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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가 없으면 선진국이 아니다3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4/30 [09:56]

창조가 없으면 선진국이 아니다3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4/30 [09:56]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적이다


기(氣)를 주장하면 흔히 ‘기(氣)=물질(物質)’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과학적이 될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기를 주장하면 도리어 기와 혼연일체가 되기 때문에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인 과학과 달리 기(氣)에 따라 움직이고 기(氣)에 따라 태도와 자세를 달리하는 기회주의 혹은 상황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근대의 절대성을 중시하는 절대과학보다는 상대성을 중시하는 예의나 심정론이나 상황론이나 순환론에 빠지게 된다. 순환론에 빠지면 매우 과학적인 것 같지만 실은 근대적인 의미의 과학과는 다른 것이 된다. 상대론은 근대과학이전에 있었던, 자연에 적응하는 자연주의에 있었고 도리어 근대를 지나 현대의 미시․거시물리학에서 취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사물관이나 우주관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그러한 관점에서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성원리라는 법칙도 동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 나온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기(氣)를 주장하면(主氣論) 기를 살수는 있어도 기를 법칙화(法則化)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운동으로서의 문화’는 근대적 법칙을 정립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학문(주자학)을 창조적으로 거듭 일신(一新)하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이들에 비하면 동인의 학풍은 그렇지 않았다. 남인의 실학적 학풍을 일으킨 원류는 동인의 학풍인 퇴계학에 있었는데 얼른 보면 퇴계학이 매우 사변적이어서 꼴통주자학의 대명사인 것처럼 이해하게 되는데 실은 그 정반대이다. 이(理)를 주장한 주리론자(主理論者)들은 인성론과 존재론에서 법칙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여 사람과 사물에서 어떤 법칙성을 추구하는 관계로 도리어 근대 과학정신과 통하는 일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퇴계의 문하에서, 더 정확하게는 퇴계의 제자인 정구(鄭逑: 1543~1620)는 바로 실학의 길목에 있게 된다. 그는 경학(經學)을 비롯하여 산수(算數)․병진(兵陣)․의약(醫藥)․풍수(風水)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으며 당대의 명문장가로서 글씨도 뛰어났다. 그의 학풍이 근기(近畿: 서울․경기지방)에 전해져 실학 근기학파를 만들어낸다. 성호 이익(李瀷: 1681~1761), 정약용이 그 후학이다.

정약용 일가의 천주교와 관련한 순교․박해․유배사건은 단순히 한 가문의 불행과 참화를 당한 사건이 아니라 근대적으로 우리문화를 탈바꿈할 원동력을 잃은 것이 되고 우리 문화의 관념적 독선주의 혹은 기득권자(훈구학파)의 위선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 된다. 정약용을 비롯한 남인들은 퇴계 선생의 학풍을 전수 받은 문화의 창조적 계승자였지만 꽃을 피워보지 못하고 무참하게 꽃봉오리를 꺾이고 만다. 이것은 후에 우리의 일제로 이어진다. 또 천주교를 믿던 남인들은 천주교를 통해서 종교만 믿은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있던 근대 과학정신, 근대 시민정신을 느꼈던 것이고 그래서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천주교에는 기독교의 헤브라이즘과 함께 헬레니즘의 정신이 있었으며 그 속에는 과학적 절대주의의 강력한 근대문화를 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미리 간파한 젊은 엘리트들이 바로 정약용의 가문이었다. 그런데 조정은 이를 탄압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허송한 조정은 드디어 미국의 제너럴셔만호 사건(1866), 프랑스의 병인양요(1866), 미국의 신미양요(1871)에 이어 일본의 병자수호조약(1876)으로 문을 열게 되고 이어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하지만 개화냐, 천사냐 하면서 내분의 갑론을박을 하지만 이미 근대화의 기차는 지나갔고 갑신정변(1884), 갑오경장․동학란(1894), 을미사변(1895), 을사보호조약(1905), 경술국치(1910)로 이어지는 일제 식민이 기다리고 있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것은 이미 일제로 들어가는 예정된 수순에 불과하였다. 이 사이에 누가 애국을 하고 누가 친일을 하고 누가 무엇을 하고는 문화능력 배양이라는 근대화의 눈으로 보면 별 의미가 없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하다. 이미 근대화의 대세를 잃어버리고 만시지탄에 이른 것을 어찌하랴.

지금도 그 우리 문화의 관념성과 사대성은 우리의 발목을 죄고 있다. 국가 운영을 교조적으로 운영하면서 문화의 실체, 실익을 놓치고 있다. 오늘의 쓸데없는 민주주의와 관련한 좌․우 이데올로기 논쟁이나 선명성 경쟁이 그것이고 과학․기술에 대한 무관심이 그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하는 것은 우리 문화가 창조적으로 되지 못하였다는 증거이고 창조적으로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통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창조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남북이 분단되었고 동족상잔의 전쟁도 치렀던 것이다. 창조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그렇게 보면 문화의 창조적이지 못한 점에 그 원인이 있다. 아니면 그 결과로서 창조적이지 못하다. 아무리 좋은 것도 창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재생산하지 못하면 도리어 해가 된다.


발전과 정체의 교체


1960년대부터 특유의 한국인의 생존능력, 즉 바이탤리티를 과시한 한국의 현대사는 박정희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경제개발계획을 비롯하여 각종의 문화능력회복 노력과 더불어 눈부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 발전은 1990년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 후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부터 발전은 민주주주의 ‘자유와 평등’의 원리에 의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민주화’라는 것은 인간이 이룩한 최고의 정치·도덕적 원리임에도 왜 ‘민주화’라고 하면 그것이 발전의 걸림돌이 되었을까. 이것에 대한 반성과 원인분석이 필요하다.

첫째, 들 수 있는 것이 외래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상적 관념론의 입장이다. 이것은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적용하려고 하면 종래의 전통과 현재 살림살이의 수준, 국민들의 민도 등 여러 변수가 적절하게 고려되어 소위 토착화과정에서 ‘주체적인 민주주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그저 구호와 관념의 부르짖음에 안주하는 경향 때문에 사회적 혼란만 야기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다시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민주주의가 아무리 지상과제라고 하더라도 각국의 구체적인 민주화과정은 역사적 전통과 문화의 특징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고, 선후를 달리할 수도 있고, 심하면 서로 반대의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천편일률적으로, 외국에는 어땠느니, 미국과 영국,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어땠느니 하면서 외국의 기준을 안이하게 갖다 대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논쟁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둘째, 소득의 증대와 더불어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하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는 전반적으로 발전보다는 질투와 시기로 점철된 시기였다. 다시 말하면 성급한 평준화로 인해서 하향평준화를 결과하게 하였으며 사회운동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였다. 또 이 과정에서 노동귀족이라는 특수계층도 성립되었다. 또한 반체제운동은 정부를 견제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이 정당하다는 전제하에 일부에서는 ‘민주주의 세력’과 ‘민중주의세력’의 결탁으로 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기도 했다. 잘못된 평준화와 잘못된 지방자치는 국론의 분열과 국가에너지의 낭비만을 초래하였다.

그래서 중국이 ‘문화혁명’을 하면서 까먹은 15년의 세월을 보상이라도 해주듯이 이번에 한국이 ‘민주화’를 하면서 같은 시간을 까먹었다. 드디어 중국이 한국을 거의 따라잡을 때까지 한국은 낭비와 혼란을 계속하였다. 그 덕택에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발전의 차이와 편차를 이용하면서 동아시아의 거중조정자로서 활동하던 유리한 입장을 거의 잃어버리게 되었다. 중국은 우리의 생각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일상생활 분야도 우리를 따라잡았다. 역사라는 것은 항상 발전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러한 발전과 정체, 퇴보의 흐름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하는 중요한 점은 특정의 이데올로기에 현실을 담보 잡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 이데올로기가 좋은 것일수록 그 해악은 더 크다. 왜냐하면 특정 이데올로그들이 절대선이나 독선에 빠져 반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특정 이데올로기의 노예들이 많다. 그들은 그 이데올로기를 자신이 창안한 것도 아니면서,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에게 맞게 적용도 하지 못하고, 더 더욱 실용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그 이데올로기의 순교자라도 된 듯한 거만한 태도를 취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면모이다. 이런 이데올로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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