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銀과 銅과 鐵의 나라2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철의 나라 로마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3/30 [13:34]

銀과 銅과 鐵의 나라2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철의 나라 로마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3/30 [13:34]
 

銀과 銅과 鐵의 나라2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철의 나라 로마


한니말의 카르타고와 로마의 충돌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도시국가 티루스왕 베로스의 딸 디도가 세운 나라다. 디도는 피그마리온의 동생으로 그녀의 남편 쉬카이오스는 대단한 재력가였다. 디도의 오빠 피그마리온은 재산이 욕심이 나서 동생의 남편을 죽이고 만다. 이렇게 되자 디도는 목숨의 위험을 느끼고 남편의 재산을 배에 싣고 친구들과 부하들을 데리고 티루스를 탈출하여 지금의 튀니지의 카르타고에 와 닿는다. 디도는 이곳 주민들에게 한 마리의 소가죽으로 둘러칠 만한 땅이라도 좋으니 나누어 달라고 부탁하고, 주민들은 디도의 정주를 허락한다. 디도는 쇠가죽을 가늘고 길게 연결하여 둘러친 다음 그곳에 성을 쌓아 ‘비루사(쇠가죽)’라고 이름 지었다. 그 성 중심에 생긴 도시가 카르타고였다.

카르타고인들은 상술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마침내 지중해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지만, 이태리 반도에서 발흥한 군사대국 로마와 불가피한 충돌을 하게 된다. 이 로마와의 전쟁이 포에니 전쟁이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로마(이탈리아 반도)를 16년간 초토화 시킨 장수다. 로마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달랠 때, ‘문간에 한니발이 와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 한니발은 BC 247년 제1차 포에니전쟁 말기의 카르타고 사령관 ‘하밀카르’의 아들로 태어나 9세 때 당시 카르타고의 식민지였던 에스파냐로 이주하여 성장한다. 18세 때 아버지 하밀카르가 전사함에 따라 매형 ‘하스드루발’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군이 되었다. 하스두르발은 한니발이 성장하여 바스카르 가문을 지킬 나이가 될 때까지의 관리책임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마저 부하에게 피살당하자 당시 26세였던 한니발은 마침내 에스파냐의 총독에 오르게 된다. 그 후 29세 때인 BC 218년 로마정벌 원정길에 오른다. 그 출발 당시의 병력은 보병 9만명, 기병 1만2천명, 코끼리 37마리였다. 한니발은 그의 두 동생 중 첫째 동생 ‘하스두발’에게 에스파냐 방어의 임무를 맡기고, 막내 동생 ‘마고네’를 데리고 원정길에 올랐다. 하지만 알프스 산맥을 넘고 이탈리아 땅에 이른 4개월 후 2만6천명의 병력만 남았다. 그러자 한니발은 로마와 사이가 나쁜 갈리아인들을 협박, 매수, 이간과 회유로 병력을 충원하여 전쟁을 치러나갔다. 그는 BC 218년 ‘티치노 회전’과 ‘트레비아 회전’에서 완승을 거둔데 이어 이듬해 ‘트레메시노 회전’에서도 완승하여 로마 연맹국들을 분열시키는 목표를 착실히 진행하였다. 또한 BC 216년 칸나 회전에서도 완승을 거둬 로마군을 완전히 궤멸시켰다. 이에 그의 부하들이 로마(로마시)로 바로 진격하자는 건의를 올렸으나 한니발은 ‘로마와의 동맹국들을 이탈시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이를 무시하고 로마의 동맹국인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 캄파냐 지방의 ‘카푸아’, 칼라브리아 지방의 ‘타란토’등을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는 로마 동맹국의 끈질긴 저항에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로마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가 본국 카르타고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탈리아 남부 따뜻한 지방에 틀어박혀 있던 중, 로마-카르타고 간의 휴전협정 조인에 따라 본국으로 철수한다. 이때가 그의 나이 44세 때이다. 한니발이 29세부터 44세까지 전쟁을 치르던 전반기인 BC 218~210년까지는 그가 주도권을 쥔 상황이었다. 로마-카르타고 간의 휴전협정 조인에 따라 철수하여 본국 카르타고의 하드류메툼(현재 ‘튀니즈수스’)에 상륙하였다.

그 후 한니발은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 근교 ‘자마’에서 BC 202년 로마장군 ‘스키피오’와의 전쟁을 치렀으나 참패했고, 본국에서도 정적들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혈혈단신으로 카르타고를 탈출, ‘시리아’의 왕 ‘안티오코스’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그러나 시리아는 그를 이용하여 로마와 전쟁을 일으키고 한니발은 시리아의 장군이 되어 복수를 시도하지만 이것 역시 실패하고 만다. 결국 전쟁의 승리자인 로마가 그의 신병을 넘길 것을 요구하자 그는 그곳을 탈출하여 지중해의 여러 섬을 전전하다가 흑해 연안 ‘비티니아’에서 간신히 목숨을 연명했다. 하지만 로마의 끈질긴 압송 요구가 그를 옭죄어 오자 독배를 마시고 자결한다.


鐵의 나라 로마의 탄생


로마제국을 ‘철’에 비유한 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철이 금과 은과 동을 박살내듯 로마는 전투에서 패한 적은 있으나 전쟁에서는 패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철과 같이 강한 나라 로마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따르면 BC 1250년경 스파르타왕 메넬리우스의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왕자 파리스의 유혹에 빠져 남편과 딸을 버리고 트로이로 건너간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분노한 메넬리우스는 자기 형 메케네왕 아가멤논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하고 아내를 되찾아줄 것을 요청한다. 아가멤논은 “이것은 비단 너만의 수치가 아니다. 그리스 전체의 수치다. 이번 기회에 트로이를 단단히 혼내줘야겠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여러 나라에 사신을 보내 트로이 응징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자, 여러 나라가 호응을 하고 나섰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군은 10년 넘게 전쟁을 하게 된다. 그리스군은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아킬레스 장군이 지휘하고, 트로이군은 헥토르가 나서서 싸웠으나 전쟁은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이때 그리스 측의 오디세우스가 한 가지 전략을 내게 된다. 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木馬)를 만들어 그 안에 군사를 숨겨놓고 전쟁을 하다가 일부러 패하는 척하며 목마를 남겨놓고 퇴각한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트로이군은 목마를 끌어다가 성안에 들여놓고 잠든 사이 목마 안에 있던 그리스측 병사들이 나와 트로이 성안을 불지르고 성문을 활짝 열어젖혀 그리스군이 트로이성을 함락시키고 트로이를 정복하고 만다.

이런 와중에서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사위,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티테의 아들이자 트로이 영웅 아이네아스는 늙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과 많은 백성과 함께 탈출하여 방랑의 길로 접어든다. 그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카르타고까지 가게 된다. 이 무렵 카르타고는 티루스에서 탈출한 디도가 정착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후 아이네아스와 디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아이네아스는 나라를 세워야겠다는 일념으로 디도의 곁을 떠나 이태리 반도로 간다.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왕은 라티누스로 그에게는 라비니아라고 하는 딸이 있었고, 아이네아스와 라비니아는 결혼한다.

이후 그들의 13세 후손 때 알바왕 프로카스는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라는 아들을 남기고 죽는다. 이들 형제는 제위 다툼으로 동생 아물리우스는 형 누미토르를 국외로 추방하고, 자신의 아들까지도 죽이고, 딸 레아실바를 베스타 신의 무녀(巫女)로 만들어 일생동안 처녀로 살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아실바가 베스타 신전에 바칠 물을 길러 마르스신의 숲에 갔을 때 그녀의 미모에 반한 마르스신이 그녀를 겁탈했다. 이렇게 해서 레아실바는 처녀의 몸으로 쌍둥이 형제를 낳는다. 이 사실을 안 아물리우스는 대노했다. 부하에게  쌍둥이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부하들은  이 아이들을 죽이지 못하고 광주리에 담아 테베레 강물에 띄워 보낸다. 늑대의 품에서 자란 아기들이 어느 날 양치기 목동은 늑대가 없는 틈을 타서 아기를 훔쳐내어 자기의 아들로 키운다.

이 두 소년이 로마 건국신화에 나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다. 이 두 형제는 성장하여 양치기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힘을 기르고 세력을 넓혀 알바롱가로 쳐들어가서 정복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들이 성장한 테베레강 하류 곧 ‘로마’라고 불리게 된 그 곳에 도시를 세운다. 알바롱가왕을 제거하자 그곳 주민들은 이들에게 복종했다. 그후 이 형제는 왕위 문제로 사이가 나쁘게 되자 분할통치를 한다. 로물루스는 팔라티누스 언덕에,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에 각각 자리를 잡게 되지만, 이해관계로 충돌하게 된다.

결국 로물루스는 레무스를 죽이고 만다. 이런 사연으로 건설자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BC 754년 로마는 여러 도시국가 중의 하나였다. 명실상부한 제국의 탄생은 이태리 반도를 통일하고 지중해권의 경제대국 카르타고를 격파하여 알렉산더 대왕의 나라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BC 168년 6월22일의 퓨도나 전투에서의 승리한 때가 진정한 건국연대라고 볼 수 있다.

이후 로마는 AD 395년 동서로마의 분리되고, 476년 서로마는 멸망을 맞게 된다. 한편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정하고 그리스어(헬라어)를 사용한 동로마는 1천년을 지속됐다. 서로마의 멸망은 고대가 막을 내리고 게르만족이 활약하는 중세 사회로 접어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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