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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식’의 면역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4/30 [11:02]

‘위기의식’의 면역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4/30 [11:02]
 

 ‘위기의식’의 면역


인양되는 천안함 모습. 이번 사건의 위기의식은 더 얼마나 갈것인가.

 

면역성(免疫性)과 불감증(不感症)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것이다.

감지(感知)신경이 둔하여 불감증이 될 수도 있고, 면역성이 높아지면 불감증 치수도 높아져 위험하다.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깜짝 놀라 튀어 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어 차츰차츰 물의 온도를 높이면 죽으면서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해 튀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인간도 위기상황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위기의식에 대한 면역이 발달’하여, 진짜 위기를 당하면 그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세기 전만해도 살인, 강도, 강간 사건이 TV화면에 비치면 깜짝 놀라고 긴장 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건이 매일 수없이 벌어지고 있으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흘려버린다. 이것이 위기의식의 면역이다.

한 주일 동안에 일어난 사건들을 들춰 보고 깜짝 놀라며 위기감을 느껴야 당연하지만 이제는 하나의 화젯거리로 여기고 있다.

해군 구축함 천안함이 순시 중 원인불명의 충격을 받아 침몰하여 48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생각만 해도 놀랍고 두렵다. 만약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인한 것이라면 ‘우리 해군의 안보가 그렇게도 허술하단 말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언제 제2, 제3의 공격으로 꽃다운 우리 장병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을지 몰라 착잡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심증은 가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한다면 북한은 시비를 걸어 공격하려고 덤벼들 것이다.

북한이 합의하에 벌린 금강산 관광사업이나 개성공단을 볼모로 잡고 온갖 트집을 잡고 억지를 부리고 있음은, 안하무인이 되어 남한을 좌지우지 하려는 악당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앞장서 있다고 흥청만청 낭비하며, 굶주린 북한동포를 동정의 눈초리로 바라보고는 있으나 북한과의 이런 현실적인 당면문제에는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 놓지 못해 우리의 한계를 절감케 한다.

정부와 군부에서는 이런 사건들을 놓고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걱정하며, 연구하고 있으나, 국민들의 정서는 불안과 분노에 사로잡혀 무능한 정부와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는 군부를 질타하며 책임을 묻고 있다.

과연 어느 선을 지키는 것이 현명할까. 지나친 불안감은 금물(禁物)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국가의 사회적 불안은 자국의 외교·경제·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대외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민들의 무관심 또한 국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우리는 지난날 북한으로부터 6·25 기습남침을 받았지만, 국민의 단합된 힘과 우방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해낸 경험이 있다.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경제적으로나 지적수준, 기술력 등으로 보나 북한은 우리 남한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의 대국으로 발전했다. 인구도 북한의 배가 넘는다. 이 얼마나 대단한가. 우리 국민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면, 능히 이길 수 있다. 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응원군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국민들의 ‘위기의식의 면역’이다. 이는 한 나라뿐 아니라 인류의 종말을 고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중국의 대지진 사건이나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 인도와 태국을 쓸어간 허리케인 등은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홍수와 한발이 세계도처에서 일어나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피해를 직접 당한 지역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며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天災地變)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 개입되지 않는 천재지변은 없다. 자연의 재해는 대부분 인재다. 사람들이 자연을 괴롭힘에 대한 반작용에 의한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재앙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한발·홍수·태풍·해일 등은 지구의 이상 기후로 인해 해마다 잦아지고 있으며, 탄산가스 배출증가로 지구의 오존층이 뚫려 태양의 직사광선이 남극과 북극의 빙하를 녹이고, 이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과 해양 온도의 상승 등으로 자연의 태풍과 홍수, 한해의 자율기능을 상실케 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좀 더 일찍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다면 탄산가스 배출을 줄여 자연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을 것이다. ‘재앙을 부른 것도 나요, 재앙을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할 사람도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런데 설마 하며 면역력만 키워왔던 것이다.

서해안 상황도 다시 한 번 살펴봐야한다. 몇 년 전의 해전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었을 때, 군은 두 번 다시 불행한 사태는 없을 것이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당시 지휘자와 병사들 모두 긴장하고 매사에 신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긴장감이 풀어지고 위기에 대한 면역이 약해져 끔찍한 불행을 당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조금만 긴장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후회하고 있다.

위정자들과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주문을 하고 싶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살펴보자고.

나라야 망하든 말든 나의 이익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급주점에서 정신없이 취해 횡설수설하고 있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등 뒤 텔레비전에서는 자식 잃은 부모·형제의 애끓는 울음소리가 퍼지고 있다.

이게 어찌 그들만의 일이겠는가. 우리에게도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무관심과 불감증으로 남의 집 불구경하듯 ‘설마 이런 대명천지에 그런 일이야 있겠는가’ ‘설마 6·25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다시 오기야 하겠는가’ 라는 ‘위기의식의 면역성 발달’이 우리 모두의 불행을 가져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평화로울 때 전쟁을 생각해야 하고, 풍요로울 때 굶주림을 생각해야 한다.

1919년 기미년 ‘3·1독립운동’은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한 거사였다고 할 수 있으나, 결코 실패한 운동이 아니다. 3·1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10년 전부터 철저한 준비해왔다. 우리 온민족이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만큼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3·1운동이 있었기에 세계만방에서 ‘한민족의 독립 갈망’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일본의 위장 외교정책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국민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은 것 같다. 위정자들의 책임이 크다. 위정자들이 먼저 정쟁(政爭)을 그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는 본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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