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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質問31

眞鏡 | 기사입력 2018/09/03 [06:57]
忽然と考えると、都是夢中である。

(韓日對譯)‘洞察!天問天答’(不滅の自覺)質問31

忽然と考えると、都是夢中である。

眞鏡 | 입력 : 2018/09/03 [06:57]
(질문31) ‘나는 누구이다’가 해체되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서 자유로워진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점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質問31)「私は誰だ」が解体された後、「私」は何でもないものとして自由になるとおっしゃいましたが、その点についてもう少し説明して頂けますか。
    

‘나는 무엇이며, 누구이다’는, 아무리 미화가 된다 할지라도 자기 정의이며, 자기규정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규정’으로 인해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한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고서, 화두로 삼아 공부를 한다고 할지라도, 최종적으로 ‘나는 무엇이며, 누구이다’는 또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지금의 나’에 대해서 ‘변함없는 만족’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서 또 다른 ‘나는 누구이다’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私は何であり、誰である」は、どんなに美化されるとしても、自己定義であり、自己規定であるといえます。そして、そのような「規定」により制限的であるしかなく、「一人」であって、自分自身の正体性に対して疑求心をもって、テーマとして勉強をするとしても、最終的に「私は何であり、誰である」は、別の結論に到達するのです。なぜなら、誰でも「今の私」について「変わらない満足」をす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あり、それによってまた別の「私は誰である」を渇望するからです。    

그러니 똑같은 ‘화두’를 들고서 정진한다 할지라도, ‘답’을 찾고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 매진하는 수행자와, 스스로 ‘지금의 나’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고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는 수행자와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납니다. 왜냐하면 ‘답’을 찾은 수행자는 또 다른 ‘속박’상태에 매여 있지만, ‘지금의 나’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고서, ‘지금의 나’를 해체해 버린 ‘그’는 이제 더 이상 ‘자기규정’을 하지 않으므로 해서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だから、同じ「テーマ」を挙げて精進するとしても、「答え」を探して「結果」に至るために邁進する修行者と、自ら「今の私」について疑求心をもって「自分自身」を知るために、ただ「自分自身」にだけ関心を傾ける修行者とは、天と地ほどの違いがあります。なぜなら、「答え」を見つけた修行者は、また別の「束縛」状態に縛られていますが、「今の私」について疑求心をもって「今の私」を解体してしまった「それ」は、もはやこれ以上「自己規定」をしないので、自由であるからです。    

따라서 ‘자기규정’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는 가장 자연스럽고 상식적이며, 그 ‘의문’이 반드시 ‘답’을 필요로 하는 ‘의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자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したがって、「自己規定」がない「私は誰なのか」は、最も自然且つ常識的であり、その「疑問」が必ず「答え」を必要とする「疑問」ではなく、「自分自身」に対する関心であり、「愛」であるといえるのです。    

(注釈) 疑求心 – 疑いながら求める心を言う。    

(질문) 그렇다면 최고의 ‘자기 사랑’은 무엇입니까?    

(質問)そうであれば、最高の「自己愛」とは何ですか。
    

‘자기 정의’와 ‘자기규정’을 해체하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최고의 ‘자기 사랑’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自己定義」と「自己規定」を解体して、「私は誰なのか」という「疑問」を通じて「自分自身」に関心を傾けることは、最高の「自己愛」であるといえます。    

(질문) 예전에 ‘초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비로운 마음과 연민하는 마음이면, 아주 훌륭한 재목이다’라고 하셨습니다.    

(質問)以前「超脱」に至るためには、「慈悲の心と憐憫の心であれば、非常に優れた素質である」とおっしゃいました。
    

제가 이야기하는 ‘연민과 자비’는,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불행으로부터 벗어나, 효과적으로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私が話している「憐憫と慈悲」は、苦痛と恐れ、そして不幸から抜け出して、効果的にまた別の夢を見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手伝おうとする心ではありません。    

‘한 사람’으로서 평생 동안에 겪는 모든 일들이 꿈과 같으며,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불행으로 인해서, 일생을 ‘속박’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사람’조차, 꿈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참 자비’라 할 수가 있으며, ‘자기 자신’의 위대함을 모르고, 고통 받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한 ‘연민’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로부터 비롯되어진 모든 것과 모든 이는, 결국 ‘이유 불문’하고 ‘하나’다 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제가 이야기하는 ‘연민과 자비’이며, 모든 이와 모든 것에 대해서 보편적입니다.    

「一人」として一生の間に経験するすべてのことが夢のようであり、苦痛と恐れと不幸によって、一生を「束縛」と認識している「一人」でさえ、夢であると知らせることが「真の慈悲」であるといえ、「自分自身」の偉大さを知らず、苦しんでいると「錯覚」に陥っていることに対する「憐憫」を言っているのです。

ただ「一つ」から始まることになるすべてのものとすべての人は、結局「理由不問」であり「一つ」であるという事実を知らせることが、私が話す「憐憫と慈悲」であり、すべてのこれとすべての人について普遍的です。    

(질문) ‘한 사람’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불행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質問)「一人」の苦痛と恐れ、そして不幸を探ってみると、心が痛みます。
    

저도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만큼은 단호할 것입니다. 당면하고 있는 고통과 두려움과 불행이 꿈이며, 행복 또한 꿈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창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줄 수 있다면, 불행도 행복도 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私も心が痛むことは同様です。しかし、そのくらい断固たるものです。当面している苦痛と恐れと不幸が夢であり、幸せもまた夢であることを絶えず唱えるのです。なぜなら、もし不幸を幸せに変えてやることができれば、不幸も幸せも夢として受け入れるのではなく、実在する「現実」として受け入れるからです。    

(질문) 부를 이루고, 명예를 이루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으며, 이루기 위해 달려가면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質問)富をなし、名誉をなし、「幸せ」という人がおり、なすために走って行きながら「幸せ」という人がいます。
    

이룬 것들이 사라질까 두렵고, 도달하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죽을까 봐 두렵기는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なしたものが消えるかと恐れ、到達できないのではと恐れています。死ぬかもしれないという恐れは誰も避けることはできません。    

(질문)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質問)助言をお願いします。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이로다. 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 손가! 오호라 나의 몸이 풀잎 끝의 이슬이요, 바람 앞에 등불이라.’    

「忽然と考えると、都是夢中である。千万古の英雄豪傑が北邙山の墓である。富貴文章は役に立たない、黄泉の客を免れることができるのか。ああ私の体は葉先の露であり、風前の灯である。」    

‘지금의 나’는 반드시 사라질 ‘나’라는 것을 받아들여 보세요. 그에 따라서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둠’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빛의 부재이듯이, ‘번뇌와 두려움’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관심과 자기 사랑의 부재일뿐이기 때문입니다.    

「今の私」は、必ず消える「私」であるということを受け入れてみて下さい。それに従って「恐れ」が消えるのです。なぜなら「闇」というものが実在するのではなく、単に光の不在であるように、「煩悩と恐れ」は、実在するのではなく、単に自己関心と自己愛の不在に過ぎないからです。    

(주석)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이로다. 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문장 쓸데 없다, 황천객을 면할 손가! 오호라 나의 몸이 풀잎 끝의 이슬이요, 바람 앞에 등불이라.’ ― 경허(鏡虛)선사[1846(헌종 12)-1912]가 지은 <경허집(鏡虛集)> 내용 중 일부이며, 조선 말기의 승려. 선종을 중흥시킨 대선사이다. 선(禪)을 생활화하고 실천화한 선의 혁명가이자, 근대 선의 물결이 그를 통하여 다시 일어나고 진작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마조로 평가된다.    

(注釈)「忽然と考えると、都是夢中である。千万古の英雄豪傑が北邙山の墓である。富貴文章は役に立たない、黄泉の客を免れることができるのか。ああ私の体は葉先の露であり、風前の灯である。」- 鏡虛禅師[1846(憲宗12)~1912]が記した<鏡虛集>の内容の一部であり、朝鮮末期の僧侶。禅宗を中興させた大禅師である。禅を生活化して実践化した禅の革命家であり、近代禅の波が彼を通して再び起こり、揺り動かしたという点において韓国の媽祖と評価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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