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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부흥의 축복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2/04/04 [21:22]
먼저 기도로 충전되어 부흥을 경험해 보자

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부흥의 축복

먼저 기도로 충전되어 부흥을 경험해 보자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2/04/04 [21:22]

(3:1-2)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채널이 있습니다. 저 당시 세상의 많은 쟁쟁한 왕들과 권세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채널은 광야의 한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성령의 능력이 함께 동반되었고, 그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부흥운동을 일으켰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하여서 그리스도의 초림을 준비한 것처럼, 세상의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침례 요한이 한 것과 같은 그러한 사업과 사명을 이 마지막 날에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기구들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기별들을 주셨으며 모든 사람들이 당신께서 보내시는 권고와 경고의 말씀에 유의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을 준비하며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침례요한처럼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어떤 채널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임하게 해 주실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을 통하여 부흥운동을 일으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의 남은 백성이라고 일컫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업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채널이 되는 것, 그리고 우리 안에 일어나야 할 부흥운동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되어야 할까요? 우리의 가정과 나의 개인의 삶에 있어서 부흥을 맛보아야 할까요? 여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교회와 가정과 나의 삶에 있어서 분명한 것은 부흥을 맛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흥”, “부흥이라고 많이 외치는데 도대체 한마디로 부흥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가 부흥해야 한다고 하면 한마디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부흥은 한마디로 죽었던 영적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신앙부흥이란 영적 생애를 소생 및 부흥시키는 것이며 정신력과 마음의 힘을 일깨워주고 영적 사망에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흥은 죽었던 생명을 다시 살리는 것인데, 이렇게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누구만이 가능케 하는 일입니까? 미가서 38절의 말씀처럼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케 되는 일입니다.

 

의사가 아무리 수술을 잘해도 환자를 살리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다른 일을 잘해도 꺼져가는 영적 생명을 살리지 못하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있어야 할 참된 경건의 부흥은 우리의 모든 필요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가장 긴급한 것이다. 이러한 신앙부흥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첫째 사업이 되어야 한다

 

죽은 생명을 살려내는 일이 이 시대의 가장 절실한 교회의 사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꺼져가는 나의 개인적 영적 생명을 되살리고, 우리 가정과 교회의 영적 생명을 되살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여러 실례들을 통하여 기도가 부흥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발견합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의 부흥의 원천은 그의 기도생활에 있었음은 매우 유명한 사실입니다.

 

온 세계를 동요시킨 위대한 종교개혁의 큰 능력은 밀실의 기도에서 나왔다. 루터는 적어도 하루 세시간 기도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도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을 그렇게 하였다.”

 

루터가 세상을 부흥시킨 비결은 다른데 있는게 아니라 하루 3시간을 주님께 바쳤다는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아나는 길이 어디에 있을까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구체적인 실천의 시간을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가 활동하던 시기는 지금의 한국보다도 훨씬 세속화되어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그가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나이 80세가 넘은 만년에 가서, 곧 반세기 이상의 봉사의 생애를 통하여 50만명 이상의 영혼들을 신자로 얻었다. 그리고 그의 봉사를 통하여 타락과 멸망의 구덩이에서 고상하고 순결한 생애로 들어간 무리들과 그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더욱 깊고 풍부한 체험을 얻은 사람들의 수는 구속받은 가족이 하나님의 나라에 모일 그 때에 가서야 비로소 밝히 알려질 것이다.”

 

그의 나이 30세에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 결과 그의 나이 80세까지 50년 동안 50만 명의 죽어가는 영혼을 하나님께 이끄는데, 1년에 만명의 영혼을 살린 셈입니다.

 

이런 부흥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주님께 자신의 시간을 바쳐 기도하는 생활을 살았던 것이 가장 큰 비결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흥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여러 시간 동안 아버지와 교통하심으로 하늘의 빛을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하셨다. 그는 날마다 성령의 새로운 침례를 받으셨다. 주님께서는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셔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자기의 심령과 입술에 은혜의 기름을 바르셨다.”

 

누군가 이야기하기를 예수님께서 33세에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으셨으면 아마 나이 마흔이 되시기 전에 과로로 돌아가셨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바쁘게 살아가셨던 분께서 매일 아침마다 빠지지 않고 기도의 시간을 충분하게 가지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길을 따른다면 틀림없이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하늘의 전류로 완전 충전이 되실 때까지 기도하셨습니다. 휴대폰을 완전 충전하는 데에도 몇 시간이 걸립니다. 그것처럼 우리도 그 정도 시간을 매일마다 완전충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기도생활이 중요하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작은 그룹들이 모여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줌으로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모임은 중요한 2가지 패턴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성전모임이고, 두 번째는 가정모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교회는 성전모임을 통한 대그룹집회, 그리고 가정모임을 통한 소그룹집회를 통해 부흥하게 되었는데, 특히 가정모임의 소그룹집회를 통하여 서로에게 목양하고 기도해주는 모임을 쉬지 않고 가졌던 것이 초대교회 부흥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대부분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통계적으로도 보면, 성전모임에서의 목회자의 설교의 부족으로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대부분의 이유는 사랑의 부족입니다. 그래서 소그룹 모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사랑의 교제를 느낄 수 없습니다.

 

소그룹은 보다 작은 수의 성도들이 모여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서로를 위한 목양을 해주고, 용기를 주고, 죽어가는 영적 생명력을 되살리는 부흥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이 소그룹 모임이 활발하지 않으면 그 교회는 영적 생명력이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에베소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여기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을 원어로 살펴보면,

 

첫째로, 현재진행형입니다. 헬라어에서 현재진행형은 계속적인 동작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3:21)의 말씀에서 이긴다는 말이 니카오”(여기서 나이키라는 말이 나옵니다)인데, 이 말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 의미는 매일의 쟁투에서 이기고 또 이겨야 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성령충만은 한번 받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끊임없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두번째는 수동태입니다. 즉 성령충만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주님 앞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르다는 음식준비에 바빴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누가복음 10:41,42)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의 열심과 근면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열심있고 근면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충만한 은혜없이 바쁘게만 일하는 마르다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마리아처럼 예수의 발 앞에 앉게 하라. 근면과 기민성과 정력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화되게 하라. 그리하면 그 생애는 선을 위한 무적의 능력이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로 먼저 푹 젖은 다음에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재림성도의 성령충만함을 받는 기도는 잠잠히 기다리는 가운데 이르러 오는 것입니다.

 

(시편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어떤 분들의 기도내용을 잘 들어보면 기도내용이 주로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달라는 기도를 주로 하면 품성변화를 일으키는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기가 사실 어렵습니다. 일종의 기도가 무속신앙과 결합한 형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달라는 기도, 떼쓰는 기도, 이런 기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실제적으로 성령과 교제하는 기도를 경험하면 변화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세번째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명령은 하나의 약속이다. 의지로써 이에 동의하고, 심령이 이를 받아들이면, 이로 인해 무한하신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이르러 오게 된다

 

이제 말씀을 마치면서 영적 생명이 되살아나는 부흥을 경험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이 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명상하는 데 매일 한 시간을 바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우리는 그의 생애를 한 조목 한 조목씩 연구하고, 각 장면 특히 그의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확실히 머리 속에 그릴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를 위한 그의 크신 희생을 깊이 생각할 때에 그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더욱 굳어질 것이며 우리의 사랑은 격발되고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정신에 깊이 물들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도생활에 충실하게 될 때에 우리는 첫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견고해 지고, 둘째, 그리스도의 사랑이 촉발되고, 셋째,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물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개인의 삶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 경험하기를 소원하는 부흥입니다. 때로 우리는 기도없이 분주하게 교회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나 보기에 잘된 것 같은데, 기도없이 진행한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흥은 성도들이 개인의 삶에 있어서 매일 기도로서 주님과 교통하고, 충전되고, 사랑의 정신으로 품성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부흥입니다. 이 일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일을 계획하고 경영하여도 결국 제자리라는 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약속된 축복은 다른 모든 축복을 함께 몰고 올 것입니다. 루터처럼, 웨슬레처럼, 예수님처럼 먼저 기도로 충전되셔서 부흥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축복을 경험하셔서 다른 모든 축복까지 함께 경험하는 부흥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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