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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라와 불교 확장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10/02 [08:02]
불교, 헬레니즘 페르시아 문명과 충돌, 대승사상형성에 영향받아

간다라와 불교 확장

불교, 헬레니즘 페르시아 문명과 충돌, 대승사상형성에 영향받아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10/0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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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서역과 둔황 그리고 중국에 전파 확장되면서, 인도 북부인 간다라는 통로가 되었다.

 

▲ 간다라에 있었던 탁티바히 불교 수도원.  © CRS NEWS

 

불교 역사에서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 확장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도 북부 지역을 간과할 수가 없다. 그 가운데서도 간다라는 아주 중요한 지역이다. 간다라(Gandhāra)는 현재의 파키스탄 북서부와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일부로서 대략 인도 아 대륙의 북서부를 중심으로 한 고대 인도-아리아 문명이다. 간다라 지역의 핵심은 페샤와르 계곡과 스와트 계곡이었지만, () 간다라의 문화적 영향은 인더스강을 건너 포토하르 고원의 탁실라 지역,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계곡, 북쪽으로는 카라코람 산맥 등이다.

 

▲ 주요 인도-아리아어의 지리적 분포를 보여주는 지도.  © CRS NEWS

 

인도-아리아 민족은 인도 아 대륙에서 인도-아리아 언어를 사용하는 인도-유럽 민족의 다양한 집단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아리아인은 중앙아시아에서 남아시아로 이주하여 인도-아리아어를 도입한 인도-이란계 목축민이었다. 오늘날 인도-아리아어 사용자는 방글라데시, 남부 네팔, 동부 파키스탄 등 현대 아 대륙 지역 전역에서 발견된다. 또한 스리랑카, 몰디브 및 북부 인도가 포함된다.

 

▲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 CRS NEWS

 

간다라 부족의 이름은 리그베다(기원전 1500년 경기원전 1200년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지역은 조로아스터교 아베스타(경전)에서 여섯 번째로 아름다운 곳으로 언급되어 있다. 아후라 마즈다(조로아스터 교의 창조신)가 만든 지구이다. 간다라의 경계는 역사 전반에 걸쳐 다양했다. 때때로 페샤와르 계곡과 탁실라를 집합적으로 간다라라고 불렀다. 때로는 카불계곡과 스왓이 포함되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북쪽으로 박트리아와 아리아나의 고대 지역과 남쪽으로 아라코시아와 사타기디아와 접해 있었다.

 

간다라는 베다시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 알렉산더 대왕과 마케도니아 제국의 인도 정복 원정을 거치면서 헬레니즘과 충돌했다. 

 

▲ 간다라에서 발견된 아테네 동전(기원전  500~485년경).  © CRS NEWS

 

알렉산더 대왕은 간다라와 페르시아 제국의 인도 총독을 정복했다. 알렉산더의 원정은 궁정 역사가들과 아리아누스 (서기 175년경)의 아나바시스 알렉산드리 (Anabasis Alexandri)와 그 사건 이후 수 세기 동안 다른 연대기 작가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나머지 다섯 명의 아케메네스 왕조 총독의 모든 족장을 초대하여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했다. 당시 힌두 총독이었던 탁실라의 통치자였던 암비(Ambhi)는 이에 따랐지만, 간다라(Gandhara),아라코시아(Arachosia),사타기디아(Sattagydia) 및 게드로시아(Gedrosia)의 전 총독이었던 나머지 부족과 씨족은 알렉산더의 제안을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알렉산더는 간다라를 정복하고 박트리아로 돌아가는 보급선을 확고히 한 후, 탁실라의 암비 왕과 힘을 합쳐 기원전 3267월 인더스강을 건너 아르코시아(펀자브) 캠페인을 시작했다. 알렉산더는 장교들을 새로운 지방의 사트라프(총독)로 지명했고, 간다라에서는 옥시아르테스가 기원전 326년에 사트라프 자리에 지명되었다.

간다라는 페르시아의 영향권에 있었지만, 알렉산더의 정복 이후에는 그리스의 지배를 받게 된다. 

 

▲ 알렉산더 대왕의 부인 록사나의 아버지인 옥시아르테스.  © CRS NEWS

 

말하자면 간다라는 베다 페르시아 헬레니즘 문명이 교차 한 곳이었다. 간다라는 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레니즘 시대에 접어든다. 마우리아 왕조의 황제 찬드라굽타는 알렉산더 후계자인 아시아의 후계자 셀레우코스 니카토르와의 전투를 벌였다. 이후에 마우리아 황제 찬드라굽타는 자신의 영토를 간다라와 아라코시아(펀잡)까지 확장했다. 제국의 대간선도로가 완성되면서 이 지역은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간다라는 약 150년 동안 마우리아 제국의 일부로 남아있었다.

 

▲ 인도 마우리아 왕조에 파견된 그리스 대사.  © CRS NEWS

 

이 과정에서 간다라 지역은 불교가 전파 확장되었다. 아소카 대왕은 이 지역에도 불교 전도사를 파견하게 되었고, 그리스 헬레니즘 나라에까지 불교 승려를 보냈다. 탁실라 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한 바 있는 찬드라굽타는 간다라 지역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그의 손자인 아소카는 인도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 중 한 명이었다. 아소카는 그의 통치 경력을 간다라 주지사로 시작할 정도였다. 아소카가 나중에 불교로 개종하면서 독실한 불교도가 되었고, 불교를 장려하여 간다라에 많은 사리탑을 세웠다. 요나(그리스) 캄보자와 간다라를 포함한 북서쪽의 통제가 있었다는 것은 아소카의 암석 칙령에서 입증되고 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부여 백제대제전 행사에 참석한 보검스님.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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