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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21 [07:05]
이상훈 박사의 ‘바둑으로 배우는 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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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박사의 ‘바둑으로 배우는 성경공부’
바둑으로 배우는 성경공부 18
바둑과 성경과의 유사점 몇 가지
기사입력: 2016/11/28 [08:1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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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성경과의 유사점 몇 가지
 
앞서 지적한 ‘프로기사들이나 바둑을 잘 두는 사람들은 종교를 믿지 않는 경우가 참 많다’라는 말은, 필자가 연구하고 조사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바둑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요 일반적인 상식 같은 얘기이다.
 
바둑이란 여타 게임들과 달리 한 판을 끝내놓고 나서도 처음 수부터 마지막 수까지 일일이 모두 순서에 따라 기억해내어 그 승패의 결과에 맞춰 한 수 한 수씩 호불호(好不好-좋고 나쁨)를 가려내거나 요모조모 따져서 심지어 완전히 다른 예상도까지도 그려볼 수 있는 것!
 
이토록 엄정한 검증을 바둑 둘 때마다 자주 행하기 때문에 바둑인들은 자기가 선택한 수순 결과에 대해 반성을 할 뿐이지 그 외 다른 요인들, 이를 테면 기도를 해서 득을 좀 보게 되었다든가 갑자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든가 하는 따위의 요인들을 전혀 고려치 않게 된다.
따라서 바둑인들은 경기 결과에 대해 깨끗이 승복하는 일이 몸에 배인 습관처럼 매우 익숙해져있는데, 그러나 바둑인이 무슨 일을 계기로 하여 어떤 종교를 믿게 된다면 자신이 바둑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냥 푹 빠지고 만다. 왜냐하면 항상 게임에 승복하곤 하는 자세와 더불어 정교한 바둑의 수순처럼 종교의 진리 또한 충분히 믿어볼 만하다는 확신을 나름 갖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예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두어온 바둑 게임의 내용과 재미난 기술적인 요소들을 기억하고 있는 바둑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우리네 인생사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과 이를 서로 빗대어가지고 말을 하거나 상징 요약화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포석, 정석, 승부수, 패착, 미생, 완생, 대마불사, 장고(長考) 등등 우리네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아예 일반 명사화 되어버린 ‘바둑의 말’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아, 그렇다면…….
‘바둑의 말’처럼 바둑을 종교(성경)에 자연스럽게 접목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 바둑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성경)에 보다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언젠가 필자는 바둑학과 학생들에게 강의하던 중 공개적으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혹시 바둑과 성경에는 서로 닮은 점들이 있지 않을까?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것의 예는?
 
다소 생뚱맞은 질문이었지만 머리 좋은 바둑학과 학생들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이에 적절한 답을 찾아내느라 모두들 고심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때 열띤 토론 끝에 학생들과 함께 찾아냈던 ‘바둑과 성경과의 유사점 몇 가지’를 필자는 지금 이 지면을 빌어 잠시 소개해 본다.  
 
1. 바둑판 위의 십(十)자형 교차점 -

이것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를 연상시킨다. 신도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가슴에 폭 안겨야만 하듯이 바둑돌도 십자가 모양 교차점 중앙에 똑바로 올려놓아야만 바둑판 위에서의 안전을 기할 수 있다.
 
2. 바둑의 위기십결(圍棋十訣)과 모세의 십계명(十誡命, Ten Commandments)
위기십결은 고대 중국에서 바둑을 둘 때에 심리적이나 기술적으로 검증된 방법 등을 10가지로 요약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경 출애굽기편과 신명기편에 나오는 십계명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받아왔던 지엄하신 하나님의 명령 10가지를 말한다.
내용이야 서로 딴판이지만, 그러나 항상 기억해 두어야 할 중요 사항들을 열 가지로 요약해 놓았다는 점은 서로 같다고 하겠다.
 
3. 두 눈을 내야만 산다.
바둑에서는 서로 떨어진 두 집 즉, 온전하게 두 눈을 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미생의 모양이 되어 마무리 단계에 들어와 결국 죽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자기 자신과 예수님을 함께 모실 여유 공간을 마음속에 마련해 놓지 못한다면 결국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4. 항상 준비된 자세로 살아야한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등잔 기름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때가 되자 밤길을 얼른 달려 나가 신랑을 맞이하는 현명한 다섯 처녀의 이야기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멍청하게 있다가 그만 낭패를 보고만 미련한 다섯 처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와 같이 바둑인들도 전혀 예기치 못할 상황(갑자기 중요한 바둑을 두어야만 할 경우)에 대비하여 평소 바둑 공부를 해두어야한다. 즉 항상 준비된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한다.
 
5. 바둑은 배운 기간에 따라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누가복음 30장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 이것을 바둑으로 비유해 본다면, 바둑을 남들보다 일찍 배웠다거나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바둑공부를 했다고 해서 반드시 기력(棋力-바둑실력)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비록 바둑을 남들보다 늦게 배웠다고 하더라도 좋은 지도자를 만나거나 좋은 교재를 사가지고 좀 더 요령있게 바둑 공부를 해나간다면 자기보다 훨씬 오래 전에 바둑을 배웠던 자들의 기력을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가 있다.
 
필자는, 바둑인들이 성경공부를 할 때엔 너무나 친밀하게 느껴지는 바둑판 위의 고정된 위치 명칭들을 최대한 활용해 보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가로세로 각각 19줄인 바둑판 위의 천원, 우변, 좌변, 상변, 하변 등등의 위치 명칭들은 예나 지금이나 절대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필자는 과거 바둑학과 학생들에게 기나긴 중국의 역사를 시대별로 각각 쪼개어 바둑판 위의 아홉 개 화점 위치에 그대로 올려놓은 상태로 공부하게 하여 큰 효과를 얻게 만든 경험이 있다.
( 바둑의 기술 발전이나 바둑 서적의 발행은 중국의 역사와 맞물려 시대의 흐름을 타고 꾸준히 그 명맥을 유지하며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중국의 바둑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전체 역사를 반드시 공부해야만 한다.)
 
 
중앙 화점(천원-중국의 신화시대)을 시발점(始發点)으로 하여, 화살표 방향에 따라 각 화점 마다 대표적인 시대 명칭을 적어간다면 그토록 거대하고 복잡다단해 보이는 중국의 전체 역사도 시대 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 있다.
 
바둑을 업으로 삼거나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위의 바둑판 그림에 매우 익숙해져 있으므로 이해하는 속도가 남들 보다 훨씬 빠르고 또 정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의 방식 그대로,
구약(舊約)이나 신약(新約) 성경 시대를 각각 구분지어가지고 바둑판 위의 아홉 개 화점 위에 그대로 올려놓을 수는 없을까? <바둑학 박사·바둑의 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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