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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6/11 [16:09]

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6/11 [16:09]

화평의 복음

사도행전 10장 34~43절


지난 사흘간 국내 톱뉴스는 톱스타 최진실 씨의 자살사건이었다. 그 분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연예계에서 별 중의 별로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부와 명예를 함께 얻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신이 지니고 있던 그 모든 것 속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40세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자살을 결행하기까지 겪었을 고독과 절망, 초조와 불안을 생각하면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 세상 사람들은 평안,평강,화평,평화를 누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찬송가 작사자 코넬은 찬송가 469장 4절 가사를 통해 이렇게 반문하고 있다.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이 험한 세상 속에 참된 평화가 어디 있느냐는 코넬의 반문 앞에서 우리 모두 이 세상을 한 번 둘러보자.


세상의 평화와 평안은 일시적인 것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부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화학물질 멜라닌을 첨가한 중국제 유제품으로 인해 중국 어린이 5만 명이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그 유제품을 수입한 세계인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국제공항과 레바논의 북부 트리폴리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 6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터키 남북부에서는 터키군과 구르트 반군 사이에 교전이 일어나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태국군과 캄보디아 군사가 국경에서 교전이 발생하여 양측 모두 피해를 입었다. 인도에서는 힌두축제를 맞아 힌두사원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나 600백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태풍 장미 15호가 강타한 대만의 북부지역에서는 77만 채의 정전사고가 일어났고, 36명이 사망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진도 7.3의 강한 지진이 케르매덱제도를 덮쳤다.

이 모든 사건은 지난 일주일 이내에 일어났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환율은 날로 치솟고, 침체에 빠져있던 경제는 날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은 어떤 경제학자도 딱 부러지게 이렇게 될 것이다고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하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 속에 또다시 영변핵시설을 재가동할 것을 밝힘으로써 앞으로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국내외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아도 참된 평화, 참된 평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에 있느냐’는 코넬의 반문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코넬의 반문은 반문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반문은 찬송가 469장 4절 가사에서 이렇게 끝나고 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코넬은 이 험한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참된 평화가 하늘 위에서부터 내려온다고 노래하고 있다. 참된 평화는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다는 것이다.

상황이 변한다고 해서 깨어지는 평화는 참된 평화일 수 없다. 포화가 작렬하는 전쟁도, 치명적인 질병도, 살인적인 자연재해도, 참된 평화를 결코 앗아가지 못한다. 참된 평화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깨어지거나 이지러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유한하고 가변적이다. 언젠가는 무너지고 사라져버릴 유한한 것으로 영원하고 참된 평화가 생성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참된 평안이 없는 이 험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평강을 얻고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찬송가 469장 4절이 그 정확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다 예수를 친구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가사는 하늘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참된 평화에 대한 확신으로 끝나고 있다. 이 가사의 시작과 끝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리로 삼아 연결되어 있다. 이 세상에는 결코 없는 참된 평화, 하나님으로부터만 주어지는 평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넬이 이렇게 노래했던 것은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평화와 평안만이 영원하다


이방인 고넬료 일행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별하시지 않고 다 받아주시는 분이심을, 그것도 지성을 다해 영접해 주시는 분이심을 확인한 베드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탄하여 복음을 전파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구원의 복음을 화평의 복음이라고 정의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평강을 이 땅의 인간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인간은 죄의 장벽으로 인해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평강을 상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참된 평안, 참된 평화가 없는 것은 우리 시대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해서 실낙원 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평강을 상실해 버렸다. 죄의 장벽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죄의 장벽을 허물어뜨려주신 구원자이다. 우리가 받아야할 죄의 형벌을 대신 받기 위해 당신의 전신을 십자가의 제물로 내어놓으시므로 죄의 장막을 깨뜨려주신 주님께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인 우리를 연결해주시는 다리가 되었다. 그 다리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전해졌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했으며, 하나님의 진리 위에 서게 되었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평강에 접붙임을 받았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사흘 째 되는 날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당신 자신이 곧 임마누엘 하나님임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절대적인 평강에 접붙여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노르웨이 한림원이 김대중 대통령이 선정되었음을 발표한 후 그날 종일 그 뉴스를 보도했다. 영국 BBC TV는 이렇게 논평했다. ‘역설적이게도 한반도의 평화는 북한의 김정일 손에 달려있다.’ 참으로 날카로운 논평이었다. 특정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평화는 참된 평화일 수 없다. 인간 간의 합의나 노벨평화상이 결코 참된 평화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참된 평화는 아래나 옆으로부터 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순간 깨어지고 만다.

참된 평안은 오직 위로부터 내려온다. 찬송가 469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폭풍이 불어 아무리 바다가 출렁여도 바다 깊은 곳의 물은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의 심령 속 깊은 데서부터 하나님께서 위에서부터 주신 평강이 샘솟아 오르면 그 평강은 세상의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화평의 복음을 설파했던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으면서도 그 평안을 잃지 않았고, 사도바울은 지중해의 한가운데서 광풍에 시달리면서도 그 평안을 간직했으며, 로마제국의 지하 감방에서도 심령 속 그윽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그 평강을 잃지 않았다. 사도 사울은 지하 감방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도 바울의 심령 그윽이 깊은 데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내려주신 절대 평강이 없었던들 지하 감방에서 이런 편지를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도바울의 심령 그윽이 깊은 데서 날마다 이런 하나님의 평강이 샘솟았기에 진리를 위해 참수형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땅 위의 험한 길을 가는 동안 참된 평안은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하나님께서 위에서 내려주시는 참된 평안이 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모신 우리의 심령 속 그윽이 깊은 곳에서 날마다 그 참된 평화가 샘 솟아오르는 한 우리는 그 어떤 역경도 능히 이기고 극복할 수 있다. 우리의 심령 속 그윽이 깊은 곳에서 샘솟는 그 평안의 원천은 만물을 새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4장 27절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는 까닭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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