와 버락 오바마가 찬사를 보내는 노르딕 모델은 환상의 산물이다.”

2016년 여름 미국에서 대통령선거가 한창이었을 때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A: Foreign Affairs)에는 이런 논쟁적인 글이 실렸다. ‘노르딕 모델(Nordic model)에 대한 오독’이란 제목의 이 글은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인 샌더스의 노르딕 모델에 근거한 ‘민주적 사회주의’와 오바마 대통령의 북유럽 찬가(讚歌)가 환상과 오해에 기초하고 있다며 매서운 비판을 가했다.  

노르딕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개국이 채택한 사회주의적 요소가 가미된 시장경제 모델을 말한다. 높은 과세(課稅)를 통한 재분배 강화, 의료·실업 혜택을 축으로 한 사회안전망 확충, 노조의 경영참여 확대, 공교육 강화를 통한 평등교육을 특징으로 한다.  

노르딕 모델에 대한 관심은 미국 진보좌파만의 것은 아니다. 재벌 주도의 일본식 성장모델과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이 한계에 부딪힌 한국에서도 새로운 대안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노르딕 모델이 환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니 무슨 말일까. 논지의 핵심은 노르딕 모델은 결코 사회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생존해야 했던 북유럽인 특유의 문화(Nordic culture)와 자유시장(free markets) 경제체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르딕 모델을 가능케 만들어준 문화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를 간과한 채 이들 국가가 채택한 사회보장제도의 성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이다.

『복지천국(유토피아)에 대한 환상 깨기: 노르딕 사회주의 신화에 대한 폭로』 의 저자는 스웨덴의 싱크탱크인 기업가정신과 정책개혁을 위한 유러피언 센터 소장인 니마 사난다지. 스웨덴 국적의 사난다지는 이란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부모를 따라 스웨덴으로 이민을 온 쿠르드족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스웨덴왕립공대에서 고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공계임에도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의 허상을 비판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 쿠르드계 이란 이민자로 스웨덴 복지시스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니마 사난다지         

사난다지는 영국을 대표하는 보수적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센터(CPS)의 선임연구원으로 2015년 영어로 펴낸 『스칸디나비안 비예외주의』라는 책이 기폭제가 됐다. 그는 이를 좀 더 대중적으로 쉽게 쓴 『복지천국(유토피아)에 대한 환상 깨기』를 2016년 여름 미국에서 출간하면서 FA 기고문도 발표한 것이다. 그의 책에는 그보다 한 살 많은 형 티노가 조사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티노야말로 진짜 경제학자로 미국 주류경제학의 메카인 시카고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스톡홀름경제학대학원 연구원이다. 사난다지는 노르딕 모델의 성공요인이 복지제도가 아니라 자유시장 시스템과 북유럽 고유의 문화적 요소임을 강조하며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는 복지제도 도입 전후의 경제성장률 변화다. 1870~1936년 복지제도를 도입하기 전 자유시장체제의 스웨덴은 연평균 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서유럽 최고의 성장률로 영국 성장률의 2배였다. 1936년 집권한 사회민주당이 완만한 복지시스템을 도입한 1970년까지 성장률은 2.9%를 기록했다.  종전보다 상승했지만 전후(戰後)부흥의 혜택을 입어 고도성장을 기록한 서유럽 국가 성장률에 비춰보면 평균 수준이었다. 그러다 노동조합의 대기업 소유를 허용하는 등 급진적 사회주의적 제도를 도입한 1970~1991년 성장률은 1.4%까지 추락했다. 서유럽 국가 중에서 2번째로 낮은 수치였다.  1975년까지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를 자랑하며 세계에서 4번째로 부유한 국가였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복지 시스템 도입의 부작용으로 1990년대에는 13위로 뒤처졌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다시 복지혜택을 줄이고 세제혜택을 확대하는 시장친화적 개혁정책을 도입했고 그 결과 1991~2014년 경제성장률은 1.8%로 올라섰다. 서유럽에선 영국 다음으로 높은 성장률이었다.                     
▲ 사난다지의 저서 『복지천국에 대한 환상깨기』 책표지  

노르딕 모델을 뒷받침한 것이 자유시장 시스템임을 강조한 것인데 이런 제도적 측면 외에도 북유럽인 특유의 근면·성실이란 문화적 요소를 사난다지는 강조했다. 그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쓸 때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 모델이 바로 북유럽 국가였다. 이들 국가는 이미 19세기 초부터 유럽의 다른 지역에 비해 놀라운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베버는 북유럽 국가 번영의 조건을 연구하다가 비로소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의 경제학자 아사르 린드벡은 종교적 요인보다 혹독한 자연환경에 맞서 싸우면서 생긴 문화적 요소에 주목했다. 개인적 책임감과 정직, 신뢰, 시간 엄수와 근면·성실 같은 덕목이다. 북유럽인의 이런 특징은 같은 개신교 국가인 미국에서도 확인된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출신 미국 이민자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인 평균(2013년 기준 5만2592달러)을 훌쩍 뛰어넘는다.  미국 내 덴마크 이민자는 55%, 스웨덴 이민자는 53%, 핀란드 이민자는 59%씩으로, 모국인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자랑한다. 심지어 노르웨이 이민자도 원유로 부자가 된 모국인보다 3%나 생활수준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자유시장체제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북유럽 이민자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96%가 넘어 미국 평균(86.3%)을 상회하며 실업률 역시 4.1% 미만으로 미국 평균(5.9%)보다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2번째 근거다.”라고 말했다.            

◆복지시스템 대수술에 들어간 북유럽    

노르딕 모델이 복지시스템의 산물이냐, 자유시장과 북유럽 특유의 근면·성실의 산물이냐 하는 것과 북유럽 사람들이 현재의 복지시스템에 만족하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이에 대해 사난다지는 이렇게 설명했다. 북유럽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복지국가를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난 수십 년 동안 급속한 시장개혁의 길을 걸어왔다. 복지국가의 느슨함을 세금 감면해주는 방향으로 근로의욕을 촉진해왔다.  『복지천국에 대한 환상 깨기』에서도 지적했듯이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예가 2013~15년 집권한 덴마크의 사민당 정부일 것이다. 사민당은 전통적으로 복지국가를 지지한다. 하지만 덴마크 사민당 정부는 덴마크의 과도한 복지시스템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며 개혁의 칼을 용감히 뽑아들었다.  당시 재무장관 비얀 코리돈은 “진실은 현재의 복지국가를 강화하고 현대화할 극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통해 창출될 사회가 현재보다 더 낳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밝혀 월드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정부는 이민자에 대한 복지혜택을 절반가량 줄이는 대신 이를 세금 감면으로 부족해지는 세원을 충당하는 데 쓰고 있다.  

북유럽 국가 중에서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정부는 스웨덴 사민당 정부가 유일하다. 복지국가를 위한 계약은 이제 새로운 형태를 취해야 할 때가 됐다. 근로의욕을 높이고 책임규범을 강화하려면 복지시스템의 개혁은 불가피하다. 시스템 개혁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이민에 있다. 이민자들은 북유럽의 독특한 규범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현행 복지 시스템은 지원금에 의존하는 나태한 삶에 빠져들게 만든다. 사만다지는 그 자신이 그런 복지혜택을 받은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기에 그에 대한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따라서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지속할 수가 없다.          

◆‘노르딕 모델’의 대안은?

사난다지는 이란계 쿠르드족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며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스웨덴의 복지시스템 덕분이다. 그럼에도 그는 복지시스템을 비판하고 나섰다. 왜 그럴까?사난다지는 “스웨덴의 복지제도가 내 가족에게 준 혜택에는 감사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제도는 많은 이민자 가족을 복지 의존이란 함정에 빠뜨린다. 그 제도는 높은 세금, 엄격한 근로규정 및 정부의 방만한 지원금에 기초한다. 이러한 요소가 합쳐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일자리 구하기의 장벽은 점점 높아지는 반면,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것이 돈벌이가 돼버린다. 그 결과 많은 이민자 가정과 공동체가 실제로 복지국가에 의해 의도하지 않게 만들어지는 사회적 빈곤의 한 형태인 장기 의존성의 늪에 빠져든다. 나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스웨덴과 다른 북유럽 국가의 다양한 정책에 대해 100편 이상의 공공정책 보고서와 20권 이상의 책을 냈다. 복지 예산이 큰 나라일수록 여성의 최상위직 진출이 더 어렵다거나 근로규범 및 책임규범이 약화된다.

지식인으로서 사난다지의 의무는 모두를 위해 사회를 향상시키는 것이며 그의 소망은 사회시스템의 전반적 향상이다. 그래서 그는 ”퍼주기식 복지가 ‘의존성의 함정’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는 명쾌한 결론으로 안내할 연구 성과와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라고 했다. 잔디는 다른 쪽 들판의 것이 더 푸르게 보이는 법이다. 스웨덴이 복지천국이란 이상화된 이미지는 스웨덴 내부에선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스웨덴 경제는 이민과 통합 실패로 막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과도한 세금을 줄이고 정부보조금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그렇다면 한국이 역할모델로 삼을 만한 대안(代案)이 있을까. 사난다지는 한국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1960년대의 스웨덴과 덴마크를 권하고 싶다. 당시의 스웨덴과 덴마크는 작지만 효율적인 복지국가였기에 세금 부담도 적었고 노동이나 기업 활동에 대한 대가가 쏠쏠했다. 그만큼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해질 기회도 많았다.  자유시장과 결합한 강력한 근로윤리와 책임윤리에 의지한 소득평등 수준도 높았다. 당시 북유럽 국가는 기대수명과 아동사망률 면에서 세계 다른 지역이 넘보지 못할 수준에 도달했으며 지금에 비해서도 월등했다. 한마디로 당시의 북유럽 국가들은 경제적 성공, 사회적 성공, 소득 분배 등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퍼주기식 복지 제도, 정부의 과도한 경제 개입, 고율의 세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그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강조했다. 

복지는 무한정 솟아나는 샘물이 아니다. 어딘가에서 돈을 벌어와야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자유시장경제를 튼실하게 키워 풍족한 부(富)를 쌓은 다음 많은 세금을 거둬 두툼한 복지를 제공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런 흐름을 외면하고 남의 떡 커 보이듯 복지만 눈에 넣는다면 동전의 한쪽 면만 보는 것과 같다. 우리 경제·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잡을 때 '외눈박이 이정표'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 도배방지 이미지

많이 본 기사
1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