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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강변교회 원로목사의 설교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8/23 [20:54]
천국을 사모하고 준비하라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목사의 설교

천국을 사모하고 준비하라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8/23 [20:54]

지금 한국교회는 ‘천국의 소망’을 상실했습니다. 목회에 성공하고, 설교 잘한다고 다 천국소망을 품고 사는 것은 아니지요. 천국소망을 품고 살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갈 수도 있어요.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천국생활을 하며, 천국소망을 품고 삽니다.

교인들 중에도 천국에 갈 사람이 절반일 수도 있어요.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열 명 중 다섯이에요. 열 처녀 중 다섯 명만 잔치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못 들어갔잖아요. 또 두 사람이 함께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만 들림 받았잖아요. 둘 중에 하나 꼴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예수님이 일어나게 하신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벌떡 일어나게 하신 사람입니다. 그러니 행복하고, 진정 성공한 사람이지요. 우리의 관점이 그런 분을 성공한 분으로 여기지 않는 게 문제지요.

바울의 눈에는 하늘이 보여요. 그의 눈에는 세상이 잘 안보여요. 늘 천국이 눈에 보이니까 천국소망을 갖고 사는 겁니다. 사도 바울에게 보이는 세상은 배설물이고, 찌꺼기입니다.     

천국 들어갈 사람 천국소망 품고 살아    

사실 성경 계시록에 보면, 하늘로 끝마쳐요. 그런데 “지금은 이 세상이 너무 좋아요” 목사부터 이런 말들을 해요. “집도 좋고, 내가 이룬 왕국도 좋고…….”

이성봉 목사님은 자기가 살던 집도 다 없애버리는 거예요. 큰 집, 큰 자동차 다 배설물이다. 이성봉 목사님이 자주 부르셨던 ‘허사가(虛事歌)’입니다.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 영웅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마라. 저 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손양원 목사님도 주님의 재림을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늘 ‘주님고대가’를 부르시면서 주님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에 대해서, 세상의 책임을 등한히 한 사람이 아니에요. 사회적 책임을 감당했는데도 궁극적 목표는 천국이에요.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목표와 목적지는 모조리 이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세상에서 그저 잘 살자는 것이죠. 천국은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기고. 아니, 천국이 빨리 올까봐 다들 겁내는 눈치입니다. ‘이 세상이 이리도 편한데….’

예수님도 성찬식 하신 다음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아버지 집에 거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어요. 성경의 종착역은 하늘이에요.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내세 소망, 천국소망을 빠뜨리고 하는 것은, 자동차로 치면 바퀴 하나를 빼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게 제대로 갈 수 있겠어요?

세상에서 거지생활을 한 나사로도 행복한 사람이죠. 아버지 집에 못 갈 사람이 많이 있으니까요. 아버지 집을 사모할 수 있는 그 은혜를 회복하기 원해요. 아버지 집을 사모할 수 있는 그 마음, 그게 성도들의 마땅한 자세죠.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자 되세요. 성공하세요.’ 그 말 안 했어요. ‘주님 다시 오십니다. 마라나타. 주님 다시 오십니다.’ 그래서 세상을 뒤집어 놓죠. 경제력이 아니고, 군사력도 아니에요. 로마제국을 군사력으로 뒤집어 놓지 않았어요. ‘주님 다시 오십니다!’ 재림신앙이었어요. 폴리캅처럼 “주님, 주님” 그러면서 순교하니까 그게 확 서머나 도시에 감동을 주었지요.

페르펙추아 여인은 주후 203년 카르타고에서 자기가 낳은 사랑하는 아기를 놓고, 아버지를 두고 ‘한 병에 두 가지 종류의 꽃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내 몸에 주님이 있는데, 내가 이방신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렇게 천국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순교의 제물이 되니까 카르타고 도시가 변하죠. 천국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천국소망 잃어버린 한국교회    

지금 한국교회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거의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어느 목사님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국교회에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재림신앙을 상실한 것이죠. 목사의 설교에도 없고 삶에도 없죠.”

돈만 보이고 집만 보이면 불행하죠. 천국을 자꾸 생각해야지요. 살아 움직이면서도 천국을 생각하고, 꿈을 꾸면서도 천국을 생각하고. 몰트만 교수가 그랬어요. ‘천국에 대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으면 세상을 다 이긴다!’ 그게 없으면, 이 세상 삶이 흔들려요.

죽음은 아버지 집으로 가는 계단이니까, 부족하지만 십자가를 붙잡고 그 계단을 올라가서 아버지 집으로 가니까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면 두려움이 없어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극심한 박해도 이기죠.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이 일제의 모진 박해를 이기신 것도 천국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어요.

세상의 안일에 매이지 않고, 천국과 내세에만 붙잡혀 있었어요. 이 세상의 재물과 명예,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지금 일부 목사들의 눈에는 재물, 명예, 큰 집, 큰 교회 이런 것들이 보이죠.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은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고 해요. 평안, 명예, 티끌만큼의 관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고대가’를 불렀어요. 나환자들을 자기 자녀보다 더 뜨겁게 사랑하면서 그들의 피고름을 빨아주면서, 그러면서 늘 ‘고대가’를 불러요.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천 년을 하루 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천국을 사모하고 준비하라고 했어요. 그럼 실제적으로 어떻게 준비할까요? ‘네 보물을 여기 쌓아두지 말라. 하늘에 쌓아두라.’ 이게 천국 가는 실제적인 준비에요. 부르심을 받으면 집도 떠나고 버려야 해요. 여기 이 세상에 늘 집착해 있는 것도 문제에요.

장기려 박사는 교회 큰 건물을 봐도 사탄이 생각난다고 그랬어요. 자꾸 버리는 사람이 그렇게 되요. 그게 천국과 가깝지요.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예배당도 하나님의 영광이 느껴지지 아니하고 맘몬의 재주인 듯한 느낌이 든다. 또 우리는 세상의 권세와 지위와 명예와 사업의 번창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축하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여 살던 사람들에게 내려주신 진정한 선물인가?”    

천국신앙, 죽음도 두렵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큰 집을 보면 축복이다, 고층건물을 보면 축복이다 그러는데 장기려 박사님은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천국만 바라봤어요. 8천 명을 무료로 진료해 드렸어요. 소유는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그럴까요. 천국 때문이에요.

길선주 목사님은 계시록만 강의했어요. 오직 천국, 천국이에요. 한국교회의 아버지에요. 그래서 비판도 받았죠. 그러나 그 분은 옳았어요. 우리가 틀렸죠. 천국신앙, 천국을 사모하고 준비하는 삶은 버림과 떠남의 삶이에요. 우리의 본능과는 정반대에요.

본인이 버리셨거든요. 떠났거든요. 떠나고 버리는 것. 저도 그렇게 될 수 없어요. 없으나 소원하기 때문에, 천국은 점점 가까워지기 때문에, 천국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버려야 되기 때문에, 조금 더 나누어야 되기 때문에, 애착하던 것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좋아하던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지요.

우리 선배들, 로마시대 초대교회도 그런 천국신앙으로 살았어요, 성경의 결론과 종착역은 천국이에요. 천국신앙이에요. 예수님이 천국을 바라보라고 했어요. 지금은 천국신앙이 없어진 때가 아닌가 생각돼요.

‘인자가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그랬어요. ‘인자가 올 때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랬어요.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적인 교회에요. 부족한 것이 없어요. 서머나 교회만 죽도록 충성하면서 천국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155년 경 감독이 폴리캅이었어요. 폴리캅이 서머나에서 순교함으로써 초대교회에 가장 아름다운 제물이 돼요. 천국의 소망이 분명하면 죽음이 두렵지 않죠. 오히려 죽음을 사모하게 되죠.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처럼.

너무 병적으로 그러라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늘 극단적이 돼요. 어떨 때는 병적으로 ‘나 잡아 죽이시오.’ 그건 잘못이죠. 폴리캅이 그랬어요. ‘그렇게는 하지 말라.’ 그러나 사모할 수는 있어요.

‘나도 제물이 될 수 있겠지요. 내 죄를 조금이나마 속할 수 있는, 그래도 제물이 되면, 죄를 조금 속할 수는 있겠지요. 주님에게 갈 때 조금 덜 부끄러울 수 있겠지요.’ 그래서 천국을 사모하며 살고 있는데 여러분들도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그런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멋지게 사시다가 주님의 칭찬을 받으시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정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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