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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공원 수목장’ 소풍과 기도문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0/17 [11:48]
하늘소풍길 斷想 6

‘영락공원 수목장’ 소풍과 기도문

하늘소풍길 斷想 6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0/17 [11:48]
 
▲     © 매일종교신문
▶“아버지, 어머니. 오늘은 동네 산에 ‘나홀로 소풍’을 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두분을 하늘나라로 모신 이곳 영락공원 수목장으로 진짜 ‘하늘소풍’을 왔습니다.
 
병고(病苦)를 벗어나 자유롭고 편한 모습으로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뵈니 간병, 병문하던 때에는 전혀 못 느꼈던 소풍기분입니다.
 
지난 봄 어머니의 유해를 모신 단풍나무가 파란 가을 하늘아래 붉은 기운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아내가 꽃가게에 들러 묶어 바치는 국화꽃이 단풍과 어울려 눈부십니다. 어머니가 지난해 가을, 휠체어에 의지해 마지막 세상구경을 하던 눈으로 국화꽃들과 단풍을 보니 오묘하고 아름답기가 새삼 그지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의 소풍길을 만들어주셨듯 당신의 손자들도 우리 부부에게 소풍올 수 있도록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아름답게 지내겠습니다. 
가을이 가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운악산 현등사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도 소풍가겠습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추모하겠습니다. 그리고 장모가 계신 증평 천주교 묘지에도 소풍을 떠나 우선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음미하겠습니다. 다음엔 애들 모두 데리고 소풍오겠습니다.”
 
▶지난 주말, 영락공원 수목장에서 올린 기도문이다. 아내가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찬송가를 틀어놓은 가운데 나는 내 방식의 기도를 올렸다. 장인, 장모를 위한 천주교 묘지에서의 기도는 아내가 주재할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운악산 현등사에서는 두분의 생전 방식대로 제삿상을 차리고 큰 절을 올릴 것이다. 소줏잔을 올리고 산신께도 예를 갖출 것이다. 여행을 할 때 여행지와 현지인의 풍속에 맞춰 음식을 취하고 인사하듯 그분들의 취향대로 소풍길을 즐길 예정이다. 여행과 소풍의 맛은 그런 자세에 있지 않은가. 나도 즐겁고 상대도 부담없는 격식과 내용이니 말이다.
 
▶어떤 종교적 방식이든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나의 편안함을 위해 하나님과 조상님께 간구하는 기도일 수도 있다. 부모를 비롯한 조상들의 평안한 영혼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 전지전능한 존재의 의미를 명상하고 그에 귀의하는 기도도 있을 수 있다. 아마도 이 모든 기도가 온갖 종교가 가진 기도의 속성일 것이다. 그리고 이 기도들은 자기 자신의 종교와 삶의 의미를 규정하고, 자신을 다스리며 지배하는 기도가 된다. 그래서 어느 종교든 기도에는 위안와 용기, 정성과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락공원 수목장 소풍을 가기 전 휴일(한글날)의 ‘나홀로 하늘소풍길’에서도 나는 그런 기도를 했다. 60대 초반의 등산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으면서다.
 
“요즘 대학생들이 설문조사한 바로는 아버지의 희망수명이 63세라네.”라는 막걸리 한 잔 걸친 목소리였는데 그 농담 속에는 늙어감과 요즘 세태에 대한 한탄이 배여 있었다.
 
인간의 수명이 기계나 식품처럼 유효기간이 정해져 아무런 원망이나 고통없이 자연스럽게 폐기처분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경제적 능력이 사라져 생활고와 병고에 직면했을 때 위안와 용기, 힘이 될 수 있는 기도는 무엇일까.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고 자녀들에 짐이 되는 지경이 되었을 때는 어찌 하겠는가. 젊은이들의 현실적 의식과 노년의 병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기도는 무엇일까.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생멸(生滅)의 순환(循環),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주십시오. 지난 봄 연푸른 새싹이 이 가을의 낙엽으로 변하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병고와 죽음을 자연의 생멸순환처럼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부모의 간병과 병문이 힘겨웠지만 그 때문에 사랑과 아쉬움이 더해지듯이 우리의 아픔과 누추함도, 짓밟혀 볼품없는 낙엽들이 산 속의 자양분이 되듯이 훗날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길 기도합니다.”
 
▶마침 이 기도의 날에는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입자(Higgs boson)의 존재를 예측한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 등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소식이 전해졌다. 힉스입자는 137억 년 전 무한대의 에너지로 우주가 대폭발(빅뱅)할 때 순식간에 태어났다 사라져 버린 입자이다. 우주 창조의 시초인 것이다.
1964년 그 존재를 예견했는데 그동안 입증할 수 없었다가 전세계 물리학자들이 스위스핵물리학연구소(CERN)에 설치된 강입자가속기를 가동시켜 이 안에서 입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거듭한 결과 지난 해 7월 힉스입자의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반세기만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137억년의 나이테가 쌓여 우리 인간과 종교가 형성된 것이며 우리의 삶과 생명은 그 안에서 순환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해야 몇만 년에 걸친 인류와 몇천 년 된 종교의 과정을 뛰어넘는 영성이 존재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우리의 진화된 삶과 종교 역시 소중하게 보였다. 그래서 비록 희노애락애오욕의 63년 삶이 주어진다 해도 그저 소풍나온 것이 감사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기도를 하니 위안과 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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