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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와 아시아의 접촉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12/04 [09:34]
그리스-박트리아 불교, 인도-그리스 불교로 발전, 대승불교 사상에 영향

고대 그리스와 아시아의 접촉

그리스-박트리아 불교, 인도-그리스 불교로 발전, 대승불교 사상에 영향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12/04 [09:34]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49) 

 

헬레니즘 제국(셀레우코스)이 인도로 영토를 확장하려 했을 때, 마우리아 제국의 통치자인 찬드라굽타와 갈등을 겪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인더스 강 서쪽의 광대한 영토를 할양하게 되었다. 비록 마우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이전에 알렉산더나 셀레우코스의 권력 아래 있던 지역은 그리스 사상과 미학과 강한 연관성을 유지했다.

 

▲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지도(기원전 180년경).

 

찬드라굽타의 손자 아소카는 마우리아 제국을 통치하면서 불교로 개종했다. 그는 자신의 종교를 제국 전역에 전파하여 그리스 사상과 불교 사상이 독특하게 혼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마도 놀랍지 않게도, 최초의 불상이 만들어진 것은 아소카 시대의 마우리아 제국에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리스에서 조각상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기원전 185년 멸망한 후에도 그리스-불교는 번성했고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과 인도-그리스 왕국이라는 두 중요한 사회가 발전했다. 말하자면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과 인도-그리스 왕국이 출현하면서 그리스인들의 불교는 지속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기원전 256100)은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전성기의 이란과 파키스탄 일부를 포함하여 서아시아 대부분을 포괄하는 헬레니즘 사회였다.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멸망하자, 느슨하게 인도-그리스 왕국으로 명명된 일련의 계승 국가들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인도-그리스 왕국은 뛰어난 헬레니즘 언어, 문화, 동전, 미학으로 유명하다.

 

그리스-불교 사상과 스타일이 잘 발달한 것은 기원전 200년부터 서기 10년까지 이어진 인도-그리스 왕국의 전성기였다. 고대 그리스와 동양 사이의 강력한 연결로 인해 수많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인도로 나아 갈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인도 사상 사이의 이러한 상호 작용은 두 사회 모두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피로(Pyrrho), 아낙사코스(Anaxarchus), 오네시크리토스(Onesicritus)와 같은 철학자들은 모두 알렉산더 대왕과 함께 그의 영토 동쪽으로 여행했다.

 

인도에 있는 동안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한적인 생활 방식을 살았던 인도 금욕주의자, 즉 은둔자를 만났다. 피론은 그리스로 돌아와서 의심과 회의주의에 초점을 맞춘 피론주의 철학파를 형성했다. 많은 학자들은 피로가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발전시키던 중, 여행 중에 만난 인도 금욕주의자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믿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역시 자신의 작품에서 불교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불교의 본질적 교리인 존재의 세 가지 특징(삼법인)을 해석하기도 했다.

 

현대 리비아의 그리스 도시인 키레네의 헤게시아스는 삶의 진정한 행복은 달성할 수 없으며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기보다는 고통을 피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철학은 마우리아의 통치자 아소카가 서아시아와 중동 전역에 파견한 불교 전도사들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 간다라 예술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보여주는 부처님의 머리.  © CRS NEWS

 

아마도 고대 그리스가 불교에 미친 가장 눈에 띄고 주목할 만한 사례는 불교 조각상의 형태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초의 불상은 그리스와 조각과의 강한 연관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헬레니즘 지역에서 건설되었다.

 

최초의 부처님 조각상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예술에서 인간 남성이 아닌 상징의 형태로만 표현되었다. 간다라 예술 작품, 즉 헬레니즘 시대에 인도 북서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헬레니즘 스타일로 제작된 작품은 그리스와 서양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눈에 띄고 불교와 동양 요소가 특징이다.

 

그리스-불교와 헬레니즘 예술품은 고대 후기 내내 강세를 유지했으며 7세기와 8세기에 인도에서 힌두교가 부활하고 이슬람교가 중앙아시아를 정복할 때까지 번창했다.

 

이제 불교의 동점을 한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자연스러운 불교의 확산이었다고 할 것이다. 한역권에서 우리가 이른바 서역이라고 부르는 타클라마칸의 사막지대인 오아시스 나라들에게 까지 불교가 확산되기 이전에 이미 중앙아시아에 불교가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 점에 착안하여 보면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지역인 박트리아에 불교가 제대로 착근되었다고 봐야 하겠다. 

 

▲ 안세고 스님.  © CRS NEWS

  

그리스 철학자, 지리학자, 역사가였던 알렉산더 폴리히스토(기원전 10535)가 슈라마나(사문)인 박트리아인에 대해 제공한 증거에 따르면 기원전 1세기에 이미 불교가 박트리아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했다. 불교는 이후 다른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침투해 중앙아시아와 카슈미르에서 신장까지 도달한 뒤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파르티아 영토 중 하나(마르기아나)에서 온 불교 전도사 안시카오(An Shih-kao)는 서기 148년에 중국에 도착하여 불교 서적을 중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쪽에서 중국에 도착한 여러 세대의 번역가에 대해 알고 있다. 여기에는 박트리아인, 소그드인, 파르티아인이 포함되었다.

 

불교는 매우 일찍 신장 남부, 특히 이란 호탄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사는 호탄에 전해졌다. 불교가 그곳에 도착한 날짜는 티베트 연대기에 따르면 기원전 84년으로 추정되며 아마도 그럴 듯하다고 본다. 1~2세기 불교 경전인 다르마파다(Dharmapada 법구경) 사본이 호탄에서 발견되었으므로 그 기간에 다른 경전 작품이 그곳에서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장 위구르 자치구 호탄시.  © CRS NEWS

 

또한 불교는 호탄 외에 나가라하라, 아라코시아, 카피사, 박트리아, 파르티아 및 소그디아나 와 같은 다른 동부 이란 지역에 일찍 도착했음이 틀림없다. 이 지역의 수많은 불교 유적 중에서 가장 초기의 것은 쿠샨 왕조(1~3세기)의 것이다. 불교 전통에서는 가장 유명한 쿠샨 통치자인 카니슈카(서기 1세기)를 종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수많은 불교 종교 구조물을 건설한 열성적인 불교도로 묘사한다. 그의 주화에는 이란과 헬레니즘 로마의 신들과 드물게는 부처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카니슈카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라바탁비문은 그의 종교적 신념을 다룰 때 부처나 불교 신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에 불교는 이미 상징적인 종교가 되었으며 의인화한 부처의 초기 표현 중 하나는 박트리아의 틸리아-테페 공동묘지에서 나온 금 토큰이나 사원 동전에서 발견된다. 불교 간다라 예술은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남부와 신장 지역까지 퍼져 이 광활한 영토에 여러 불교 부파를 세웠다. 간다라 예술은 개별 작품과 일련의 작품에서 불교 건축의 유기적인 부분으로 기능했다. 이들은 특히 비하라(불교 수도원), 차티야(성스러운 장소), 스투파(부처님이나 다른 성인의 신성한 유물을 보관하는 불교 기념물)였다. 그들의 주요 건축 및 구성 아이디어는 인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지역 기후, 건축 자재, 건축 및 건축 전통에 맞게 조정되었다. 불교 제의 건물의 각 주요 유형은 오랜 진화를 거쳤다. 독립된 불교 사원 등 외에도 동굴 수도원(인도에서 발견됨)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남부, 신장 및 중국 북부의 지역적 특징이 되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 스님이 국제불교연맹 총회에 참석. 인도 뉴델리 더 아속 호텔.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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