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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의례와 관혼상제, 그리고 종교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2/06 [10:26]
범종교시각

통과의례와 관혼상제, 그리고 종교

범종교시각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2/06 [10:26]
 
▲ 장례식이 정해진 날이 없듯이 이젠 결혼성수기가 따로 없는 것 같다. 겨울철인데도 예식장이 붐빈다. 결혼적령기의 아들은 12월 한달동안 10군데의 결혼식을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세계는 온통 결혼과 관련한 일들이 점령하고 있다. 6개월 뒤의 결혼식을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얼마나 복잡한 심정이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혼례는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通過儀禮)임에 틀림없다.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한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 등의 번거로운 의식이 이제는 생략돼 편할 듯 하지만 신혼 보금자리와 예식장 마련 등 오히려 더 부담스럽고 복잡한 문제들에 시달리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어서 안타깝다.


사주로 결정하는 결혼택일(結婚擇日)이 아니라 사내 예식장 추첨에 의해 결정되는 택일이고몇 번째 추첨에서 떨어졌으니 사주팔자 택일과정보다 더 힘들 것이다. 그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힘든 일이 혼사라 생각할 것이다. 나도 30년 전에 그랬으니까.


▲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아들에 비해 많은 예식은 아니지만 나 역시 혼사를 치루는 친구들이 많아져 주말과 주일을 온전히 보내기 힘들다. 게다가 부모상을 많이 치룰 나이인지라 혼사만큼 문상가는 횟수도 잦아졌다. 혼례와 장례를 동시에 치루는 친구가 생겼는가 하면 결혼식장에서 축하해주고 바로 장례식장에 조문하는 상황도 빈번해졌다.


그러다보니 나에겐 아들처럼, 그리고 30년 전 나처럼 혼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인생의 통과의례를 아들보다 많이 거쳤으며 다양한 통과의례를 경험하는 가운데 의례 자체가 실감나지 않는 단순한 형식에 그치기도 한다. 그냥 모든 것이 세상살이의 한 과정이라고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관성이 생긴 것이다.


▲ 지난 토요일 결혼식장에서 늦은 오후 점심 겸 저녁을 끝내고 몇몇 친구와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예식장에서 한잔 한 흥취가 장례식장에 가면서도 이어졌다. 상사(喪事)를 겪지 않았을 때에는 장례식장에 가기 전에 우선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혹 그럴 여건이 아니더라도 마음과 표정에 애도의 뜻을 나타내는 예의를 지켰었다.


그러나 이제는 빈소에서 절을 하고 상주와 맞절하는 시간 외에는 내 평소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표출하게 된다. 그만큼 내가 관혼상제의 의미에 무감각해졌으며 세상이 그런 가벼운 분위기를 허용하는 풍조가 된 것이다. 그래서 혼사후 친구들과 문상가는 택시안은 즐거웠다.


“우리가 결혼마치고 신혼여행 떠난게 바로 어제같은데 우리 애들이 가고 있네. 이제 그놈들도 30년이 지나가면 자기 애들 예식장에 참석해 우리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겠지. 그리고 히히덕거리며 우리들의 장례식에 조문을 오겠지?”


인생무상, 세월무상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내뱉고 나니 무상(無常) 자체가 모든 친구가 공감하는 일상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내 아들도 나와 내 친구들의 장례식에 문상할 때가 되면, 인생의 통과의례와 많은 관혼상제를 경험한 뒤의 인생의 관조가 생겨 우리의 택시 안 대화를 똑같이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 예식장, 장례식장을 한꺼번에 다녀온 주말을 지나자마자 나는 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복막염 수술을 하고 일주일 동안 입원했다. 몇몇 친구들이 문병을 왔다. 먼저 온 친구들이 병원 근처 술집에 자리를 잡았고 조금 후 문병 온 친구도 합류해 즐거운 술좌석이 되었나보다.


병원 창문밖으로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불현듯  친구들이 문병 온 것이 아니라 내 문상을 왔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친구들이 모여 잠시 슬퍼하다가 금방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즐겁게 술 한잔 나누는 있는 나의 장례식장이 떠 올랐다. 내 자신이 남의 장례식장에 문상하는 것을 보듯 나의 장례식장에 온 친구들을 바라보니 내 죽음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되는 것이었다.


그날 밤 퇴근후 문병 온 아들의 모습이 수척해 보였다. 그에게 이야기했다. “결혼준비 힘든 거 내색 안해도 잘 안다. 자네 고충으로만 생각 말고 자네가 12월에 찾아다니는 10명의 신혼부부들을 보듯이 자네를 봐라. 다들 역경이 있지만 즐겁고 희망에 넘치지 않는가. 그게 바로 자네의 모습과 삶의 자세가 될거네.”


▲ 일생 중에는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치러야하고 또 의미를 부여할만한 중요한 의례가 있는데 그것을 서양에서는 통과의례라 한다. 우리의 문화에서는 관혼상제라 하여 가장 중요한 인생의 의례로 꼽는다. 관혼상제를 통해 사람의 일생,  삶과 죽음의 의미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가 원래 관혼상제만 관여해도 종교의 모든 역할을 다한다고 본다. 나는 아들에게 마음 속으로 “엄마처럼 깊은 신앙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통과의례를 치르면서 배우고 깨닫는 것도 자연스런 종교적 자세이니 자네는 지금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걸세”라고 말하고 있었다. (2012 년 12월의 단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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