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匹夫匹婦의 수양법-큰 깨달음보다는 사소한 깨우침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09/21 [15:05]
하늘소풍길 단상5

匹夫匹婦의 수양법-큰 깨달음보다는 사소한 깨우침

하늘소풍길 단상5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09/21 [15:05]

匹夫匹婦의 수양법-큰 깨달음보다는 사소한 깨우침
 
▶“ 다 지나가리니, 걱정 근심 말고 오늘에 감사하며 살자.”
“ 어제는 지나갔고, 미래는 미지의 세계-현재(present)야 말로 귀한 선물(present)이다.”
“ 마음을 비워라. 비울수록 행복이 채워진다.”
“ 마음이 밝은가 어두운가에 따라 삶이 밝고 어두어지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 믿음 소망 사랑이 이 세상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가치다.”
 
생활이 번거롭고 미래가 불확실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만 힘겹고 불행하게 느껴지며 남의 떡이 커보이지만 실상을 들어가 보면 나에게만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은 고민이 있다. 그래서 온갖 법문과 설교, 성현들의 말씀과 격언들이 그러한 마음을 달래주는 내용으로 반복되고 있으나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새롭게 해주며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것 같다.
 
▶ 그러한 말씀을 말하고 듣고 보는 순간에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 ‘아, 그래!’ 하는 깨우침이 확 와 닿게 되는 것이다. 영원히 그 마음을 지속시킬 것 같지만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일반대중 뿐 아니라 설교 법문을 설하는 목사, 스님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웬만한 기도와 참선, 명상과 사색, 수양과 수도가 아니고서는 체득(體得)하지 못할 것이다. 나같은 필부(匹夫)의 입장에서는 감히 그 경지를 상상할 수도 없다. ‘남에게서 구하지 말고 내 안에서 구하라’, ‘사랑과 미움의 연(緣)도 끊어라’ 등의 선문답(禪問答)을 어렴풋이 짐작하긴 하겠으나 체득은 죽을 때까지 불가능하다. 몸과 마음이 세상살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     © 매일종교신문


 
 
 
 
 
 
 
 
 
 
 
 
 
 
 
 
 
 
 
▶ 그래도 그 경지를 느껴보며 세상의 시름과 걱정을 잊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나도 주말마다 대모산 하늘소풍길에서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일게다. 주말 몇시간이나마 시름과 걱정을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도, 명상, 수양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안거(安居), 피정(避靜), 백일기도에 드는 기분이다. 반복하다보면 해탈(解脫)의 경지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나름의 내공(內攻)이 쌓일 것이란 기대이다. 
 
▶ 순간적인 깨달음보다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어느 정도의 내공이 필부필부 (匹夫匹婦)에겐 더욱 절실한 것 같다. 깨달음과 해탈을 이룬 초연(超然)한 삶은 이룰 수  없지만 초연함을 추구하는 과정에 쌓인 내공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괴롭히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 마음을 비우는 하늘소풍길 산책에서 내려오자마자 곧 세상사의 번잡함과 어려움에 마주치면 세속의 고민과 욕심, 짜증이 다시 채워진다. 그러나 그 고민과 짜증에 대한 태도가 이전과는 좀 달라졌음을 느끼게 된다. 마음은 크게 비우지 못했지만 사소한 고집은 버리게 된다. 우선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내탓’을 하게 됨으로써 타인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이 사라진다. 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함으로써 관용과 미안함, 양보심도 생긴다. 자연스럽게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와 애정이 싹트게 마련이다. 큰 깨달음 대신 조그만 깨우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늘소풍길 산책의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 지난 주 산책 후엔 내 블로그의 제목을 바꿨다. ‘예수 믿으면 천당, 부처 믿으면 극락’이라는 간판을 내렸다. 아내가 그렇게도 못마땅해 하던 제목이었다. 내 자랑스런 신조라며 6년동안 고수해 오던 것이었으나 그런 직설적인 제목을 단 내 잠재의식 속엔 아내의 종교생활에 대한 반감과 반항심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 커다란 믿음의 틀에서 사랑을 강조해온 내가 사소한 것에서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생겼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고 배려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큰 사랑을 표방할 수 있겠냐는 자책이었다. 고심하다 새로 만든 제목은 ‘사랑과 소망-모든 믿음의 가치’이다.
 
뜬구름잡는 진부한 말이지만 그 이상의 평범하고 무난한 제목을 찾을 수 없었다. 아내의 종교도 존중하며 내 가치관도 간직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했다. 내친 김에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았던 ‘포대화상’을 아내와의 숲속 기념사진으로 바꿨다. 슬쩍 아내에게 엿볼 기회를 주었다. 아내의 화색 띤 모습에 뒤늦게나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세속의 번민이나 혼란함도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가까운 사람, 사소한 것에 대한 실천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거창한 교리와 소명의식, 크나큰 사명감과 책임의식이 자칫 교조주의, 근본주의로 치우치게 하여 세상의 반목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깊은 신앙과 교리없이 형성된 나의 하찮은 신조도 교조적으로 변질하여 배타적이고 직설적인 것이 되었는데 오랜 역사와 조직으로 굳게 무장된 신앙과 신념은 어떠하겠는가. 우선 나부터, 사소한 것에서부터 교조주의, 근본주의를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깨우침이 생겼다.
 
가까운 사람, 사소한 것에 대한 사랑부터 실천해 그것에서 소중함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때 거창하고 커다란 사랑에 다가설 수 있다는 ‘匹夫匹婦의 수양법’인 셈이다. 내 주말의 숲속 하늘소풍은 안거(安居), 피정(避靜), 백일기도처럼 계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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