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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오만, 당당함과 ‘자뻑’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2/30 [15:13]
일상 속 종교이야기

겸손과 오만, 당당함과 ‘자뻑’

일상 속 종교이야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2/30 [15:13]
 

▲ 아내는 ‘예수를 닮은 삶’을 추구한다. 목사님들이 즐겨 설교하고 강조하는 성경말씀에 영향을 받았을 게다. 예수의 사랑과 지혜, 희생이 지고(至高)의 목표다.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도 대준다는 의미를 깊이 새기려고 노력한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니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일만이 천국에 간다고 곧이 곧대로 믿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일면 천사같이 고운 마음씨라 내가 하나님처럼 대접받으며 살았다고 감사하면서도 30여년 함께 생활하면서 때론 답답하기까지 했다.


양처(良妻)는 될지언정 현명한 아내이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융통성과 넉살, 억척스러움이 가미된 현모(賢母)의 처신을 내심 바랐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는 철칙으로 평생 손해만 보고 사는 것 같은 아내가 어리석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한게 결국 내가 만들어놓은 환경 탓이지 아내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근래에 들어서다. 내가 욕심이 많았던 거였다. 내가 진정 아내를 아끼고 배려한다면 아내의 소신을 평생 간직하도록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할텐데 그러진 못하고 내 신념과 편함을 위해서만 아내의 변절과 희생을 바랐던 것이다. 30여년 동반자로서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 그렇다고 내 신념이 아내와 같아졌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내나 목사들이 ‘예수를 닮은 삶’을 추구하지만 자신이나 자신의 애들이 절대 ‘예수같은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 누가 철저한 자기 부정의 사랑으로서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의 형벌을 감수하길 바라겠는가? 자신은 몰라도 자식에게는 절대 그런 고난의 삶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지만 운동회에서 자식과 달리기하는 경쟁자가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아들의 승리에 만세를 부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입시와 취업전쟁에서 이웃의 자식들이 눈물을 흘려야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된다. 왼쪽 뺨을 맞으면 재빨리 반격하거나 피하길 원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킬 정도의 금력과 권력을 갖춰야 한다. 남에게 이용만 당하는 어리숙하고 답답한 처세는 용납못한다. 신앙으로 고난한 삶의 위로를 받길 바라지만 고난 이전에 세파(世波)를 헤쳐나가는 능력을 기르길 더 간절히 요구한다. 


▲ 나는 내 아들 딸에게 ‘겸손하되 당당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 생활자세이자 신념이다. 처세법인 동시에 수양법이다. 겸손은 상대방을 존중해 주며 다툼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나의 인간관계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당당함은 때론 능력과 지혜가 없어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내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키워준다. 석가가 태어났을 때 외쳤다고 하는 탄생게(誕生偈) 중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은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당당함의 원천이 된다. 물론 내가 자식들에게 원하는 것은 실력과 지혜로써 당당함을 갖추고 그를 기반으로 한 겸손한 처신을 하라는 의미가 강하다.


▲ 아내는 겸손과 당당함은 서로 배치되는 행동이라고 믿는다. 당당함은 삶의 중심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 대접받길 원하기 마련이며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된다. 겸손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 영원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당당함보다는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나의 자식들에 대한 충고에 아내는 ‘오만함’이라 여겼던 것 같다.


요즘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하면 아내는 ‘자뻑’이 심하다며 웃는다.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어 정신을 못차린다는 뜻일게다. 그러나 아내의 웃음에서 나의 자뻑이 자식들에겐 요긴한 충고라는 수긍이 담겨 있음을 본다.


예수 닮은 삶을 추구하지만 자식들이 예수같은 삶을 살기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다소 아내의 신앙을 지켜주는 마음자세를 가지게 됐듯이 아내는 가족의 사랑을 통해서 나의 신념에 일면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내가 말하는 ‘천하천하유아독존’이 ‘천하에 나만큼 잘난 사람은 없다.’는 오만과 자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또한 나는 나대로 아내의 신앙이 곧이곧대로의 오만한 신앙과 지나친 낮춤이 아님을 새삼 발견함으로써 더 깊이 아내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 새해를 앞두고 가족들에게 대화방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겸손하되 당당하자. 오만이 내재된 겸손, 자뻑이 심한 당당함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존귀함을 새기는 가운데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진정한 겸손을 갖추자.”


그리고 내 자신과 우리 사회에 던질 메모도 준비했다. “내 건강에 오만하지 말고 겸손하기. 지난해말 나만은 술담배, 밤샘도 견딘다는 자뻑과 오만에 두 번 수술했다./ 다른 신념에 대한 이해과 상생(相生)정신 추구. 지난 대선에서 민주화세력이 산업화세력을 밀어낸다는 자뻑과 오만이 패배를 안겼다./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는 오만 버리기. 모든 종교의 가치가 각자 최고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가정과 세상사회의 갈등과 전쟁이 생겼다.”


이를 내 SNS에 올릴 생각을 하지만 이런 행동 역시 자뻑과 오만이 아닐까해 망설여진다. ‘더 겸손해지자!, 당당하게 표현하자!’ 사이의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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