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신민형의 범종교 時角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3/07/24 [10:26]
무지렁이 ‘금순이 누나’의 지혜로운 기도

신민형의 범종교 時角

무지렁이 ‘금순이 누나’의 지혜로운 기도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3/07/24 [10:26]
 
모든 종교가 다 ‘하나님’과 통한다

● 55년 전 우리집 가정부였던 ‘금순이 누나’를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 서 지난 주말 마주쳤다. 열 살 시골 소녀는 숟가락 하나 줄이기 위해 '식모'란 이름으로 서울로 보내졌고 그 때부터 7순의 나이가 다 되도록 ‘가정부, 파출부’란 전문 직업인으로 살고 있다. 봉건시대 하녀처럼 야단맞으며 집안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고 ‘금순아!’라며 호령하는 나를 업고 다녔다고 한다. 이제 두 아들 모두 장성해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손자들도 태어나서 자식들이 일 나가지 말라고 하지만 여전히 평생직업을 버리지 않고 있다.


● 나 같으면 수난과 수모의 세월을 지워버리고 싶어 인연을 끊었을 법 한데 반세기 이상을 어머니는 물론 나와도 정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머니한테는 일이 생길 때마다 찾아와 대수롭지도 않은 사건들로 신나게 옛 추억을 나눈다. 어머니는 금순이 누나에게 자식들보다 더 투정부리고 편안해하신다. 우리 집에서 5-6년 있다가 평생 남의 집을 전전했는데 그 집들과도 여전히 교류를 하고 있다. 우리 형제들도 모르게 사골국 끓여 어머니를 방문하기 전날에는 예전에 일했던 집의 장님이 된 할머니를 보살피고 돌아왔다. 거동을 못하는 어머니를 번쩍 안아 휠체어에 앉혀 운동을 시킨다고 법석이다. 자식들은 이미 포기상태라 팔다리 주무르는 것이 고작이지만 금순이 누나는 ‘운동을 해야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금순이 누나 역시 구안와사로 비뚤어진 입에,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는데 하남시에서 일산까지 몇시간 걸리는 병문을 와서 말이다.


● 금순이 누나는 환갑 때까지 한글을 익히지 못했다. 어머니가 공부를 시키려했지만 배우는 것에 질색했는데 남편이 세상 떠나고 손자가 생겨나서야 한글과 셈법을 익혔다. 자신은 ‘무지렁이’지만 두 아들은 악착같이 대학교육을 시켰다. 과거에 엮어졌던 사람들의 2세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파출전문가로서의 그의 능력을 사고 있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할 수 있었고 몸이 망가지도록 돈을 챙겼다. 지금도 내 이종사촌 형과 그 자녀들이 누나의 손길에 목매달고 있다. 이젠 돈이 아니라 정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 금순이 누나는 요양병원 병상에 누워있는 어느 노인들과도 격의없는 이야기도 나눈다. 금순이 누나는 어린애같은 노인들의 말벗이 되었는가 하면 꾸지람같기도 한 충고도 한다. 9순의 옆 병상 할머니에겐 “아파도 기도해요.”라고 강요한다. 그 할머니는 가톨릭 신자인데 요즘 온 몸에 통증이 와서 기도할 기력이 없다고 한다. 요양원 들어가시기 전에는 성경책을 꾸준히 읽었던 내 어머니에게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라. 그러면 나처럼 편안해진다”고 설교한다. 자신은 관절염으로 밤새도록 잠못 이루는 통증을 앓는데 아침에 일어나 천수경,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자식들과 주변사람들을 위해 기도드리면 통증이 말끔히 사라지고 새롭게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했다.  


● 금순이 누나는 이집 저집 다니면서 그 주인에 따라 온갖 종교편력을 다한 사람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 만해도 천리교, 대순진리회, 일련정종창가학회 등을 비롯해 특이한 종교가 많다. 최근에는 개신교 교회에 다녔고 성당에도 나갔다고 한다. 어느 곳에 가든 지극정성이다. 종교야말로 누나에게는 유일한 위안이 되었고 희망이었다. 근래에는 ‘108배를 하면 몸에 좋다’고 하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절에 다니다가 독실한 불신자가 됐다. 가끔 꿈이야기도 하는데 나름대로 해몽하며 위안과 희망을 챙긴다. 이러한 종교편력 덕인지 그는 종교를 떠나 ‘기도가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졌다. 자신의 종교를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모든 종교가 다 ‘하나님과 통한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어느 성직자보다, 종교학자보다 더 의미있는 종교생활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병문을 함께 한 아내가 금순이 누나에게 점심을 같이 하자 했는데, 자신이 싸온 점심으로 어머니와 식사를 하겠다는 말에 우리 부부가 머쓱해졌다. 기도의 정성을 깨우쳤듯이 정성스런 간호와 배려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가겠다는 금순이 누나를 남겨두고 병원을 빠져 나오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이 요즘 하루 몇시간씩 공부하는 성경공부의 실천이 바로 금순이 누나의 생활 아니오? 얼마나 지혜로운 기도를 드리고 있소.”


● 자신의 종교가 유일한 선택이라고 믿는 아내의 신앙에 간섭하는 것은 내 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깨닫고 더 이상의 언급은 삼갔지만 아내도 나름대로 느낀게 있을 것이라 자위했다. 다만 내 맘속으로 금순이 누나의 신앙을 정리해보았다. ‘아마도 금순이 누나가 개신교에 계속 다녔다면 천수경 대신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열심히 외우는 것만으로도 성직자 이상의 생활실천을 할 것이다. 그리고 신앙심에는 많은 지식과 깊은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기도와 주변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우선한다는 것도 몸으로 설파할 것이다.’ (편집인)

  • 도배방지 이미지

신민형 범종교시각 많이 본 기사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