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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36
독일 출신 고승 나냐띠로까 마하테로(대장로)와 스리랑카
기사입력: 2020/09/15 [08:1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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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냐띠로까 대장로의 자서전(2008년).    

 

독일 출신 고승 나냐띠로까 마하테로(대장로)와 스리랑카  

 

나는 남방불교 국가인 태국에 가서 비구계를 받고 직접 수행 체험을 해본 적이 있다. 태국에서의 연수과정을 마치고 스리랑카에 가서 인도의 원형불교를 잘 지켜가고 있는 스리랑카 불교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때 독일 출신으로 스리랑카에 와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본인 스스로 비구로서의 수행을 하면서 빨리어 경전을 독일어-영어로 번역하여 서구 사회에 불교경전과 교리, 불교철학을 전파한 냐나띠로까(Nyanatiloka Mahathera 18781957)란 고승의 정보를 듣게 됐다.

 

나 역시도 불안정한 이국생활을 하면서 오직 구도의 일념과 호기심으로 이른바 아일랜드 허밋티지(Island Hermitage IH 섬 암자)를 찾아가서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이 분에 대해서 연구한 적이 있다.

▲ 40여 년 전 스리랑카 와지라라마 사원에서 연수중일 때의 필자(우측).  


내가 이 섬 암자를 찾았을 무렵인 ‘80년대 초에는 냐나띠로가 대장로는 1957년에 입적한 후였고, 그의 제자인 냐나뽀니까 장로비구(19011994)도 캔디의 숲 속 암자로 옮겨간 후였다. 냐나띠로까의 손상좌가 섬 암자를 지키고 있었다. 스리랑카 자체도 섬나라이지만, 섬 암자는 조그마한 무인도 같은 도단두와 섬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섬 암자는 1911년 냐나띠로가 대장로가 세웠고, 유럽출신 서구인들이 승려가 되는 관문이었고, 또한 서구 출신 비구들이 와서 명상과 빨리어 경전을 학습하는 센터이기도 했다. 조그마한 외 딴 섬이지만 이곳의 도서관은 너무나 귀중하고 유용한 상좌부 도서들을 수 만권 간직하고 있는 지식의 보고랄 수 있는 장서가 있는 곳이다.   

▲ 섬 암자의 선상 수계식 법당.

 

100년의 역사가 쌓이면서 이곳 암자도 유명해졌다. 기독교의 선교역사를 보면 참으로 조직적이고 재정적인 후원에 의해서 아시아에 파견되어서 선교를 한 바 있다. 불교역사상 고대 인도에서 기원전 3세기 경,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과 기원후 2세기경 쿠샨왕조의 카니슈카 대왕 정도가 불교전도 프로젝트를 후원했으며, 12세기 스리랑카가 미얀마와 태국에 불교를 전파했다, 하지만 근세에는 어느 나라고 해외불교 전도를 제대로 한 나라가 없다.    

 

그렇지만 진리를 얻고자 자기 나라를 떠나서 타국에서 그 나라의 문화와 종교 등을 연구해서 큰 업적을 내는 분들이 종종 있게 된다. 내가 스리랑카에 가서 감명 받은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실론불교의 부흥과 근대화 과정에서 실론 자체 내에서의 승가활동도 큰 몫을 했지만, 서구출신 비구가운데서 리더로서 조실격인 분이 냐나띠로까 대장로 비구이다.

▲ 독일출신으로 실론(스리랑카)에 와서 섬-숲속 불교학파를 창시한 냐나띠로까 마하테로(대장로) 비구 큰스님.  

 

참으로 이 분의 일생을 보노라면, 종교란 이런 것인가 하는 감동을 받게 되고 이처럼 한 인간의 인생행로를 바꿔놓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초지일관해서 처음 마음을 변치 않고 끝까지 수행자의 초심을 지켜내고 있는 냐나띠로까 큰 스님의 신념과 정신은 정말 본받을 만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동북아의 불교 풍토라면 종정은 물론 조실 방장을 하셔도 남을 분이었다.

 

냐나띠로까 대장로는 1878년 독일에 태어났다. 부친은 지방 김나지움의 교장 겸 교수였고, 모친은 왕립극장에서 피아노 연주자 및 가수였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모친의 영향으로 음악수업을 받았고 음악이론과 작곡공부를 하였으며, 여러 악기를 다룰 정도로 예능에 뛰어났다.

 

독일과 파리의 국립고등음악무용원 그랑제꼴을 졸업했는데, 파리국립고등음악무용원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프랑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음악 무용 학교로 파리 과학인문학대학교의 예술계열 그랑제꼴이다. 1795년에 설립된 이래 프랑스와 서유럽에서 음악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학교이다. 역사상 최초의 음악무용원으로서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음악가들과 무용가들을 배출한 역사와 전통의 음악무용학교이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구도의 열정이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한때는 기독교 수도원에 가서 수사가 되려고 출가한 적도 있었다. 그는 차차로 범신론적 신관을 갖게 되었고,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금주 금연가가 되었다. 한편 그는 음악가로서 성장했고, 철학자들의 책을 탐독했으며, 채식식당에 갔다가 우연히 신지학(神智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바이올린 선생이 건네준 수바드라 비구의 저서와 다른 불교서적을 탐독하고 나서는 아시아에서 불교승려가 되겠다는 욕망이 솟구쳤다고 그는 그의 자서전에서 밝혔다. 막연하게 아시아에 가서 비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나서도 그는 음악가로서 프랑스 알제리 터키 등지에서 활동했다. 1902년 비구가 되겠다는 작정을 하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여비를 모았고, 인도 봄베이를 거쳐서 실론으로 향했다.

▲ 냐나띠로까 대장로가 졸업한 파리국립고등음악무용원    


당시 실론은 브리티시 직할 식민지였고, 독일과는 외교관계가 긴밀하지 않아서 비구계를 받는데도 어려움이 있어서 버마로 향했다. 그곳에는 영국 출신인 아난다 메떼야(18721923)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영국 출신으로는 역사상 두 번째 비구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비구가 되기 전에는 황금여명회(黃金黎明會: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 멤버였다. 이 단체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고 해도 소개가 길어진다. 간단히 말하면 일종의 신비단체로서, 영국에서 19세기 말에 성립한 신흥종교의 일종이다. 그는 영국의 신비주의자인 알레이스터 크롤리(Aleister Crowley,1875~1947)와 가까웠는데, 그는 잉글랜드의 오컬티스트, 신비, 의식 마법사이자 시인, 등산가였다.

▲ 황금여명회의 상징 마크.  

  

아난다 메떼야 비구는 영국에 처음 불교 전도를 한 비구이기도 했는데, 냐나띠로까는 아난다 메떼야 비구의 안내로 1903년 사미계를 받고 행자 수업을 끝내고 1904년 정식으로 구족계인 비구계를 수지하고 냐나띠로까란 법명을 받았는데, 계사는 우 쿠마라 마하테라였고 그는 아비담마(구사론)의 대가였다. 냐나띠로까는 그로부터 아비담마와 빨리어를 배우고, 버마의 여러 지방을 만행하고 고승들을 친견하는 등, 당대 아라한으로 알려진 선승에게 위빳싸나 명상수행을 지도받기도 했다. 버마에서 비구가 되었지만, 빨리어와 빨리어 경전을 습득하고 연구하기 위해선 실론으로 가야 했다.

▲ 내나띠로까 대장로가 수계득도한 양곤의 응아 탓찌 파고다 사원(Nga Htat Kyi Pagoda)  


이 분의 자서전을 읽고 있으면 한 외국인 비구가 구도적 열정으로 이루어낸 업적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국적이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브리티시 직할 식민지 실론에서 두 번이나 추방되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에서도 꿋꿋하게 지켜낸 구도자의 일관된 신념과 수행자적 정신이 참으로 가상하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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