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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⑬ 스리랑카 적통 상좌부 불교와 이웃 종교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3/28 [08:23]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다 종교 공존, 신할라 타밀 무어족 함께 살아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⑬ 스리랑카 적통 상좌부 불교와 이웃 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다 종교 공존, 신할라 타밀 무어족 함께 살아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3/28 [08:23]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다 종교 공존, 신할라 타밀 무어족 함께 살아

 

스리랑카에서는 불교가 주류종교이다. 그렇지만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도 만만치 않는 교세를 갖고 있으며, 사실상 다종교국가나 다름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주류이지만 불교는 그야말로 소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에 가서 보면 불교 유적지는 많지만, 불교 사원은 극히 일부 지역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인도 아 대륙 턱 밑에 놓여 있는 스리랑카는 주류 종교가 불교이기 때문에 스리랑카 섬 어디를 가나 불교사원이 있고 승려들을 목격하게 된다. 스리랑카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시민의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스리랑카인의 99%가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앙심이 강한 국민이다.

▲ 인도남단-스리랑카 포크 해협 스리랑카 측 자프나에 있는 힌두 사원  

  

스리랑카 섬에서 힌두교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힌두교도는 스리랑카 인구의 약 12%에 이르는데, 전 인구가 2150만 정도 되니까, 힌두교도가 2백만 명이 넘는다. 힌두교도들은 대부분 남인도에서 온 타밀족이 된다. 이들은 타밀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스리랑카 섬의 북동부와 중부에 집중되어 있다. 스리랑카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힌두지도자는 20세기 신비주의자인 자프나의 삿구루 시바 요가스와미(Satguru Siva Yogaswami of Jaffna,18721964))이다. 스리랑카 힌두교도들의 진짜스승(삿구루)‘으로서 멘토 역할을 했던 힌두교도 지도자였다. 그는 시바파의 161대 난디나타 삼프라다야(요가 스승)였으며, 그의 후계자는 시바야 수브라 무니야스와미(Sivaya Subramuniyaswami, 본명은 로버트 한센 19272001)으로 162대 난디나타 삼프라다야였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태생이다. 그는 하와이 가든 아일랜드에 있는 382에이커(50만평)에 달하는 하와이 명소, 카우아이 힌두 사원 그루였다.

 

불교 역사 못지않게 스리랑카의 힌두교 역사도 2천년 이상 되었다. 구성원들은 거의가 타밀족이며 약간의 인도와 파키스탄과 신디족, 텔루구스족, 말라얄족을 포함한 소규모 이민자 공동체 힌두교도들을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스리랑카 힌두교도는 시바교의 시바 시단타파에 속한다. 시바는 힌두교의 삼주신(三主神, 트리무르티)의 하나로 파괴의 신이다. 시바파 신도들은 시바를 힌두교의 최고신으로 믿는다. 스리랑카에는 시바신이 머물고 있다는 다섯 개의 판차 이쉬아람의 성지가 있는데, 스리랑카 타밀 힌두교도들은 이 성지를 순례하면서 신앙심을 키우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유석도(儒釋道)인 유교 불교 도교가 이질적이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하듯이 스리랑카에서도 힌두교 불교는 그다지 배타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또한 한국에서도 토속신앙인 무속과도 어느 정도 습합을 하고 있듯이 스리랑카의 불교도들은 원주민 베다족과 함께 힌두교의 카르티케야 신을 믿는다. 카르티케야 신은 무루간, 스칸다라고도 하는데, 힌두교의 파괴신인 시바의 장남으로 전쟁과 승리의 신이다. 활과 신의 창인 벨(Vel)을 무기로 하며 공작 바하나를 타고 다닌다.

▲ 스리랑카 불교도와 원주민 베다족도 신봉하는 힌두교의 전쟁승리의 신(神), 카르티케야. 공작을 타고 다니면서 활과 神의 창(槍)인 벨을 무기로 삼는다.   

  

스리랑카에 힌두교 전래가 오래됐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힌두교는 10세기 경 남인도에서 대거 몰려온 타밀족에 의해서 형성됐다고 봐야할 것 같다. 스리랑카 인구 구성은 신할라족 75%, 타밀족 15%, 무어족 9% 기타 1%이며, 신할라어 타밀어 영어가 함께 쓰이고 있다. 신할라어를 쓰는 신할라족은 기원전 6세기 인도 벵갈 지역에서 이주했다고 하며, 타밀족은 남인도에서 왔다. 타밀족은 남인도에서 이주해 온 스리랑카 타밀족이며 이들은 약 11.2% 정도가 되며 같은 타밀족이지만 19세기 스리랑카 섬으로 노동을 위해서 온 타밀인들도 4.2% 정도가 된다.

▲ 스리랑카 섬 남단의 갈레에 있는 미란 모스크.

 

스리랑카 무어족은 무슬림들인데, 이들의 조상은 거슬러 올라가면 아랍인이다. 무어인들은 타밀어를 하지만 신할라어가 제2외국어다. 이들의 조상들은 원래 아랍인이며 인도에 와서 정착한 상인들로 인도현지인과 결혼하였고, 9세기에 스리랑카 섬으로 무역과 상업을 목적으로 이주해 온 이들은 스리랑카 현지여자와 결혼했다. 이밖에도 소수의 버거인 말레이인 원주민 베다족, 중국인 인도인이 거주하고 있다.

 

여기서 버거인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인으로서 실론에 정착하여 원주민과 관계를 발전시킨 유럽 남성의 후손으로 스리랑카 여성과 결혼하였다.

 

7세기까지 아랍 무역상들은 스리랑카 무역을 포함하여 인도양 무역의 대부분을 통제했다. 이 상인들 중 많은 수가 스리랑카에 정착하여 이슬람의 전파를 촉진했다. 그러나 16세기에 포르투갈 인들이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 많은 아랍인들의 무슬림 후손들이 박해를 받아 중부 고지대와 동해안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에 스리랑카의 이슬람교도들은 1980년대에 설립된 이슬람 종교문화부(Muslim Religious and Cultural Affairs Department)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이슬람교 공동체가 스리랑카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오늘날 스리랑카인의 약 9.7%가 이슬람교를 신봉하며 대부분 섬의 무어 및 말레이 소수민족 공동체 출신이다.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기독교는 1세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한 분인 토마(토마스, 도마)사도에 의해서 인도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에도 소개되었다고 한다. 스리랑카에서 기독교에 대한 첫 번째 증거는 6세기 기독교 지형의 기록으로, 페르시아 네스토리안 공동체가 섬에 살았다고 말한다. 1912년에 발견된 아누라다뿌라 십자가는 아마도 이 공동체의 유물일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기독교인 인구는 15세기에 포르투갈 선교사가 도착할 때까지 극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스리랑카를 점령했고 네덜란드 선교사들은 1622년까지 스리랑카 인구의 21%를 기독교로 개종시킬 수 있었다.

▲ 콜롬보에서 38km 거리에 있는 네곰보 시의 성 세바스틴 가톨릭 교회.   

 

1796년에 네덜란드는 영국에 의해 추방되었고 1802년에 실론은 영국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 성공회와 다른 개신교 선교사들이 19세기 초 영국이 네덜란드로부터 스리랑카를 장악했을 때, 스리랑카에 도착했다. 영국 통치하에서 스리랑카에는 영국 기독교의 여러 교파가 선교 사업을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스리랑카 전통종교라고 할 수 있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외에 기독교가 더해져서 실론은 다종교 국가가 되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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