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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宗敎新聞 日本語版
(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質問23
存在だけで具足する
기사입력: 2018/07/09 [06:1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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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23) ‘존재만으로 구족하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물질이나 인연에 대한 집착을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質問23)「存在だけで具足する」とおっしゃいますが、物質や縁に対する執着を融解することが容易ではありません。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구족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진리’를 증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자각’할 때 ‘증언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존재’도 스스로일 수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게 하는, 즉 ‘비존재’적인 측면의 더 사실적인 측면이 있으며, 이 더 사실적인 측면은 드러난 ‘존재’를 통해서 ‘스스로’를 증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자각’할 때, 그리고 ‘자각’되어짐으로 해서, ‘지금의 나’로 여겨지고 있는 ‘나’는 ‘증언’할 수가 있으며, ‘증언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存在」するということだけでも、十分に具足しているのです。なぜなら「存在」は、それ自体ですでに「真理」の証拠であり、これらの事実を「自覚」したときに「証言者」になることもあるからです。つまり、どんな「存在」も自らであり得ず、そうであるから「存在」させる、即ち「非存在」的な側面のより事実的な側面があり、このより事実的な側面は、現れた「存在」を通じて「自ら」を証拠としており、このような事実を「自覚」したとき、そして「自覚」することになることによって「今の私」と考えている「私」は、「証言」することができ、「証言者」になることもできます。    

따라서 ‘존재로서 증언자’는 ‘존재’만으로 충분히 구족하다는 사실을 알 때, ‘증언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과 각종의 ‘무엇’에 대한 집착을 놓기가 쉽지 않은 ‘이유’라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집착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집착을 하고, 붙들고,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붙들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들지 않으면 내려놓을 필요도 없는 것이며, 집착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したがって、「存在としての証言者」は、「存在」するだけで十分に具足するということを知るとき、「証言者」にな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そして、物質と各種の「何か」に対する執着を融解することが容易ではない「理由」というものはありません。なぜなら、執着しなければよいからです。自分が自ら執着をして、握って、持っているものです。だから、握っていなければよいのであり、持っていなければ、下に置く必要もなく、執着しなければよいのです。    

(질문)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깨달음’의 방해요소로서, ‘집착’은 쉽게 해결될 부분이 아닙니다.    

(質問)一体なんのことでしょうか。これまで「悟り」の妨害要素として、「執着」は、簡単に解決される部分ではありません。
    

도대체 ‘누가’ 집착을 하고 있습니까? ‘누가’ 붙들고 있습니까? ‘누가’ 들고 있습니까?

내가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내가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붙들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들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집착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한다’는, ‘내가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세요.    

一体「誰が」執着をしていますか。「誰が」握っていますか。「誰が」持っていますか。

私がしています。「私がする」ということだけは明らかな事実です。だから、私がしなければよいのです。もう一度言いますが、握っていなければよいのであり、持っていなければよいのであり、執着しなければよいのです。「私がする」という、「私がしている」という事実に注目して下さい。    

(질문) 물질과 인연에 대한 집착이 ‘깨달음’의 방해요소가 아니라면, 진경님이 생각하는 ‘방해요소’는 무엇입니까?    

(質問)物質と縁に対する執着が「悟り」の妨害要素でなければ、眞鏡さんが考える「妨害要素」とは何ですか。
    

자기 자신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사랑의 부재’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외는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무엇이며,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와 통찰은 ‘즉각적’입니다.    

自分自身に対する「無関心」です。つまり、「自己愛の不在」であると言えます。その他にはありません。したがって、「私は何であり、誰か」に対する探求と洞察は「即時的」です。    

(질문) 논외의 질문이지만, 집착으로 인해서 ‘뇌’를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연유가 있습니까?    

(質問)論外の質問ですが、執着によって「脳」を限定的に使用しているとおっしゃいました。どんな理由がありますか。
    

근본적으로 ‘집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집착을 내가 하고 있기 때문이며, 내가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집착하지 않으면 되는 간단한 이치를 외면하고, 계속적으로 집착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언가’에 중독이 되어 있기 때문이며, 담배와 술에 대한 중독만이 아니라, 물질적인 ‘삶’ 과 육신적인 ‘삶’ 그 자체가 ‘중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根本的に「執着」を解決する方法というのはありません。なぜなら、執着を私がしているからであり、私がしなければよいのです。だから、このような事実を知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どんな薬でも効果がないと言えます。執着しなければよいという簡単な理致を無視して、継続的に執着が続く理由は、「何か」に中毒になっているためであり、タバコや酒の中毒だけでなく、物質的な「生」と肉体的な「生」それ自体が「中毒」であると言えます。    

사람의 ‘뇌’는 ‘무언가’에 중독이 되었을 때, 중독성을 유지하는 ‘수용체’가 생겨나며, 이 수용체로 인해서 ‘삶’의 활력소라고 여겨지는, 환상을 심어주는 호르몬을 유발하여, 원기 왕성하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즉 수동적 의식으로 인해서 사용하고 있는 육체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뇌’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기능이 제한적으로 하향 조정되는 이치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러한 중독성을 알아차리고 자유로워질 때 ‘뇌’와 모든 육체적 감각기능 또한 상향조정될 수가 있습니다.    

人の「脳」は、「何か」に中毒になったとき、中毒性を維持する「受容体」が生じて、この受容体により「生」の活力素と考えられる幻想を植え付けるホルモンを誘発して、元気旺盛に見えるようにするのです。しかし、これによって、即ち、受動的な意識により使用している肉体の機能が低下するのです。「脳」だけでなく、すべての感覚機能が限定的に下向調整される理致です。そして、「自ら」このような中毒性に気付いて自由になるとき、「脳」とすべての物理的感覚機能もまた上向調整され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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