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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㉜날란다대학 불교연구 티베트와 인도네시아에 전파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8/08 [08:57]
날란다 대학 교수 승려 직접 인도네시아 방문 교육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㉜날란다대학 불교연구 티베트와 인도네시아에 전파

날란다 대학 교수 승려 직접 인도네시아 방문 교육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8/08 [08:57]

날란다 대학 교수 승려 직접 인도네시아 방문 교육

 

해상실크로드 불교 전파의 연재 주제에 적합한 글을 쓰기 위하여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려고 필자는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연재하면서 인도불교가 어떻게 해상 루트를 통하여 전파되었는가 하는 과정을 소개해 왔다.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인도에서의 불교가 스리랑카로 전해진 과정 그리고 남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과정을 집중하여 조명해 봤다. 이제는 인도의 후기 대승 불교가 날란다 학파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에 전해진 경로와 과정을 추적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날란다 사원 대학 그 자체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21세기 현재는 티베트로 전해진 날란다 학파만이 전성을 이루고 있으며, 현장법사를 통한 중국전파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인도네시아에 중점을 두고 리서치 하려고 하며, 의정법사를 통한 중국전파도 살펴보려고 한다.

▲ 인도네시아의 비구들이 자바섬에 있는 보로부두르 스투파(탑) 사원 유적지에서 빨리 경전을 낭송하고 있다. 보로부두르 탑 사원은 샤일렌드라 왕조(8세기) 시대에 건축됐다.    

 

불교는 인도네시아에서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은 이슬람이 주류 종교이지만 한동안은 불교가 제1의 종교로서 역할을 하였고, 8세기 샤일렌드라 왕조는 불교를 주류 종교로 하여 보로부두르 스투파(탑 사원)를 건축하기도 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종교 지형은 이슬람 기독교 힌두교 유교 불교 등 6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도의 수는 인구 2억 명 가운데 2백만 정도에 불과하다. 겨우 1% 정도일 뿐이다. 불교도들은 대부분의 자카르타, 리아우, 리아우 제도, 방카 벨리퉁, 북부 수마트라, 서부 칼리만탄에 집중되어 있다. 2백만 명이라는 숫자는 도교와 중국 민속 신앙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한 불교도를 따진다면 그 숫자 면에서는 다소 낮아질 수도 있겠다. 사실상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대다수 불교도는 중국인이지만, 소수의 토착 불교도(자바족 및 사삭족 등)도 존재한다. 

▲ 인도네시아 자바족.  

 

인도네시아 불교사를 본다면 불교는 12세기경에 힌두교와 거의 동시에 들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본다면 인도네시아에서 불교는 힌두교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종교이다. 또한 인도네시아 불교의 역사는 힌두교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같은 시기에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여러 제국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군도(群島)에 불교가 도착한 것은 1세기 초부터 인도네시아와 인도 사이의 해상 실크로드를 통한 무역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고고학 유적지는 서부 자바이다. 그 후, 수마트라의 잠비(Jambi), 팔렘방(Palembang), 리아우(Riau) 지방과 중부 및 동부 자바에서 상당수의 불교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인도네시아 군도는 수 세기 동안 샤일렌드라 왕조, 마타람 왕조, 스리위자야 제국과 같은 강력한 불교 제국의 흥망성쇠를 목격하게 된다.

▲ 인도네시아의 종교 지형 지도. 불교는 오렌지색으로 미미하기가 그지없을 정도인 소수 종교로 전락했다.    

 

▲ 기원전 5세기에 시작된 불교의 확장은 인도 북부에서 아시아의 나머지 지역으로 실크로드의 내륙 무역로와 해상 무역로를 따라 전파됐다. 인도네시아 스리위자야는 한때 불교 학습과 확장의 중심지였다. 육로와 해상의 ‘실크로드’는 상호 연결되고 보완되어 학자들이 ‘불교의 대원(佛敎의 大圓)’이라고 부를 정도 였다. 

 

중국 불교 자료에 의하면 인도 구법승 당나라 의정은 인도로 순례 여행을 갔을 ​​, 7세기에 수마트라에 기반을 둔 강력한 해양 제국인 스리위자야 제국을 직접 방문했으며, 수마트라 지역에 불교학 연구 센터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67세기의 남인도 출신으로 알려진 다르마키르티(法稱)는 실상은 스리위자야 출신이라는 설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는 스리위자야에서 존경받는 학자이자 승려가 되었고 인도로 건너가 유명한 날란다 대학교의 교수이자 시인이 되었다. 그는 불교 논리학의 선구자인 디그나가(Dignaga 陳那,480년경~540년경)의 저작을 바탕으로 재해석했으며, 불교도뿐만 아니라 브라만 논리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이론은 티베트에서 규범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사원 대학의 기본교육 과정의 일부로 연구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다른 승려들은 아티샤(Atisha 9821054)), 날란다(Nalanda)의 교수인 다르마팔라(Dharmapala (530561), 남인도 출신의 바즈라보디(금강지)등이다. 스리위자야는 인도네시아 역사상 가장 큰 불교 제국이었다.

▲ 불교 제국이었던 스리위자야 제국의 8세기의 최대 범위.   

 

스리위자야 제국은 현재 인도네시아 섬들은 물론이고 말레이반도와 태국의 남부 지역까지 팽창했던 대제국이었다. 스리위자야 제국은 힌두교보다는 불교에 더 관심을 갖고 우호적으로 대했음을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는 불교 유적지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스리위자야 왕국은 매우 강성한 국가로서 힌두와 불교가 함께 왕성하게 발전했던 종교국가였다. 스리위자야는 산스크리트어 발음으로는 스리위자야인데 표기는 Srivijaya 또는 Sri Vijaya라고 쓰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는 스리위자야라고 하며 Sriwijaya라고 쓴다. 타이어로는 스리 위차이(Ṣ̄rī wichạy)로 발음하고 쓴다. 대체로 붙여서 스리위자야라고 하는데, 'v'브이 발음을 바름으로 하기 때문에 스리비자야스리위자야라고 양쪽으로 사용해도 무난하다고 본다. 스리위자야 왕국의 특징은 인도네시아의 여러 도서와 말레이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에까지 영역이 미치는 제해권을 가진 왕국이었다.

▲ 인도네시아의 국장(가루다 판차실라). 가루다는 금시조로서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새의 이름이며 불교에서는 성스러운 새로 여겨진다.  

 

힌두교가 아직 영향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8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는 불교가 압도적으로 발전되고, 스리위자야 국은 불교의 센터 역할을 했다. ‘스리란 말의 뜻은 행운’ ‘번영’ ‘행복이란 뜻이며, ‘비자야승리’ ‘탁월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스리위자야 왕국이 불교국가로서 불교센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당나라 승려인 의정법사(義淨法師)에 의해서이다. 그는 671년 약 6개월간 이곳에 머물게 되는데, 인도 날란다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길에도 이곳에 들려 상당 기간 있었으며 후에 다시 방문해서 25년간 이곳을 왕래하면서 머물렀다는 기록이다. 또한 수마트라 팔렘방 근처 케두칸 부킷에서 1920년 화란의 한 고고학자에 의해서 발견된 케두칸 부킷 비문(Kedukan Bukit Inscription)에 의하면, 서기 682년경에 씌어진 것인데, 이웃 국가들인 자바, 캄부자와 참파 등과의 라이벌적인 관계이긴 했지만, 스리위자야 왕국은 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가루다는 힘과 역량을, 금색은 위대함과 영광을 의미하며 깃털은 인도네시아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인 1945817일을 의미한다. 빨간색과 하얀색은 인도네시아의 국기를 구성하는 색이며 검은색은 자연의 색을, 굵은 검은색 가로줄은 인도네시아의 국토를 횡단하고 있는 적도를 의미한다.

 

금색별은 인도네시아의 주요 종교인 이슬람교, 기독교, 힌두교, 불교, 인도네시아의 사회주의 이념을 의미한다. 금색 쇠사슬은 인간 세대의 연속을, 쇠사슬의 원형 고리는 여자를, 사각형 고리는 남자를 의미하며 들소는 민주주의를, 반얀은 인도네시아의 단결을, 벼 이삭과 목화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생활과 살림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의 국장은 1950211일에 제정되었다.

 

역사적으로 일부 왕은 다른 왕보다 힌두교를 선호할 수 있었고, 또 어떤 왕은 불교를 더 좋아 했지만, 힌두교와 불교 사이의 조화와 관용을 장려한 것은 모든 왕들이 다 똑같은 마음이었다. 현재도 모든 종교의 조화와 포용을 상징하는 것이 가루다 국장에 잘 나타난다고 할 것이다. 지금은 불교가 소수 종교로 전락했지만, 고대 자바의 고전 시대에는 여러 불교 사원에는 불보살상과 불교예술이 전성을 이루었다.

▲ 멘둣사원(만도사) 유적.    

 

불교 교학연구에 있어서도 인도네시아는 날란다 사원대학과 직결되어 있었다. 이른바 날란다 사원대학의 논리학파의 계보가 인도네시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날란다 대학에 입학하려던 승려들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날란다 대학 입학 예비 학습원에서 산스크리트어와 일부 예비 과목을 공부한 다음, 인도로 향했다. 이 같은 예비학습은 중국 남부 광동성의 광주에도 있었는데, 신라의 혜초 스님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인도에 갔다.

 

인도 날란다 논리학파의 계보는 디그나가(진나)다르마팔라(호법)실라바드라(계현)현장 삼장으로 계승된다. 아티샤 디팡카라는 티베트와 인도네시아에 불교학을 전한 논사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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