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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전에 보완 시급하다

양형모 | 기사입력 2018/06/01 [07:50]
예외업종 추가, 유연근무제 시간확대 등 부작용 최소화와 개선방안 필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전에 보완 시급하다

예외업종 추가, 유연근무제 시간확대 등 부작용 최소화와 개선방안 필요

양형모 | 입력 : 2018/06/01 [07:50]
대학 캠퍼스 같은 정원에서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한다. 점심시간도 아닌데 구내식당에는 직원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밤이 되면 건물 창을 통해 새어 나온 불빛으로 주변이 빛난다. 프로젝트가 끝난 직원은 장기간 유급 휴가를 떠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Palo Alto)시에 위치한 실리콘밸리(Sillicon Valley)의 모습이다. 캠퍼스 같은 회사시설보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부럽다.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꿈의 기업’이 이런 곳이 아닐까.

오는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은 ‘주 68시간 근로시간’을 단축해 법정근로 ‘주 52시간 근무’ 시대가 열린다. 근로기준법의 개정 취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즉, 장시간 근로문제를 해결하고 휴일을 확대해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동시에 고용확대 등 긍정적 효과를 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와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단축은 업종 특성상 근로시간이 길고 근무강도가 높아, 이를 유동적으로 조정하기 힘든 기업일수록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심지어 기업의 존폐, 산업 생태계의 파괴 우려 등 후폭풍이 클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시행이 당장 코앞이지만 현장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정부 입장과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시간 단축에만 집착하고 연착륙을 위한 보완책에는 귀를 막고 있다. 

‘주52시간 근무제’ 후폭풍 우려 커…시행 전 부작용 최소화하는 대책 나와야

최근 정부와 산업별 협회·단체 공동조사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제조 업종은 뿌리산업과 섬유산업이다. 신제품 개발 직전에 근무가 집중되고 근무시간을 특정하기 어려운 연구개발(R&D) 부문, 게임, 소프트웨어(SW)와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업도 영향권이다. 뿌리산업은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제조공정 기술을 활용한 6대 업종으로, 이들은 최종 제품에 내재돼 제조업의 근간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산업의 뿌리와 같다.

뿌리산업은 주문형 소량생산 위주로 2~4차 협력사다. 업계 특성상 납기 맞추기와 출혈단가 경쟁으로 연장·휴일 근무가 불가피하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추가 고용이 필요하지만 취업 기피 업종으로 인력 확보가 어렵다. 뿌리산업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

SW산업도 정보통신산업의 뿌리산업이다. 게임이나 SW업종, 근무시간 특정이 어려운 R&D, 출장이나 파견 업무가 많은 IT업계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IT서비스산업협회(ITSA)는 ‘IT서비스’를 노동시간 특례 업종으로 지정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R&D 수행기관과 기업부설연구소 보유기업 대상으로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탄력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1년 연장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효과적 보완책으로 꼽았다.

국내 산업구조상 대기업은 영향이 적지만, 1차·2차 협력사로 갈수록 영향력이 커진다. 근로기준법 개정 후 대기업은 비교적 기민하게 대응책을 마련 중이지만, 중소기업은 열악한 경영여건과 인식부족 등으로 사전 대비를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피해는 장기적으로 대기업의 제품 품질과 생산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4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제조업계 영향을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뿌리업체는 사업장 해외 이전이나 폐업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시 근로 300인 이상 뿌리기업은 전체 제조업 0.8%에 불과하다. 하지만 매출 비중은 30%에 육박한다. 납기준수와 인건비 부담 완화를 위해 자동화 또는 인력감축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일부는 사업장 해외 이전이나 폐업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IT업계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게임과 SW, SI 관련 업체는 업종 특성상 보완책이 없다면 생산성에 치명타를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제품개발과 프로젝트 등으로 장시간 근로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IT업계나 R&D부문에선 근로시간제가 원칙대로 적용되면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현장 반응이 이 정도라면 정부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근로시간을 단축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 나누기로 고용을 확대하자는 취지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경쟁력은 물론 산업 생태계, 나아가 기업 존폐까지 좌우한다면 다른 얘기다. 예상보다 후폭풍이 클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주 52시간 근무' 그림의 떡?… 5인미만 사업장 ‘그림의 떡’
전체 노동자 30% 사각지대… 포괄임금 적용 사무직도 예외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종업원이 300명 이상인 사업장은 오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해야 한다. 직장인 대다수가 주 52시간 근로를 찬성하지만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시행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내놨다.  익명 커뮤니티앱 블라인드가 전국 직장인 1만2208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에 찬성한다는 답변은 전체의 73.1%였다. ‘반대’는 17.6%, ‘모르겠다’는 9.2%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회사에 적용 가능할까’라는 질문에는 ‘불가능’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44.3%를 기록, 절반 가까이가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드러냈다. 이어 ‘가능하다’고 답한 이가 37.9%였고 '시간이 필요하다' 14%, '모르겠다' 3.7%로 조사됐다. 

재직 회사별로 살펴보면 주 52시간 근무제의 적용이 어렵다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딜로이트 안진’(85%)이었다. 이어 ▲삼정KPMG 81% ▲이랜드월드 80% ▲ADT캡스 79% ▲셀트리온 75% ▲GS리테일 71% ▲삼일회계법인 70% ▲대림산업 69% ▲올리브네트웍스 69% ▲롯데쇼핑 67% 순이었다. ‘적용할 수 있다’는 답변 비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SK텔레콤’(81%)으로 나타났다. 이어 ▲삼성디스플레이 76% ▲KT 70% ▲삼성SDS 64% ▲스마일게이트 62% ▲현대모비스 62% ▲두산중공업 62% ▲카카오 61% ▲LG CNS 60% ▲삼성전자 59% 순으로 조사됐다.    

과로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인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지만, 일반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전혀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거나 비켜간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 및 공공기관은 7월1일부터 주당 근로시간 52시간을 지켜야 한다. 50인 이상 299인 이하 기업은 2020년 1월1일부터, 5인 이상 49인 이하 기업은 2021년 7월1일부터 적용된다. 다만 5인 미만 기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2016년 통계청 전국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는 570만 5551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26.8%로 추정된다. 노동자 10명 중 3명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총근로시간은 월평균 184.7시간(정규직 기준)이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5인 미만이 185.8시간, 5~29인은 182.2시간, 300인 이상은 182.5시간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의 양극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궁극적으로 근로시간과 관련해 적용 제외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적용이 제외되는 특례업종으로 남은 육상운송업(노선버스 제외),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 운송관련 서비스업, 보건업 등 5개 업종도 무제한 노동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26개였던 특례업종이 5개로 줄었지만, 112만명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주 52시간제를 적용받지 못한다. 오는 9월부터 11시간 연속 휴게시간 보장제가 시행되지만, 실질적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특례업종을 완전히 폐지하도록 하되 현재 남아 있는 업종에서 무제한 노동으로 인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근로시간에 배제된 노동자는 이들뿐만이 아니다. 고정야근수당 등 초과근무 수당을 미리 산정해 월급에 포함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적용받는 사무실 노동자들도 주 52시간제와는 동떨어져 있다. 포괄임금제는 영업이나 운송, 경비 등 외근이 많고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운 업종에서 시작됐지만 사무직 및 IT 등에서 무제한 노동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의 ‘포괄임금제 개선방안’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 사업장(1570곳)의 30.1%(472곳)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성기 고용부 차관은 최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포괄임금제 지침을 마련하고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 52시간 근무제 안착은 유연근무제가 해법    

주 52시간 근무제를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산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당장 7월1일부터 근로자 300인이 넘는 기업은 평일 40시간, 휴일 12시간 이상을 근무하면 안 된다. 300인 미만 기업은 2020년부터, 50인 미만은 2021년 7월부터 각각 적용된다.해당 기업은 주 52시간 근무를 맞추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점심시간을 근무 시간에서 빼거나 오후 6시가 지나면 사무실 전기를 차단하는 방안도 나왔다. 어떤 기업은 업무종료 후 거래처 직원을 만나는 것도 업무이니 자제하라는 지침까지 나왔다.헛웃음이 난다.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인지 근무시간을 맞추는 게 우선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근무 시간을 법으로 강제할 정도로 우리 근로 환경이 안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일에 열정을 쏟는 실리콘밸리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도입 취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업계의 걱정이 많다. 특정 기간에 정해진 인력을 투입하는 수주사업 현장은 고민이 더욱 짙다. IT서비스와 SW업계가 해당된다. 대부분 사업은 제안요청서(RFP)에 투입인력을 정해 놓는다. 대가 산정 기준이 된다. 투입 인력은 정해진 반면에 사업 범위는 계약과 수행 단계를 거치면서 늘어난다. 주 52시간을 맞추면서 사업의 성공완료는 불가능하다.업계는 해법으로 선택근무제를 제시한다. 선택근무제는 특정 기간 내 평균 주 52시간 근무 시간을 맞추면 되는 제도다. 예를 들어 10개월을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더라도 한 달 이상 유급휴가로 보낸다면, 1년 평균 근무시간은 주 52시간을 충족시키게 된다. 현재 많은 IT 기업이 프로젝트 투입 인력에 이를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법률로 선택근로제 인정기간이 1개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현실에 맞지 않다. 최소 6개월에서 최장 1년으로 연장해야 한다.해결해야 할 근본문제도 있다. 정보화 사업 대가 산정을 개선해야 한다. 정보시스템 구축 및 운영에 대한 사업대가는 기능점수 방식으로 규모를 산정한 후 사업 특성별 보정계수를 적용하고,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서 제시한 기능점수별 단가를 적용하여 SW사업대가를 산정한다. 현재 투입인력 수로 대가를 산정하는 '헤드카운팅' 방식 아래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이 요원하다. 프로젝트 결과물을 대가 산정 기준으로 삼는 '펑크션 포인트' 방식 도입이 절실하다. IT서비스와 SW 외에도 게임, 보안 등 여러 산업에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른다. 정부는 정책 시행 시 현장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도입하는 제도도 현장에 맞지 않으면 상황을 악화시킨다.

더 늦기 전에 후속 조치를 내놔야 한다. 예외업종 추가에서 유연근무제 시간 확대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책과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는 시행 이후 실태조사를 거쳐 보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후(事後) 땜질 처방이 될 공산이 크다. 삶의 질만큼이나 기업 경영 환경도 중요하다. 근로자 생활을 책임지는 것도 결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유연한 근로 제도로 우리나라 직장인도 미국 실리콘밸리 근무자처럼 열정을 바쳐 일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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