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勸酒歌와 개똥철학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1/12 [16:25]
범종교시각●하늘소풍길 斷想 7

勸酒歌와 개똥철학

범종교시각●하늘소풍길 斷想 7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1/12 [16:25]
 
▲ 숲속 하늘소풍길의 사계.     © 매일종교신문


 
 
 
 
 
 
 
 
 
 
 
 
 
 
 
 
 
 
▶봄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부터 숲길산책을 하며 단상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겨울 기운이 다가 왔다. 헐벗은 나무에 연두빛 새순이 돋았다가 하늘을 가리는 녹음이 우거지더니 단풍 물들다 떨어지고 헐벗은 나무로 되돌아가고 있다. 지난 봄 여름 가을의 마음을 위로하며 풍성하게 해주었던 하늘소풍길이었기에 사라져가는 가을단풍과 낙엽이 더더욱 아쉬웠다. 정철의 권주가(勸酒歌)가 불현듯 떠올랐다.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술잔 세며 한없이 먹세그려
 
죽은 후엔 거적에 꽁꽁 묶여 지게 위에 실려가나,
만인이 울며 따르는 고운 상여 타고 가나 (매한가지)
 
억새풀, 속새풀 우거진 숲에 한번 가면
그 누가 한잔 먹자 하겠는가?
무덤 위에 원숭이 놀러와 휘파람불 때
뉘우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 가을을 보내며 허무주의에 빠진 정철의 권주가를 읊으니 오히려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듯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짧막한 단상을 올렸다.
 
“가을엔 정철의 권주가를 안주삼아 술 한잔 기울이는 것도 호강이다. 올 한해 상사(喪事), 혼사(婚事)에 수술 세차례 치르며 기력이 쇄진했다가 조금 회복돼니 술 생각이 되살아난다. 허무를 느낄만한 건강이 생기니 행복이다. 건강이 없으면 허무도 못 느낀다. 삶의 번민과 번잡함, 누추함이 심하게 느껴져도 허무에 흠뻑 젖어들어 오히려 허무를 탈피하게 되는 듯 하니 호사스런 허무주의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삶의 고통과 근심 걱정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이 가을 진하게 허무를 들여다보며 술잔 기울어야겠다. 삶의 괴로움이 너무 깊어도 허무를 느낄 수 없다. 적절한 삶의 번뇌를 허무 속 술잔으로 달랠 수 있으니 정말 호강하는 거다.”  
 
▶ 이에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친구가 장문의 댓글을 달았다. 자신은 허무감을 느낀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진정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고 헤매며 내 심령의 만족을 얻지 못하다가 가장 아름다운 어떤 분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이 사랑이란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라고 했다. 그는 관련 성경귀절들을 인용하며 “친구가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사랑하는 친구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술이 아닌 진짜 주님을 통해서 허무함을 극복하게!”라며 걱정해주었다. 신앙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마음이라고도 했다. 
 
▶ 나는 ‘나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전해져 온다’며 '목사님 기도로서, 무엇보다 친구로서의 충고가 고맙다'고 답했다. 그러나 내심 한편에서 반박심리가 있었던 듯하다. 그냥 넘어가도 될 충고에 직설적인 댓글로 대꾸했다.
 
“목사님, 친구로서 생각하는 만큼 심각하게 고뇌하지 않으니 걱정 마시게. 기독교, 불교, 이슬람, 무속, 힌두교 등의 성직자들이 다 나름대로 최고의 진리로서 중생들의 고통과 번뇌, 허무를 근원적으로 해소해주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네. 그러나 어찌보면 그들보다 시와 문학 등의 예술, 몰두하는 일로서 구원받고 위로받는 사람들이 더 의연한 것을 느끼네. 물론 올바른 신앙심으로 대단히 존경스러운 각 종교 성직자들이 계시네. 그리고 그들을 보면 모든 진리가 하나로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하나님 혹은 사랑의 존재를 믿는 한 고뇌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란 걸 결국 깨닫게 되는게 모든 인간이라고 생각하네.”
 
▶ 성직자로서 점잖게 설교한 것에 이런 반박을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는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만 진정으로 그의 충정(忠情)을 이해해주자고 다짐했다. 나도 하늘소풍길 단상을 쓰면서 내 충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 아닌가. 나부터 거부감주지 않고 조심스럽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하늘소풍길 단상’은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 숲속 쉼터의 가을풍경과 눈꽃길.     © 매일종교신문
▶ “가을이 가는 것, 그리고 자연과 사람에게 아쉽고 미안한 마음도 갖지 말자. 낙엽이 진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겨울 눈꽃 산책길도 가을 단풍길 만큼이나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게 되어있다. 우리의 삶도 깊은 사랑, 연민을 간직하는 한 자연과 같이 영원히 순환하리라 믿는다. 사랑 중에 가장 강한 사랑이 아쉬움과 안타까움. 미안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연민은 아닐까. 이 세상 살면서 연민의 정을 간직하게 됨이 오히려 영원한 사랑을 키워주는 것 같다. 연민의 정이 쌓인 아내, 부모, 친구, 주변사람과 자연, 동물, 사물들에 희생, 자비, 사랑을 아끼지 않을 수 있도록 묵묵히 노력하자.”
 
올 한해 하늘소풍길 단상의 결론이다. 이 역시 내 생각에만 몰입한 ‘개똥철학’일런지 모르지만 ‘세상에 좋은 게 좋은 거’란 개똥철학을 또 다시 반복하고 싶다.
(‘하늘소풍길 단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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