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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天問天答 70

담선(談禪)공부 모임 | 기사입력 2016/11/28 [08:08]
‘진리’는 항상 지금 여기서 증거 되는 것

통찰! 天問天答 70

‘진리’는 항상 지금 여기서 증거 되는 것

담선(談禪)공부 모임 | 입력 : 2016/11/28 [08:08]
연재 취지-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밝힌다
인간이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그러한 역경 앞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실감 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타파해 줄 -무언가-에 의지하고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아서
인류문명과 문화가 발전을 해 왔다 할지라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로 인한 대립이 극에 치달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가치보다, 이념가치보다,
사상가치보다, 종교적 가치보다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지성적 이해를 통해 무지의 실체를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침으로 해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나가고자 이 글을 연재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지성 인류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이루든지, 무엇을 믿든지, 어떠한 삶을 살든지,
그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아는 것,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은 상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식과 인간정신과 더불어
보편진리와의 거부할 수 없는 상관관계를 밝혀나가 보고자 합니다.
 
‘진리’는 항상 ‘지금 여기서’ 증거 되는 것
 
질문111: 미시(微示)에서 거시(巨示)를 넘나들며, 세상에 없는 우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간혹 하시는데, 어떤 경험이 있었으며, 어떻게 하여 알아 졌습니까?

 
 
제가 하는 이야기가, 만약 저에게 어떤 영적인 경험이 있었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축적된 앎을 쏟아내는 것이라면, 설사 아무리 논리적이고 합당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오류이자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험을 통한 앎의 축적을 위해서는 감각작용에 의존해야 하며, 그러한 감각작용은 제한적이며, 더 나아가서는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현 듯 태어나기 전에 어떤 경험을 할 수가 있으며, 불현 듯 죽어지고 나서야 어떤 체험을 할 수가 있습니까?
 
대다수의 수행자(修行者)들이 어떤 특이한 영적인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도달할 수가 있으며, 그러한 행위를 통해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의 이야기조차 그러한 연유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거듭 이야기 하지만, 단 한 번도 어떤 영적인 경험과, 그리고 영적인 경험을 통한 앎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절대적 보편 ‘나’에 대한 이야기만을 했습니다.
 
미시에서 거시까지, 무한을 지향하며 팽창하는 우주와 그 너머의 영역까지, 모든 것이
‘나’이자 ‘나의 반영’이기 때문에 경험과 체험이 필요하지 않으며, 또한 학습되고 습득된 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스스로임을 망각한 채 ‘태어난 누구이자 무엇’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육체적 감각기능을 통한 경험적 체험적 측면의 앎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질문112: 진경님의 이야기는 어렵게 들리며, 어렵다고들 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단어는 채 200자도 되지 않습니다.
 
드러난 모든 것이, 드러나게 한 ‘그것’의 반영입니다. 그리고 그 반영은 드러나게 한, 즉 ‘비춤’의 증거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는 ‘그것’으로서 ‘진리’는 항상 지금 여기서 증거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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