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전화에 휘말린 현대 아프가니스탄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12/11 [07:38]
인도 불교 중국 전파 전진기지 역할, 지금은 유적도 파괴되고 있다

전화에 휘말린 현대 아프가니스탄

인도 불교 중국 전파 전진기지 역할, 지금은 유적도 파괴되고 있다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12/11 [07:38]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50)

 

잘랄라바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인구는 불과 50만 명 미만이지만 한때는 불교센터 역할을 했다. 카불에서 130km 거리에 있으며, 힌두쿠시 산맥 남쪽 고원의 카불강과 쿠나르 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 불교센터 역할을 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 CRS NEWS

 

잘랄라바드 근처에 있는 하다는 고대 시대에는 나가라하라라고 했는데, 이곳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불교 중심지였다. 중국 순례자들, 예를 들면 법현 법사나, 현장 삼장법사는 이곳을 반드시 들려야 할 불교센터로 간주했다. 이곳에는 수 많은 수도원들이 있었다. 크고 작은 탑, 성소 및 인공 동굴의 흔적으로 덮여 있다. 수도원에는 성소, 감방, 공동체 회관 및 기타 건물로 둘러싸인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안뜰이 있었다. 중앙에는 큰 사리탑과 여러 개의 작은 사리탑이 자리 잡고 있었다. 때로는 두 개의 뜰이 있었는데, 하나는 감방이 있고 다른 하나는 작은 성소가 있었다. 수도원 옆과 그 사이에는 수많은 탑과 사당 및 조각품이 있었다.

 

▲ 2세기 하다 타파 쇼토르 사원에 있던 좌불상.  © CRS NEWS

 

500개가 넘는 스투파는 풍부한 치장벽토 또는 돌 장식 부조, 처마 장식, 코린트식 기둥, 아치 등을 포함한 건축 세부 사항, 줄지어 늘어선 조각상(좌불 및 입불)을 갖춘 다층 기초 위에 서 있었다. 하다의 예술은 간다라 지역의 예술보다 더 자유롭고, 더 표현력이 풍부하고, 사실적인 간다라 예술의 특별한 학파를 이루고 있었다. 조각가들은 세속적인 인물을 묘사할 때 자신의 재능을 더욱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경우에 신적인 인물보다는 정식적인 요구 사항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조각된 머리와 인물은 매우 아름답다.

 

1930년대와 1970년대에 하다에서는 점토와 회반죽으로 이루어진 약 23,000개의 그리스-불교 조각품이 발굴되었다. 발견은 거의 완벽한 헬레니즘 스타일로 불교와 헬레니즘의 요소를 결합한 것이다. 유물의 스타일은 기원전 2세기 또는 1세기 후반의 헬레니즘 시대의 전형적인 것이지만, 하다 조각품의 연대는 일반적으로, 1세기 또는 그 이후의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이 지역에서 몇 세기 동안 후기 헬레니즘 양식이 보존되었기 때문에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유물은 실제로 후기 헬레니즘 시대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하다에 있는 불탑 유적.  © CRS NEWS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 사본, 실제로 모든 종류의 인도 사본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본이 하다 주변에서 회수된 것으로 여겨진다. 서기 1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은 간다리 나무 껍질에 카로슈티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되었으며, 동일한 언어와 문자로 비문이 새겨진 점토 항아리에서 발굴되었다. 그들은 간다라를 지배하고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로 불교가 전파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르바스티바딘(설일체유부) 부파의 오랫동안 사라진 정경(正經)의 일부이다. 이 사본 원고는 현재 영국국립도서관이 소유하고 있다.

 

▲ 대영 도서관(British Library), 약칭 BL은 영국의 국립 도서관이다. 런던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학술 도서관 가운데 하나이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수집관이기도 한 이곳은 책, 국회 의사록, 신문, 잡지, 소리 그리고 녹음한 음악, 공판 기록, 데이터베이스, 지도, 도장, 인쇄물, 그림 등 세계의 모든 언어와 형식의 항목을 1억 5천만 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특히 기원전 300년의 유서 깊은 것을 포함하여 약 2500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성서》 필사본과 대헌장 원본 같은 귀중한 장서는 런던의 블룸즈버리에 있는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CRS NEWS

 

타파 쇼토르 사원은 설일체유부 부파 소속 사원이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래이몽 알친에 따르면 타파 쇼토르 사원은 헬레니즘 박트리아 예술에서 직접 유래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타파 쇼토르의 가장 초기 건축물은 인도-스키타이 왕 아제스 2(기원전 35-12)의 것으로 보고 있다.

 

하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조각군은 완벽한 헬레니즘 헤라클레스와 풍요의 뿔을 들고 있는 티케로 둘러싸인 부처를 나타낸다. 그리스 도상학의 유일한 적응은 헤라클레스가 그의 평소 곤봉이 아닌 바즈라파니(금강수 보살)의 벼락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티케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한 도시의 번영과 운명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결론적으로 정리한다면 오늘날의 중국 불교는 단순히 인도에서 바로 직수입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중국 불교 이전에 이른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그리스-박트리아불교가 전해졌음을 상기하자는 것이다.

  

▲ 1970년대 후반 아이-하눔의 주요 성역.  © CRS NEWS

  

박트리아 불교의 초기 연대를 뒷받침하는 것은 쿤두즈 지역의 도자기 성물함에서이다. 이곳은 담마굽타카(법장부파) 부파가 주로 활동했던 영역이었다. 여기에는 카로스티 비문이 있는데, 비문의 연대는 기원후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교 사원이 설립된 시기는 아마도 쿠샨 시대 말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 않나 추정하고 있다.

  

▲ 아무 다리야 강.  © CRS NEWS

 

북부 박트리아(, 아무다리야 북부, 현대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부)의 체계적인 고고학 연구를 통해 주로 테르메즈에 집중된 수많은 불교 기념물이 밝혀졌다. Amu Darya에서 멀지 않은 Termez 고유의 북서쪽에는 동굴 수도원인 Kara Tepe(Karā Tappe)와 인접한 독립 수도원 Fayaz Tepe(Fayyāż Tappe)가 있는 대규모 불교 센터가 있었다. 카라 테페(Kara Tepe) 수도원은 약 7헥타르에 달하며 서로 다른 시대에 지어진 일련의 인접한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지상 구역과 지하 구역을 가지고 있었다. 지하 부분은 중앙에 거대한 돌기둥(또는 두 개의 기둥)이 있고 복도로 둘러싸여 있으며 내부 공간이 있는 경우도 많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의 플랫폼 앞에는 열주, , 물탱크, 조각품을 위한 받침대와 벽감이 있는 정사각형 안뜰 형태의 표면 구조가 있었다. 계획이 다른 단지도 있었고 일부 2층 구조도 있었다. Kara Tepe에서는 수많은 예술품(석재 및 회반죽 조각품, 그림)과 석조 건축 세부 사항이 발견되었다. kharoṣṭhī brāhmī 문자로 된 150개 이상의 인도 비문이 복구되었다. 건설은 CE 1~2세기에 시작되었으며, 복합 단지는 3~4세기에 최고조에 달한 뒤 5~6세기에 쇠퇴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코리아 대표>

▲ 새로 선출된 국제불교연맹 집행이사들이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서 네번째가 필자 보검스님  © CRS NEWS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