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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속 눈 한송이’의 순간도 영원할 수 있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4/28 [08:17]
세월호 침몰사건과 일상

‘화로속 눈 한송이’의 순간도 영원할 수 있다

세월호 침몰사건과 일상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4/28 [08:17]
 
▶ 10년 전 TV를 집에서 철수시키길 잘했다. 신문에 실린 세월호 침몰사건 관련 사진과 기사만 봐도 마음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흐른다. 생생한 현장 TV화면을 지켜봤다면 아마도 비통과 분노, 허무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감정을 추스릴 수 없었을 것이다. 침몰된 배가 있는 진도 앞바다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희생자 가족의 막막한 심정, 수습된 시신을 확인하고 외치는 외마디 비명과 통곡소리가 활자를 통해서 느껴지고 들려오는데 TV를 통해 봤다면 깊은 정신적 충격과 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TV 철수’ 덕분이었다.

▶ 그러나 사고 이후 일상이 평시와 똑같을 수 없었다. 일상적인 일에 묻혀 지내면서도 모든 일상이 세월호와 연관지어졌다. 사고 직전 주말의 부부동반 모임에서 신나게 기획했던 환갑기념 제주여행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자 가운데 환갑여행을 떠났던 사람의 장례식이 치러졌는데 젊은 학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고 그 정도 살았으면 어린 학생들과 견주어 아쉬울 것 없는 죽음이란 생각도 들었다. 피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학생들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 이런 참사를 빚게 한 이 사회 어른으로서의 죄책감 탓인지 ‘우리는 정말 즐겁게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탄식이었다.

▶ 한주의 찌든 때를 벗고 마음을 다잡았던 최근 산행모임의 기억도 ‘세월호'에 묶여져 떠올랐다. 3시간 반동안 아차‧용마산의 꽃대궐 산책을 하며 일행은 숱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꿀맛같은 간식과 막걸리 파티도 열었었다. 그런데 뒷풀이 파장 무렵, 한 친구가 자신에게 짜릿한 깨달음을 주고 있다는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을 거론했는데 유독 그 말이 세월호 사고 이후 자꾸 되새겨지는 것이었다. 홍로일점설은 서산대사의 임종게송(臨終偈頌)과 춘성 스님의 시로 널리 회자되는 말인데 ‘’인간의 삶이, 천 가지 만 가지 생각들이 모두 붉은 화로의 한점 눈송이같다.”는 뜻이다.


붉은 화로 속에 한 송이 눈(춘성 스님)


여든일곱 살았던 일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졌다가 일어남이라
횡설수설한 모든 것이
붉은 화로 속에 한 송이 눈일세
八十七年事(팔십칠년사) 七顚八倒起(칠전팔도기)
橫說與竪說(횡설여수설)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임종 게송(臨終 偈頌)(서산대사)


천 가지 만 가지 생각들이
붉은 화로의 한 점 눈과 같네
진흙소가 물 위를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다 찢어진다
千思萬思量(천사만사량)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泥牛水上行(니우수상행) 大地虛空裂(대지허공열)


▶ 어린 학생들이나 환갑맞은 사람이나 모두 ‘화로속 눈 한 점처럼 사라지는 헛된 것‘이라며 마음을 놓아버리니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 죄책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세상사 큰 위로의 말이었다. 즐거움과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반드시 떠올려야 할 좋은 말씀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일상을 그러한 허무감으로 일관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아차‧용마산 산행 다음날 대모산 홀로산책을 하며 정상서 그곳을 스마트폰에 담아보니 오른편 롯데 신축건물과 왼편 잠실운동장 사이에 손톱 만하게 보였다. 그곳에 친구들의 많은 이야기와 즐거움이 담겼다니 신기했다. 비록 손톱만한 아차 용마산이지만 엄청난 사연과 역사가 담겨있고, 우리 일행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만끽하지 않았는가. 손톱 만한 곳에서 한점 눈송이로 있는 순간들도 소중하고, 그 순간에서 영원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학생들이 배안에서 죽음과 맞서며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순간은 영원할 것이다. 내가 60년을 살면서 그토록 절실한 사랑을 표현하고 느낀 적이 있던가. 작고 짧은 오늘 하루, 인생에서 영원할 것 같은 사랑과 보람을 찾아보자고 다짐했다.  비통과 분노, 허무함과 안타까움이 생생하게 담겨진 TV를 봐도 평범하고 차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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