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숭산 스님 미주포교 50주년…LA달마사서 韓‧美 합동 수계법회

문윤홍 대기자 | 기사입력 2022/11/09 [21:35]
10월22일, 수덕총림 설정 스님 등 300여명 동참…숭산 스님 되새기고 전법포교 원력 다져

숭산 스님 미주포교 50주년…LA달마사서 韓‧美 합동 수계법회

10월22일, 수덕총림 설정 스님 등 300여명 동참…숭산 스님 되새기고 전법포교 원력 다져

문윤홍 대기자 | 입력 : 2022/11/09 [21:35]

1022, 수덕총림 설정 스님 등 300여명 동참숭산 스님 되새기고 전법포교 원력 다져

 

세계일화(世界一花)의 가르침을 전세계에 알리며 한국불교 세계화를 견인한 숭산(崇山, 1927~2004) 스님의 포교원력을 계승하는 법석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현지에서 열렸다. 한국불교 세계화의 시발점이 된 LA달마사(達磨寺)가 창건 50주년을 기념해 미주포교에 앞장섰던 숭산 스님의 발자취를 되새기고 새로운 전법포교의 원력을 다졌다.

 

LA달마사(주지 금선 스님)1022(현지시간) ‘숭산 스님 미주포교 50주년 및 달마사 창건 50주년 기념식과 보살계 수계 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한국과 미국의 불자들이 동시 참여하는 가운데 보살계 합동수계법회도 함께 열려 의미를 더했다.

▲ 10월22일(현지시간) 미국 LA달마사에서 ‘숭산 스님 미주포교 50주년 및 달마사 창건 50주년 기념식과 보살계 수계 법회‘가 봉행됐다.

 

법석에는 덕숭총림(修德叢林) 전 방장 설정 스님과 수덕사(修德寺) 주지 정묵 스님, () 미동부해외특별교구장 휘광스님(뉴욕 불광선원 주지), 해외특별교구 부교구장 정범 스님과 현일현철석타묘경 스님 등 LA현지 사찰 주지 스님, 샌프란시스코 진월 스님과 미주비구니승가회장 선각 스님, 고문 마야스님 등 회원스님과 불자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달마사는 덕숭총림 수덕사 미()서부전법도량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의미를 담은 현판식을 거행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진행된 보살계 수계산림법회는 설정 스님을 계사로 봉행됐다. 그동안 미국에서 여법한 수계법회 봉행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던 만큼, 한국 성지순례단 45여명과 현지 불자 150여 명이 동참한 수계법회는 그 자체로 뜻깊은 법석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LA달마사 창건 50주년 기념행사는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달하 우송 스님의 축하 영상으로 시작됐다. 우송 스님은 생전 숭산 스님이 외국인 제자들과 한국 방문시 간월암에서 관세음보살을 지극히 염송했던 모습을 회상하며, ‘이 뭣꼬마음 찾는 수행의 의미를 전했다. 

▲ 덕숭총림 수덕사 미 서부전법도량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의미를 담은 LA달마사 현판식을 제막하고 있다.

 

▲ LA달미사에서 열린 한미 수계법회의 모습

 

찬불가, 내빈소개와 헌향헌화에 이어 정범 스님이 지난 50년 역사를 되짚었고, 정묵 스님과 휘광 스님이 축사를 통해 앞으로 활동에 격려를 전했다. 손범낙 거사를 비롯한 신도들에게 감사장공로상 수여식도 진행됐다.

 

이날 수덕사는 미얀마, 필리핀, 그린피스 등 소외계층과 환경단체에 기부하며 전법 포교에 앞장서는 달마사에 격려금을 전달하고, 현지 학인 스님들은 장학금을, 숭산 스님 외국인 제자들에게 수행비도 전달했다. 달마사도 UCLA 한국불교 석좌교수직 신설 및 대학원생 지원 장학금을 전달한 후 미국 내 한국사찰 12곳 청소년 불자들에게도 장학금을 전달했다.

▲ 숭산 스님 미주포교 50주년 및 달마사 창건 50주년 기념 야외 행사의 모습

 

한편 이번 기념법회를 위해 출국한 한국 순례단은 달마사에 이어 태고사(太古寺), 라스베이거스 보리사(菩提寺)에서 참배하는 등 미국 서부지역을 순례했다. 순례단 관계자는 거대한 미국 땅 동쪽에서부터 중부, 서부 지역에서 한국불교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스님들이 계시는 모습을 보며 불제자임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 4대 생불(生佛)로 통한 숭산 스님

 

숭산 스님의 달마톡이 다 끝나갈 즈음, 옆에 있던 금발의 여성이 스님에게 물었다. 내 기억으로 그 여성은 하버드대 박사반에 재학 중인 30전후의 학생이었다.

 

"'사랑'이란 뭔가요?(What is love?)"

숭산 스님은 내쳐 그 여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었다.

 

"(제가 물어볼게요. 사랑이란 뭘까요?(I ask you, what is love?)"

 

그런데 그 학생은 대답을 잃어버리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숭산 스님은 물었다.

 

"이게 사랑이에요.(This is love.)"

 

그래도 그 여학생은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 학생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동안(童顏)의 숭산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 것이었다.

 

"당신이 저에게 물어봐서, 저도 당신에게 물어봤어요. 사랑은 이런 거에요.“ (You ask me, I ask you. This is love.)”

 

인간에게 있어서 과연 이 이상의 언어가 있을 수 있는가? 아마 사랑철학의 도사인 예수도 이 짧은 시간에 이 짧은 몇마디 속에 이 많은 말을 하기에는 재치가 부족했을 것이다. 나는 숭산의 비범함을 직감했다. 그의 달마톡은 이미 언어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국경도 초월하고 있었다. 오로지 인간, 그것 뿐이었다.

- 도올 김용옥,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중에서 

 

숭산 스님(1927~2004, 세수 77, 법랍 57)1970년대부터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세계 방방곡곡 한국의 선불교를 전파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해외에서는 달라이 라마마하 고사난다틱낫한 스님과 함께 세계 4대 생불(生佛중 한 사람으로 불릴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세계에 한국불교를 널리 알린 공로가 큰 인물로, 특히 해외에 전파된 선불교(禪佛敎) 문화가 일본불교 일색이었던 것을 혁신했다.

 

192781 평안남도 순천군(현 순천시)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이덕인(李德仁), 숭산은 출가시 받은 법명이 아니고 한국문화에 있는 호()이다. 큰스님같은 경우 법명을 바로 부르는 걸 제자나 신도들이 예의없다 여겨서 호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순천공립학교와 평양의 평안공립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44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46 동국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고, 절대진리에 대한 탐구를 위해 1947 마곡사에서 출가했다. 스승인 고봉(古峰)선사에게 처음 받은 법명은 행원이다.

 

출가 후, 참선수행을 통해 194922살 약관의 나이에 득도했다. 춘성, 금봉, 금오, 고봉선사들에게 인가를 받았다. 스승인 고봉선사로부터 인가와 전법을 받고, 숭산(崇山)이라는 당호를 받았다. 그후, 고봉선사의 명에 의해, 3년간 묵언수행을 했다.

 

1951년 군()징집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했고 1957년 장교로 제대했다. 1958년 대한불교조계종회 의원, 화계사 주지가 되었으며 1960년 대한불교신문사(현 불교신문)를 설립하여 초대 사장에 취임했고 1961 조계종 총무부 부장, 1964년 동국학원 이사로 재직하였다.

 

그 뒤 한국 선불교의 보급을 위해 해외포교에 나서, 1966 일본 신주쿠(新宿) 홍법원, 1969년 홍콩, 1972 미국, 1974 캐나다 토론토, 1980 영국 런던스페인 팔마, 1983 브라질 상파울루 1985 프랑스 파리 선원 등 세계 각지에 국제선원을 개설하여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렸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2004년 기준 세계 32개국에 120여 개의 선원이 개설되어 있으며현각과 청안, 무량을 비롯한 외국인 스님도 다수 배출하였다.

 

1985년 세계평화문화인대회에서 세계평화상을 수상했고 1996년 만해사상선양회가 수여하는 만해포교상을 수상했다. 1999년부터 화계사 조실(祖室)로 있었으며, 20041130일 입적하였다.

 

데카르트가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라는 것도 생각에서 온다.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언제 태어났고, 어디서 왔는가? 당신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Descartes said, I think therefore I am. Therefore this I come from thinking. Where does thinking come from? Who are you? When you were born, where did you come from? When you die, where do you go?)

 

위 인용구를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즉 이 나라는 놈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생각하기 이전의)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태어날 때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는 어디로 가는가?"  현각 스님은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에서, 위 설법에서 처음 숭산에게 감명을 받았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들이 다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아니여서, 실제 숭산스님의 선원에 다닌 테오도르 준 박은 그의 수행기 참선에서 숭산을 송담스님을 언급한 스님으로만 적고 있다.

 

Only go straight(용맹정진할 뿐이다)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이다)

 

이 두 문구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 가운데 대표적이다. 이 두 문구는 '오직 할 뿐', '오직 모를 뿐'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246살의 나이에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물론 영어는 전혀 하지 못했다. 미국은 당시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反戰) 여론이 높았고 히피문화의 유행 등이 한창이어서 이 모습을 본 숭산 스님은 당시 미국이 포교하기에 알맞은 환경이라고 여겼다고 한다미국 북동부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시()에 거처를 구하고 세탁소 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며 2년 동안 밥벌이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브라운 대학교에서 동양문명사를 가르치는 리오 프루덴 교수를 만났고, 숭산을 알아본 교수가 제자들을 소개시켜 주면서 불교에 관심이 있는 미국인에게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이후 프로비던스 선원(Providence Zen Center)을 시작으로, 1974LA 달마선원(Dharma Zen Cente)r, 1975년 뉴욕 조계국제선원(Chogye International Zen Center), 1977년 캘리포니아 공문선원(空門禪院, Empty Gate Zen Center) 등을 차례로 설립, 전미 25개주에 25개 선원을 설립했다.

 

숭산 스님은 특별한 연고없이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미국 방식을 꿰뚫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포교하면서 우리 관점에선 파격적일 정도로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숭산의 가르침을 아무런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숭산 스님은 콩글리쉬(Konglish)가 유명한데, 영문법도 잘 안맞는 데다 몇몇 단어만으로 만든 짤막한 문장을 구사해서 간단명료하게 불법(佛法)을 전해서 듣는 이들을 경탄하게 만들었다. 가히 선불교에서 말하는 불립문자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줬다 하겠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守岩 칼럼 많이 본 기사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