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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의 ‘神’이 毒도 되고 젖도 되고…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0/10/12 [13:13]

베르베르의 ‘神’이 毒도 되고 젖도 되고…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0/10/12 [13:13]

베르베르의 ‘神’이 毒도 되고 젖도 되고…


 사음수성독 우음수성유(蛇飮水成毒 牛飮水成乳)-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젖이 된다’는 의미를 최근 아내가 건네준 여섯 권짜리 책 ‘신(神)’을 읽으며 새삼 느꼈다.

1991년 ‘개미’를 발표하며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오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영계 탐사자를 다룬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관점을 통해 인간을 관찰하고 있는 ‘천사들의 제국’ 등에 이어 지난 2007년에는 신들의 세계를 다룬 ‘신’을 9년여 작업 끝에 내 놓았다. 일련의 저서를 통해 그의 영혼이 진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신’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기독교, 유대교 카발라 신앙, 이집트 신화, 불교와 갖가지 토속신앙 등 다양한 종교와 신화를 융합해 흥미진진한 구성을 했는데 독자의 사고지평을 넓혀주기에 충분하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나의 친구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같은 크리스천인 아내를 통해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나에게 전달해 준 것이다. 자신이 받았던 감동을 공유하고 싶었던 게다. 빅뱅, 초근이론, 진화론 등의 과학지식에서도 유일신과 구원론을 창출해내는 그 친구는 분명히 이 책에서도 기독교적 교훈을 발견했음에 틀림없다. 아내 역시 그 친구와 같은 생각으로 이 책을 건네주었고.

그러나 단언하건데 아내와 친구는 잘못 판단했다. 그들에겐 젖이 됐지만 나에겐 독이 됐다. 동서고금의 종교와 신화, 과학과 유머, 사랑과 유희 등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재미에 마약처럼 빠져들었다. 집에서는 물론 출퇴근 전철, 전라도 문상길 버스, 찜질방 외박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책을 보는 관점이 달랐던 것이다.


신보다 우월하고 악마보다 나쁜 것은?


천사로서의 삶을 떠나 신이 되기 위한 경쟁을 펼치는 144명의 신 후보생들의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로 전개되는 가운데 나는 ‘신들의 장난’을 읽었을 뿐이다. 인간을 잘 살피는 신 후보생 하나를 뽑는 과정에 신들의 음모, 술수, 배신, 전쟁, 약탈이 이루어졌으며 마치 인간세상을 보는 듯해 흥미로웠다. 나는 감히 ‘내가 신이라면 어떻게 무엇을 하겠는가’를 즐겁게 상상했으며 신이 정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장난감으로서의 인간에 연민도 느꼈다. 또한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 후보자 ‘아프로디테’와의 사랑과 정사(情事) 이야기가 독서의 맛을 돋우었다. 소설 중간 중간 끼워 넣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란 챕터는 나의 지식욕구를 채워 주었다. 그 백과사전 내용 중에선 아내와 친구가 그냥 지나쳤을 구절에 오히려 관심이 쏠렸다. 이를테면 비교신학자 막스 뮐러가 명명했던 ‘택일신교(擇一神敎)’가 가슴에 와 닿았다. 택일신교는 일신교, 다신교 외의 또 다른 신앙형태로 ‘다수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 신 가운데 오직 하나를 주신으로 숭배’하며 자기 신만이 우월하지 않다는 것도 인정하는 것이다. 아내와 친구에겐 마귀의 목소리일 수 있는 이런 지식이 자주 등장했다.

4권에서야 해답이 나오는 수수께끼 역시 책을 손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솔직히 그 해답을 밝힌 이후 5, 6권을 읽기는 좀 지루했다.

“이것은 신보다 우월하고, 악마보다 나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있고 부자들에게는 이것이 부족하다. 만약 사람이 이것을 먹으면 죽는다.”

최고의 신 제우스와 ‘모두가 기다리는 이’를 만나기 위한, 그리고 아프로디테와의 섹스 전제조건으로 제시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집중된 명상 끝에 찾아낸 해답은 ‘없음(無)’이었다. ‘신보다 우월한 것은 없으며 악마보다 나쁜 것도 없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며 부자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니 부족한 게 없다. 또한 사람이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최고의 신은?


미카엘 팽송은 수수께끼를 풀고 최고의 신 제우스를 만나지만 제우스가 살고 있는 산 뒤의 더 높은 산에 ‘미지의 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카엘 팽송은 블랙홀의 힘으로 튕겨져 나가 우주를 벗어나 투명한 유리 같은 것 너머로 큰 눈을 발견한다. 마침내 완전히 진화된 영혼으로 신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베르베르는 소설 속에 한국소녀 ‘은비’를 등장시켜 한국독자를 의식했듯이 최고의 신 ‘큰 눈’이 독자라는 결말을 내놓음으로써 모든 독자에게 아부하고 있다.

아마도 아내와 친구는 ‘큰 눈’을 창조주 하나님, 유일신이란 해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큰 눈’을 ‘없음[無]’으로 읽었다. 영혼이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신도 악마도 없으며 결국 우주는 무에서 시작해 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태초에 ‘없음[無]’이 있었다!’

이 소설에 대한 독자의 평가도 다양하다. ‘과학적 지식과 유머, 그리고 정신에 대한 탐구가 한데 어울린 형이상학적인 소설’이란 극찬이 있는가 하면 ‘기존 신화와 종교를 짜깁기한 수준의 상상력 빈곤의 신 이야기’란 악평도 있다. ‘결말은 조금 허무하나 상상력에 극찬을 보낸다’는 중간적 평가도 있다. 똑같은 것을 소화해내며 각각 약과 독, 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벰엔 독이, 소엔 젖이 바로 生命水이다


소설 속엔 아내와 친구가 눈여겨보지 않았을 성 싶은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신이 되기 위한 경쟁에서 탈락한 팽송이 자신이 조절하고 관장했던 인간세계에 내려와 ‘델핀’이란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다.

델핀은 팽송이 신 후보자로서 자신의 교리를 전파했던 돌고래족의 독실한 신자. 팽송의 실책, 그리고 다른 신 후보자의 음모와 배신으로 절멸해가는 돌고래족은 마치 유대인들처럼 핍박당하지만 델핀은 굳건히 그리고 철저히 팽송의 계시한 신앙을 신봉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계시를 신의 존재였던 팽송에게 거꾸로 전달한다. 꿀벌이 꿀맛을 모르고 베토벤이 운명교향곡을 들을 수 없듯이 팽송이 신이기는 하지만 신앙만큼은 자신만큼 없다며. 델핀이 신의 존재인 팽송을 개종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팽송은 깜짝깜짝 놀라고 감탄하는 가운데 세상에 누구보다 델핀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얼마나 신적(神的)이고 동시에 인간적인가. 델핀의 믿음이 바로 ‘큰 눈’의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신의 존재도 인정하지만 각자 자신의 믿음을 통해 최고의 신에 도달하는 ‘택일신교’-그것이 하나님의 계시이자 믿음이고 신앙이며 사랑이라고 판단했다.

젖이 되라고 건네준 책이 나에겐 독이 됐다고 아내는 느낄 수 있다. 아내는 소위 ‘이단’의 성경이 ‘우상’이란 독으로 변질됐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는 것을 내가 부정하거나 싫어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아내의 믿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는 자신의 신앙과 생활방식으로 최고의 신을 만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내가 싫어할 나의 독후감 표현도 존중하고 사랑한다. 나도 최고의 신을 찾아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신’을 독파한 후 독후감의 핵심- “뱀이 먹고 만든 독이나 소가 먹고 만든 젖, 모두 아름답고 귀중한 생명수이다. 뱀이나 소 모두 대자연의 소중한 한 조각임을 배웠다.”(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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