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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부디스트가 아니었고 예수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신민형 | 기사입력 2015/01/13 [16:54]
“가장 종교적이자 가장 비종교적인 표현”

부처는 부디스트가 아니었고 예수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가장 종교적이자 가장 비종교적인 표현”

신민형 | 입력 : 2015/01/13 [16:54]

▲ 진보에서 시대를 반영못한 극보수의 시각이란 비난을 받은 영화 ‘국제시장’과 보수로부터 좌파의 조작된 시각이라며 폄훼된 영화 ‘변호인’. 각각 아버지 세대의 희생과 사랑, 자유와 정의에 대한 사랑을 흠뻑 느낄 수는 없는가.     © 매일종교신문

▶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통진당 헌법 재판, 신은미 종북논란과 강제출국 등에 대한 상반된 견해들이 보혁언론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이보다 더한 극단적인 발언들이 SNS에서 쏟아지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는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언사들이 난무한다. 패가 갈리고 자신의 소신과 다른 견해에는 적대감까지 드러낸다. 무함마드에 대한 모욕적인 만평이라며 파리 풍자신문에 테러까지 저지른 이슬람 지하디스트의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언제 폭발될지 모르는 반감이 내제된 듯 하다.     

▶ 지난 연말 대형교회의 문제점을 들춰낸 영화 '쿼바디스‘를 두고도 논란이 벌어졌다. 3천억원의 대형교회 건설, 백억대의 배임 사건, 신도 성추행 의혹, 담임목사 세습, 목사 전별금 문제, 돈과 권력 지향의 교회 현장들을 찾아가 한국 교회의 고질병을 고발한 것에 대해 ‘초상권 무단침해 돈벌이 영화’라는 비판과 ‘교회개혁의 시작’이라는 극찬이 엇갈렸다. 한편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자 이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 지난해 12월 19일 검찰은 교회 돈 횡령 혐의로 고발당한 오정현 목사를 불기소처분했다. 오 목사가 새 예배당 건축 및 교회 재정 관련 의혹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12월 24일 서울고등법원은 사랑의교회 회계장부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의혹이 있으니 상세한 내역을 공개해야 된다는 것이다. 사랑의교회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한 교인들에게 날마다 1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법원의 불기소처분이 나자 교회 측 교인들과 교계 언론들은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반면 사랑의교회 의혹이 제기될 때는 떠들석하던 반대측 교인들과 일반 네티즌들은 잠잠했다. 그러나 법원의 ‘의혹’ 판결이 나자 사랑의교회 재정의혹은 다시 떠들썩하게 확산되고 있다. 영화 ‘쿼바디스’ 등에 나타난 대형교회 문제점에 대한 세간의 불신이 여론의 대세(大勢)인 듯하다.     

▶ 대세에 몰려 비판을 받으면 숨 쉴 구멍이 없다. 마녀사냥은 이같이 숨구멍을 막는 것일게다. 마녀사냥하는 상대에 적개심을 갖게 된다. ‘땅콩 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동생이 ‘복수하겠다’는 메시지도 이런 심정에서 나왔을 것이다. 마땅히 비난받을 ‘갑질’이었고 근절시킬 사회악과 부조리였지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마녀사냥에 ‘지하디스트’ 같은 행동이 나올 수 밖에 없다. 

▶ 파리 테러사건을 두고 이슬람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가 규탄하고 있지만 과연 마녀사냥식을 몰고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무함마드에 대한 신성모독을 금기시하는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근본적으로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대세에 기울은 과격한 ‘표현의 자유’도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실상 서방에서 내세우는 ‘표현의 자유’가 대세, 우월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영국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글렌 그린월드는 미국 등에서 무슬림의 표현의 자유는 상대적으로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팔레스타인을 옹호하고 이스라엘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무슬림들이 많다”고 했다. 일방적인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다.     

▶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파리 테러 추모행사에 참석해 “이슬람교에 가해지는 모욕에 대해 무슬림들이 폭력 대신 ‘표현의 자유’로 응수해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바람직한 해법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모욕적으로 건드리는 ‘표현의 자유’를 서방에서 당하면 감당할 수 있을까. 지하디스트같은 근본주의자들이 기독교 등 어디에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근래 아시아 이슬람 국가에 자비를 내세우는 불교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등의 위협이 나타나지 않는가. 주류와 대세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들은 폭력적 근본주의자가 될 소지가 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자유가 강자에게는 톨레랑스(관용)이지만 약자와 아웃사이더들에겐 핍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 매일종교신문


▶ 최근 SNS에서 공감되는 글과 사진이 올려졌다. “부타는 부디스트가 아니었고 예수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무함마드는 무슬림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랑을 가르친 선생이었고 사랑은 그들의 종교였다”(사진)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를 공유하며 “사랑의 의미를 전달하는 가장 종교적이자 가장 비종교적인 표현이다. 사랑이 최상의 종교다”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그리고 전 국민 숫자보다 많은 통계속 종교인들이 떠올랐다. 내 표현은 대세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아닌게아니라 나의 코멘트에 네티즌들의 냉담함을 느꼈다. 대세에 기울어 공감을 표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사랑이 모든 종교와 이념, 생각에 우선한다’는 신념은 버릴 수 없었다. 그러한 사랑이 있다면 타인의 종교과 이념에 모욕적, 비하적, 배타적인 극단적 표현은 자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종교에서의 테러는 물론 보혁간의 심각한 갈등과 반목은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환상적인 꿈을 떠올려 보았다. 적어도 영화 ‘국제시장’이 극보수의 편협한 내용이며 ‘변호인‘이 좌파의 조작된 시각이라고 폄훼하진 않을 것이다. 국제시장에서는 아버지 세대의 희생과 사랑을, 변호인에서는 자유와 정의에 대한 사랑을 흠뻑 느끼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또한 ’회색주의자인 내안의 근본주의’가 아닌가 하는 상념도 드니 참으로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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