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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㉔ 속고승전과 조당집에 기록된 달마대사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6/13 [06:54]
달마대사의 카리스마 동아시아 불교 선종 형성에 중심인물로 정착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㉔ 속고승전과 조당집에 기록된 달마대사

달마대사의 카리스마 동아시아 불교 선종 형성에 중심인물로 정착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6/13 [06:54]

달마대사의 카리스마 동아시아 불교 선종 형성에 중심인물로 정착  

 

근래 동아시아 불교에서 달마대사의 위상은 조금 약해지고 있는 듯하다. 달마대사의 본명은 보디 다르마(Bodhi Dharma)이다. 'Bodhi'깨달음이란 의미로서 한자로는 각()자가 된다. 'Dharma'는 법() 즉 진리(眞理)란 뜻이다. ‘진리를 깨달은 자란 의미의 각법(覺法)이 된다. 물론 인도에서 본래의 속명은 있겠지만,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면 법명(法名)을 받게 된다. 한번 받은 법명은 영원히 죽을 때 까지 지니면서 부르게 된다.

▲ 에도시대 히메지 성에 그려진 달마대사 초상화.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보디 다르마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디 다르마대신 보리달마라고 부르고 쓴다. 원래 보리가 아니라 보디인데, 한글 발음상 보디는 여성의 음부를 비속하게 부르는 말인 보지와 음이 비슷하다하여 보리(菩提)’로 바꿔서 부르는데, 아마도 조선 시대부터 그렇게 부른 것 같다.

▲ 세계유산의 표석과 히메지 성

 

이를테면 보살의 상징인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란 말도 맥락이 같다. 아무튼 보리달마는 동아시아 불교에서 차지하는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불과 1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달마대사는 우리 불교에서 권위가 대단했다. 달마도는 달마대사의 초상화인데, 선종 초조의 조사로서의 권위나 위상보다는 부적과 같은 신비한 기() 운운하면서 오도하는 바람에 한동안 장삿속으로 뜨다가 요즘은 주춤하고 있는 추세이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달마대사가 인도불교의 정통 명상법을 중국에 전해 줬고 바른 수행을 통한 깨달음에 이르게 한 선종(禪宗)의 조사(祖師)로서 존경하고 숭앙하는 것이다.

▲ 2-2 일본 나라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속고승전》의 저자인 당나라 때의 고승인 도선(道宣)의 초상화.

 

다시 달마대사의 전기(傳記)의 소스가 되는 송나라 때 도선(道宣596667)이라는 스님이 지은 속고승전(續高僧傳)에 주목해 보자. 속고승전은 양나라 혜교(慧皎497554)고승전을 이어서 도선이 속고승전을 지은 것이다. 속고승전의 편집 체제는 혜교의 고승전과 마찬가지로 십과(十科)로 편을 나누고 있는데, 편명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음을 보게 된다. 속고승전의 체재는 역경(訳経),의해(義解),습선(習禅),명율(明律),호법(護法),감통(感通),유신(遺身),독송(読誦), 흥복(興福),잡과성덕(雑科声徳)으로 분류하고 있다.

 

도선은 담림의 서문을 기초자료로 사용하고 있지만 더 자세한 내용을 추가하여 보디 다르마가 남인도의 브라만 계통(南天竺婆羅門種)’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로는 보디 다르마의 여행 경로에 관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담림의 원본은 보디 다르마의 여행 경로가 정확하지 않으며 위나라에 도착하기 전에 먼 산과 바다를 건너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도선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유송 때 남월에 처음 도착했다. 거기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위나라에 이르렀다." “그는 또 바다를 통해 중국으로 건너갔고 장강을 건넜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더 구체적이다.

▲ 보디달마가 유송에서 위나라로 까기 위하여 건넌 양자강(장강).    

 

도선은 보디달마가 유송 시대에 중국 땅을 밟았는데 늦어도 송이 남제 멸망하기 전인 479년 이전에는 도착 한 것으로 도착년도를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선은 보디달마의 죽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보디달마가 황하의 지류인 뤄허(낙하)에서 죽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뤄허는 매우 길고 큰 하천이며 중국 중부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지구를 흐르고 있기 때문에 중국 국내에서는 매우 유명한 하천이다. 뤄허 주변의 중요한 도시로는 뤄양(낙양) 시가 포함되는데, 뤄허 강은 예전엔 낙수(洛水)로 불렸다. 낙양(洛陽)이란 지명이 낙수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라 우왕이 낙수에서 거북이 등껍질에 새겨진 그림을 보고 낙서를 그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조당집》이 편찬된 5대10국 시기의 중국.

 

보디달마가 뤄허 강 유역에서 죽었고 그는 제자 혜가에 의해 동굴에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선의 연대기에 따르면 보디달마의 죽음은 북위가 멸망한 날짜인 534년 이전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여기서 놀라운 역사적 사실은 뤄강 기슭을 사망 장소로 인용하는 것은 보보디달마가 혹시라도 528년 헤인(河陰)에서 대량 처형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삭현 지방의 흉노족 이주영(爾朱榮)이 군대를 이끌고 낙양(洛陽)에 들어오면서 이주영은 태후와 후계자를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 이하의 대신 1,000명을 처형하는 하음의 변을 일으켜 반대파를 제거하였는데, 이때 보디달마도 희생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보다달마 대사에 대한 소스는 조당집(祖堂集)에도 언급되고 있다. 조당집은 중국의 정과 균이 중국과 한국 선종의 역사와 선사들의 전기를 기록하여 952년에 간행한 승려들의 전기이다.

▲ 파미르 고원이 지도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과거칠불(過去七佛)에서부터 중국 당오대(唐五代)까지의 선사 253명의 행적과 법어·게송 등을 담고 있는 등사(燈史)이다. 952년 남당(南唐)의 천주(泉州)에서 편찬되었으며 편저자는 정과 균 두 선사이다. ·균 두 선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이 책에 서문을 쓴 정수문등(淨修文僜)의 제자로 생각된다. 책이 편찬된 이후 중국에는 전해지지 않다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고려대장경 보유판(補遺版)에 존재한다는 것이 처음 알려졌다. 따라서 고려대장경본이 유일본이다.

 

조당집에서는 보디달마가 인도 불교 제27대 조사인 프라즈나타라의 제자였으며, 3년간의 여행 끝에 보디달마 대사는 527년에 중국에 도착했다. 혜능의 제자인 신회의 문헌 부록에 처음으로 보디달마와 양무제와의 만남이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보디달마의 수명에 관한 문제이다. 도선에 따르면 180세 이상 살았다는 것이며, 조당집에서는 150세 설이다. 또한 조당집에서는 보디달마가 웅이산(熊耳山)에 묻혔다고 되어 있는데, 매장된 지 3년 후에 위나라의 관리인 송운(宋雲)이 파미르 산맥에서 한 켤레의 신을 들고 인도로 돌아간다고 주장하는 보디달마를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보디달마의 무덤이 열렸고 안에는 단 한 켤레의 신만 발견되었다.

▲ 보디달마대사가 중국에서 인도로 향하면서 넘었다는 파미르고원.    

 

보리달마는 동아시아 불교에서 선종의 원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힌두철학도 일정 부분 전파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쿤달리니(Kuṇḍalinī)가 그 예이다. 쿤달리는 인간 안에 잠재된 우주 에너지이다. 이것은 생명과 영혼의 근원이며, 이것이 있으므로 살고 없어지면 죽는다. 이것을 잠에서 깨우는 자는 초인이 될 수 있고 못 깨우는 자는 속인으로 머문다. 산스크리트어인 쿤달리니는 '똘똘 감겨진 것'을 의미한다. 감겨있는 쿤달리니는 모든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 속에 잠재된 형태로 존재하는 여성적인 에너지다. 각 개인의 쿤달리니 에너지는 일생 동안 자신 속에 잠재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자각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

 

마음(Chitta, 의식)은 계속 정보가 주어지면 그 진화가 방해를 받는다. 그러나 감각에 의한 정보를 차단해 버리면 마음은 순식간에 진화한다. 다시 말해 눈, , , , 입 등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로부터 마음을 분리시키면 마음은 독자성(獨自性)을 경험하게 된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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