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전체기사포커스범종교가톨릭개신교불교민족종교해외종교이슬람다문화 사회기획특집
전체기사 Trend & View 마음을 비춰보는 포토에세이 종교지도자 칼럼 이상훈 박사의 ‘바둑으로 배우는 성경공부’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편집  2018.11.19 [07:48]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안내데스크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저작권문의
구독신청
불편신고
독자투고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기사제보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수확을 조금 남겨두라-안식일 설교
“너희도 과거에 나그네였음을 기억하라”
기사입력: 2018/10/29 [19:5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주형식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레 19:9,10)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율법은 거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지구상에 거지가 없는 나라, 노숙자가 없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강대국 미국에도 대도시 다운타운에 가면 거지들, 노숙자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은 어떨까요? 흔히들 파리가 낭만의 도시라고 하지만 실제로 파리에 가보면 생각보다 도시도 지저분하고 거지나 노숙자도 많아서 깜짝 놀랍니다. 유럽의 대도시에도 거지나 노숙자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지가 없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비록 가난한 사람은 있었지만 거지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거지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가난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 삶을 책임져 줄 보호자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바로 그들입니다.

모세오경에 나타난 많은 율법들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이런 사회적 약자를 돌볼 책임을 질 것을 명령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가난한 사람을 거지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그들에 대한 사회적 보살핌을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논밭과 과수원을 소유한 사람들은 율법을 따라 수확물 중 일부를 남겨야 했습니다.

본문은 레위기 19장의 다양한 법들 속에 등장하는 짧은 구절입니다. 레위기 19장의 법들은 언 듯 보면 체계나 통일성 없이 무작위로 나열된 것 같아 보입니다. 오랫동안 이 장을 연구한 신학자들은 레위기 19장의 법들이 논리나 체계가 없이 그냥 기록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레위기 19장은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계명과 더불어 주로 약자를 배려한 사회정의와 자비에 관한 법들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이웃을 억압하지 말고, 착취하지 말고,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주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계명과 더불어, 장애인을 잘 보살펴 주고, 나그네를 학대하고 차별하지 말라는 약자 보호법이 레위기 19장에 등장합니다. 본문말씀은 자비로운 추수 방법에 대한 규정인데, 이 말씀 역시 약자 보호법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경제적 파탄을 당해 빈민층이 되는 사람들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토지의 소유권을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성경인물 중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룻기 1장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입니다. 경제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엘레멜렉은 땅을 다 팔아서 빚을 갚고 어디로 갑니까?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갑니다. 하지만 거기서 엘레멜렉은 사망하고, 이어서 10년 뒤 두 아들마저 다 죽는 바람에 나오미는 가난한 과부 신세가 되어서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가난한 두 과부가 무엇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가 있었습니까?

(룻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가난한 과부였던 나오미가 룻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레위기 19장 9절, 10절에서 명한 율법에 따라 이삭줍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법은 밭과 과수원에서 추수할 때에 떨어진 이삭과 남은 과일은 나그네와 과부, 고아의 몫으로 줄 것을 권장하는 법이었습니다.

(레 25:25-27)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또한 나오미의 집안처럼 갑작스럽게 경제적으로 파탄나서 집과 땅을 다 팔아버린 사람들을 위한 또다른 법이 마련되었는데, 이 법을 가리켜서 “고엘 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인데 “무르다”, “되찾다”, “구속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집과 땅을 다 팔아버리고 알거지가 된 사람들을 위해서 가장 가까운 친족이 대신 땅값을 지불하고 그 땅을 되찾아 주도록 하는 법입니다.

(룻 4: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런데 “고엘”, 즉 “기업 무를 자”가 되려면 전제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기업무를 사람은 가장 가까운 친족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자격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룻과 결혼을 함으로 보아스는 “고엘”로서의 합당한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의 땅을 되찾아 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나오미의 집안처럼 부동산을 잃은 가난한 사람들과 땅도 없이 유리하는 외국인 체류자, 나그네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여러 가지 법적 장치를 마련해서 그들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에 나타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율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바로 룻기입니다. 룻기는 자비로운 추수에 관한 법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이 법과 고엘법이 아니라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먹고 살 일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 법들은 자비를 베푼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더욱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레위기의 이 율법을 자세히 보시면, 주인이 남겨놓는 곡식과 과일의 수량을 얼마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것은 주인의 재량에 맡겨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주인이 밭에 이삭을 넉넉하게 남겨두고, 낫질을 하지 않은 모퉁이도 넓게 남겨두고, 가지에 포도송이도 넓게 남겨두는 자비심을 많이 베풀면 많이 베풀수록 하나님께서 더 많이 축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레 25:3-7)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지니라

여기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안식년 법 역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율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법에 의하면 매 7년마다 안식년으로 땅을 묵히고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땅이 푹 쉬고 원기를 회복해야 하기 때문에 파종도 하지 않습니다. 과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지를 치지 않고 스스로 난 열매도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이 때 땅에서 스스로 싹이 트고 곡식이 자라납니다.

이 안식년 법은 그 해에 땅의 원주인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땅의 소유권이 위임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안식년에 저절로 얻게 된 수확물은 모두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남종과 여종과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들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약자보호법은 하나님이 약자들의 후견인이요 주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그분께서는 약자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약자들이 억압을 받으며 고통 속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시고, 직접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약자들을 돌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마태복음 26장 65-66절에서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도 내주라고 하시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의 가르침을 이어가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거지가 없었던 나라,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신약에 등장한 거지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보면 성도님들, 신약성경에서는 거지가 등장을 합니까? 안합니까? 신약성경에는 거지가 등장을 합니다.

(눅 16:20,21)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피부가 여기저기 곪고 터진 몸으로 대문 앞에 앉아서 부자의 호화로운 밥상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목숨을 연명했습니다. 영양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온 몸이 헌데 투성이어서 개들이 와서 핥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냉정했고, 나사로는 결국 굶어 죽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는 장님 바디매오가 등장하는데 바디매오도 직업이 뭐에요? 거지였습니다.

율법대로라면 거지가 없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모세의 율법을 그렇게 철저하게 지킨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득실득실했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거지들이 많았습니다. 부자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데 율법을 악용했습니다.

부모공양을 피하기 위해서 고르반 제도를 악용하는 꼼수를 쓰던 것도 그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의 고아와 과부, 가난한 사람들은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학대를 받으며 방치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일부를 남기는 추수법    

다시 레위기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본문에는 특별히 두 부류의 사람들이 언급됩니다. 하나는 “가난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거류민”입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는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를 보면 “괴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로 갑자기 재산을 잃은 사람을 포함해서 고아와 과부가 자동적으로 여기에 포함이 될 것입니다.

“거류민”은 잠시 체류하는 떠돌이 외국인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스라엘 땅에 아무런 연고가 없고 친인척도 없기 때문에 생계를 책임져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와줄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오늘 본문과 같은 자비로운 추수법이 주어진 것입니다.

당시 지주들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품꾼들을 시켜서 추수를 했습니다. 밭에서 보리와 밀을 수확하는데, 낫을 사용해서 자르는 방식이 과거 우리나라와 비슷합니다. 낫으로 보리나 벼를 베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낫질을 해서 바닥에 쌓아 두는데, 나중에 단으로 묶을 때 몇 가닥씩 여기저기 바닥에 남게 됩니다. 구약 율법은 그렇게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고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밭주인이 그런 인정머리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더불어 밭의 모퉁이에 있는 벼나 보리는 그것까지 알뜰하게 싹싹 수확하지 말고 넉넉하게 남겨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 또한 누구를 위해서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포도원 열매도 다 따지 말라고 하십니다. 본문 말씀에 “다 따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다 벗겨간다”라는 뜻입니다. 포도를 수확한 후에 남은 빈약한 포도송이, 벌레가 먹거나 깊숙하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포도송이, 그런 것까지 샅샅이 훓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라고 하십니다.

(신 24:19-21)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신명기 24장에서도 하나님이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특히 신명기 24장에서는 추수 후 잊어버리고 밭에 두고 온 곡식 단이 있어도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그냥 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더 큰 복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한마디로 이 율법은 곡식이든 과일이든 추수할 때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들을 위해서 약간 남겨 놓으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율법은 그것을 얼마나 남겨놓으면 좋을지 그 양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랍비들이 양을 정해 놓았습니다. 추수물의 1/60을 남겨놓아야 한다고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것도 적지 않는 양입니다. 랍비들이 이러한 규정을 만들었지만, 성경은 확실하게 얼마를 남겨 놓는가는 양을 정하지 않고 주인의 재량으로 맡겨 놓았습니다.

만약 어떤 주인이 자비심이 충만해서 1/60 이상으로 넉넉하게 남겨 놓았다면 그 사람의 자비로 인해서 많은 곤궁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더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룻 2:15,16) 롯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성실한 룻의 모습을 본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곡식 다발에서 일부러 곡식을 뽑아내서 바닥에 많이 흩어 놓으라고 지시합니다. 보아스가 이러한 선의를 베푼 마음이 넉넉한 부자였기에 하나님께서 보아스에게 많은 축복을 주시고, 결국 그와 룻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에 기반을 둔 약자보호법    

그런데 사실 고대법을 연구해보면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법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국가들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약자를 보호하는 법들이 있었음이 고고학 발견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우리나라도 옛날 어르신들 보면 이런 자비심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나무 꼭대기에 있는 과일은 따지 않고 남겨 두고서 그것을 뭐라고 불렀어요? 까치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삭과 과일을 남겨두라는 이스라엘 법에는 이런 까치밥처럼 동물에 대한 배려도 있었습니다. 안식년 법에서 7년째에 저절로 열매가 맺은 것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동물이 먹도록 하라고 율법에 정해져 있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러한 약자에 대한 보호의 정신은 오늘날 인류가 가져야 할 보편적인 정신, 보편적인 책임에 대해서 강조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가 저소득층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같은 가난한 나라를 위한 원조와 구제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약자보호법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제도를 시행한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이 다른 국가들과 차별되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레 19:34)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성경은 왜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너희도 과거에 나그네였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애굽 땅의 노예였음을 기억하라. 그 학대받던 너희가 구원을 받았으니 너희도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도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보편적인 자비심을 넘어서는 더 큰 자비심,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크신 사랑을 우리가 받아 누린 것처럼, 그 사랑을 또한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결코 빵의 문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서 밭에 이삭을 더 남겨두고, 모퉁이에 곡식도 더 남겨야 할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포도송이도 더 남겨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자비로운 손길을 꼭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형식(서울 묵동교회 담임목사·목회학 박사)
ⓒ 매일종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안내데스크신문사소개광고안내저작권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독자투고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범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룬다.
회장 이옥용 /발행-편집인 신민형 / 양형모 상임고문 / 편집국장 이중목
우) 140-846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70번지 (83길 21)
대표 전화: 02-703-8267 | 팩스: 02-3211-4419 인터넷 매일종교신문
등록번호:서울 (아)01319(범종교신문 등록 2009년 9월 1일,2013년 6월 15일 제호변경)
기사제보 : minhyung-s@hanmail.net
Copyright ⓒ 2009-2013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