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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모 칼럼
노동시간 단축…포괄임금제 무엇이 문제인가
文정부 규제 공언했으나 기업들 반발에 ‘미적’…일각선 “규제입법 적용을”
기사입력: 2018/08/10 [17:4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양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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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연봉은 금(金) 3200만원으로 한다. 연봉은 기본급과 법정수당을 합한 포괄임금으로 산정한다.” 
  
지난 1월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웹디자이너 J씨의 2015년 연봉계약서에 적힌 내용이다. 그의 연봉 3200만원에는 월(月) 69시간분의 연장근로수당과 29시간분의 야간근로수당이 포함돼 있다. 연장수당을 미리 급여에 집어넣은 전형적 포괄임금 계약이다. 계약서에 정해진 연장근로시간 자체가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 제한시간인 주(週) 12시간을 훌쩍 넘는다.     

연봉에 초과 근로수당 미리 포함…기업엔 ‘공짜 야근 자유이용권’
사업주들 “임금계산 간편” 사업장 10곳 중 3곳 활용…10인 이상은 절반 넘어
  

◆‘월정액 노동력 자유이용권’     

이러한 방식으로 근로계약을 맺으면 사용자는 아무리 야근을 많이 시켜도 인건비를 더 쓸 필요가 없다. 사장에게 주어지는 ‘월정액(月定額) 노동력 자유이용권’인 셈이다. 오래 일할수록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줄어드는 셈이다. 이런 계약에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초과근무에 내몰린다. 회사가 노동자들의 출퇴근 관리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근태관리에 드는 노무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실제로 J씨는 늘 일 부담에 시달렸다. 아침에 출근해 새벽 2~3시에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일도 잦았다. 그가 이 회사에서 일한 2년8개월 동안 연장근로 제한한도인 주 12시간을 넘겨 일한 게 무려 46주에 달한다. 너무 긴 노동시간 때문에 이 회사 직원들 가운데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도 여럿이었다. J씨도 과도한 업무 끝에 우울증이 악화돼 결국 극단적 선택까지 내몰렸다.

더 일해도 수당은 그대로… 결국 일할수록 임금 줄어    

7월1일부터 노동시간 단축이 시행됐다. 이에 맞춰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포괄임금제를 규제할 방안도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포괄임금제는 연장근로수당을 일한 만큼 지급하지 않고, 정해진 금액만 급여에 넣어서 주면 되게끔 한 제도다. 근로기준법에도 적혀 있지 않은 이런 관행이, 1974년 “수당 산출이 어려울 경우 수당을 미리 합산해 일정한 급여를 지급하는 것도 허용된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로 노동현장에 굳어져 제도화됐다. 몇 시간을 일하든 상관없이 사전에 일정액을 정해 ‘초과근로수당’ 명목으로 일괄 지급하거나, 기본임금조차 정하지 않고 수당을 모두 합한 금액을 임금으로 주는 방법이 흔히 쓰인다.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구분하기 어렵거나 상황에 따라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한 업종에서는 노동시간을 측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임금을 계산하는 게 노사 양쪽에 모두 편리할 수 있다.   

문제는 ‘계산이 편하다’는 이유로 포괄임금제가 남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사업장 중 30.1%가 포괄임금제를 활용한다. 10인 이상 사업장만 따지면 52.8%나 된다. 포괄임금제가 장시간 노동을 부추긴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서는 초과근로수당 상한선을 설정하거나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사업장이 실제 초과근로시간을 따져 돈을 주는 사업장보다 노동시간이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 ‘규제지침’ 발표 미루는 정부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부터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포괄임금제 남용을 규제하겠다고 공언했다. 취임 초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괄임금제 규제’가 포함돼 있었고, 주 52시간제 시행에 앞서서도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막을 지침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2017년 11월 나온 지도지침 초안을 보면 노동부는 출퇴근시간을 확인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만 포괄임금제를 적용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반 사무직처럼 노동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직종에서는 아예 포괄임금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노동부는 아직까지도 지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이성기 노동부 차관은 노동시간 단축을 앞두고 지난 4월 “6월까지는 포괄임금제 지침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이 약속도 차일피일 미뤄졌다. 7월 중에는 지침을 내놓겠다던 노동부는 다시 발표 시기를 8월로 미뤘다. 정부가 미적대는 사이 위메프와 네이버 등 일부 IT업체들이 먼저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경영계가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줄이기에 반발하자, 기업들 눈치를 보느라 포괄임금제 규제 시기를 늦추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침이 나오면 상당수 기업들이 임금체계를 대대적으로 고쳐야 한다. 그래서 경영계는 포괄임금제 규제에 줄곧 부정적이었다. 지난 6월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 702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88.9%가 포괄임금제 규제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한 만큼 수당을 줘야 하고, 돈을 들여 노동시간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이 하루빨리 자리를 잡으려면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제도를 빨리 손질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이진아 이산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제한이 현장에서 엄격하게 지켜지고 야근수당도 제대로 지급되게 하려면 포괄임금제에 대한 확실한 운영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지침으로만 규제할 것이 아니라 입법을 통해 법적 구속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포괄임금제 계약 자체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지난해 3월 발의한 상태다.             

노동시간 산정 쉬우면 포괄임금 계약 ‘무효’
법원, 특정한 조건 안 갖추면 “효력 없음” 판단 추세
    

정부의 규제지침이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포괄임금제가 어떤 사업장에서든 무제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로기준법에 근거규정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받지 못한 수당을 달라며 소송을 걸었을 때 법원이 개별적으로 포괄임금제가 성립되는지 판단한다. 특히 노동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은 경우, 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는 경우가 많다.

2010년 대법원이 군(軍)복지지원단 민간인 근무자들의 포괄임금 계약을 무효라고 판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규정을 적용하기 어려운 사정이 없다면 포괄임금 계약은 허용할 수 없다”며 근로기준법에 따라 계산해 미지급 수당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노사 간에 포괄임금제를 채택하겠다는 명시적 합의가 없는 경우에도 포괄임금제 적용은 무효이다. 2012년 대법원은 시내버스 운전기사들이 회사를 상대로 연장근로수당을 요구하며 낸 소송에서 “일한 시간만큼 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사 임금협정에 ‘정확한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루 12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하고 임금을 지급한다’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는 ‘명시적 포괄임금 계약’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계약 자체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더라도 포괄임금제하에서 받은 임금을 시급으로 환산했을 때 최저임금보다 적다면 차액(差額)만큼 수당을 줘야 한다.

지난 6월 대법원은 포괄임금 계약으로 일하던 병원 야간경비원이 “최저임금보다 적은 시급을 받았다”며 낸 수당청구 소송에서 “포괄임금제 약정이 유효하다고 해도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줄 의무가 있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포괄임금제 폐지하면 ‘공짜야근’ 사라질까     

포괄임금제 폐지에 대하여 세간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앞서 그 동안 관행적으로 포괄임금제를 적용해왔던 대기업들도 하나씩 포괄임금제를 폐지를 선언하고 있다. 정부도 포괄임금제 폐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8월까지 발표할 계획이다.

실제 추가근무 시간과는 상관없이 정해진 수당만을 지급하던 포괄임금제의 가장 큰 문제는 근로자들이 초과근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이른바 ‘공짜야근’에 대한 지적인데, 그밖에도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흐름에도 역행하여 포괄임금제가 야근을 부추긴다는 지적 또한 많다.

게다가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일부 사업장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관행적으로 적용돼 오면서 그 문제를 키웠던 측면도 있다.

노동법 전문 조인선 변호사는 “2018년 개편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을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 역시 강화됐다. 또한 단축된 근로시간에 따라 관행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포괄임금제를 지속적으로 실시할 경우 형사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따라 정부의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나올지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단순히 포괄임금제 폐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오·남용(誤濫用)하는 사업장이 없도록 관리 감독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기존에 사용자가 포괄임금제를 악용하더라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근로자가 상당히 많았는데, 근로자의 권리가 확실히 보장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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