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다종교 사회의 신앙갈등과 과제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3/18 [17:52]
나는 왜 시시콜콜한 일상 속 종교이야기를 풀어놓는가

다종교 사회의 신앙갈등과 과제

나는 왜 시시콜콜한 일상 속 종교이야기를 풀어놓는가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3/18 [17:52]
 
나는 아직 열렬히 믿는 종교가 없다. 그러나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힘겨운 현실세계에서의 구원을 하염없이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질적 구원도 믿음을 통해 추구하지만 그 여건이 여의치 않을 때 특히 정신적 구원을 갈구한다.

종교지식과 구도정신이 결여된 나는 그래서 더욱 목마르게 정신적 구원을 기다린다.
잡동사니처럼 쌓아놓은 ‘삶의 지혜’,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의 가르침은 내 목마름을 해소시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든다.

강렬한 구도정신이 깊은 종교지식을 쌓게 만들고, 심오한 종교지식은 투철한 신앙심에 큰 힘이 된다. 그러나 다종교사회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나를 비롯해 대부분 뚜렷한 정신적 지주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잡다한 종교의 나름대로 훌륭한 교훈을 떠올리며 순간적 위안을 받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종교에 귀의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셈이다.

가끔 내가 마호멧을 믿는 중동국가나 유대교의 이스라엘 혹은 불교국가 네팔, 힌두교 인도 등 특정국가에 태어나 아무런 고민없이 종교를 선택했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를 상상해본다.

불교, 카톨릭, 개신교(장로회, 침례회, 루터교, 순복음교회, 여호와의 증인, 통일교 등), 유교, 천도교, 대종교, 원불교, 증산도, 그외 각종 종교들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은 종교인의 숫자가 총인구를 넘어선다고 한다. 무종교인 50%를 감안할 때 각 종교가 신자수를 부풀렸거나 중복 종교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가족종교란엔 아내를 따라 기독교를 기입한다. 때론 불교인 혹은 무종교임을 스스럼없이 말한다. 유일신을 믿어야 하는 기독교인이 조상신에 의지하고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해도 전혀 거리낌 없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사는 나는 정말 복받은 사람인가, 불행한 사람인가.
 
<종교적 갈등과 고민없는 곳에 성숙한 신앙심도 없다>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나와 비슷하다고 본다. 유별난 신앙인이 있긴 하지만 타종교에 대한 배타심이 비교적 적다. 불상과 십자가 훼손 등이 사회문제 가 될 정도이지 테러나 종교전쟁 등 커다란 불상사가 없다. 오히려 초교파협의체 등의 활동이 부각되고 있다.

4개종교 여성수도자들의 모임인 삼소회(불교의 비구니, 가톨릭과 성공회의 수녀, 원불교의 교무)가 세계 각 성지를 함께 순례해 세상 종교인들을 감동시켰다.
타종교에 대한 이같은 배려가 평화적이고 종교인다운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갈등과 고민없는 곳에 성숙한 신앙심도 없다.

종교분쟁과 갈등, 배척이 더욱 열렬히 자기종교에 대한 신념과 지식을 쌓게 하고 진정한 신앙인이 되게 만든다. 나는 신앙적 갈등을 겪지 못했고 종교지식도 애써 얻으려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듯 뚜렷한 종교관없이 시대조류에 따라 믿음생활을 영위해왔다.
종교를 논할 자격과 실력이 없지만 과감하게 나의 종교이야기를 쓰고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서 찾을 수 있다.

‘매일종교신문’의 여타지면이 전문적인 내용으로 채워지지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의 종교이야기도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신변잡기식 전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가벼움이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의 종교와 삶, 구원문제를 생각하게끔 할 것이다. 누군가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종교인이 있어 그 뜻을 펼치려 한다면 나와 같은 중생의 얄팍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표본이 되고자 중구난방식 신앙고백을 전개하고 있다.


<내 주변 종교이야기는 대한민국 종교사의 축소판
-이를 정리하며 구도의 길을 찾는다>


내 증조할머니는 무속신앙에서 물직적, 정신적 구원을 찾으셨다.
유교적 전통을 중요시하셨던 할아버지는 고명한 주지스님과 교유하며 삶의 위안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한국전쟁 그리고 가난에 부대끼며 물질적 구원만을 추구하듯 세상을 사셨다. 뒤늦게 기독교 신앙으로 인생을 정리하셨지만 평생 당신 할머니, 아버지의 세계관, 종교관을 벗어나지 못하셨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따라 성당에 다닌 적이 있다. 성탄절과 부활절에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교회에 가서 성탄공연을 보고 계란선물도 받았다.

일년에 한번 할아버지 산소에 갈 때면 아예 산사에 몇일간 머무르며 할아버지 친구인 스님의 환대를 받았다. 절 분위기가 너무 좋아 대학시절엔 스스로 불교인이라고 자처했다.

논산훈련소에서 고된 훈련을 받을 때는 군대 교회에 가서 기도하며 위안을 받았다. 그때 예수님은 내마음속에 살아 계셨다. 그러나 직장생활에 얽매이면서 종교와는 점점 멀어졌다. 종교생활은 크리스찬인 아내의 몫이었다.

어느덧 내 나이 60을 바라보고 있고 새삼 구원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떻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지...
마흔에 갖은 유혹에 휘들리며 살다가 오십이 되어 천명을 깨닫기는 커녕 삶의 의미를 헤아리는데 뜻을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와 내 주변의 시시콜콜한 종교관련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다. 나의 떠돌이식 신앙편력, 내 가족의 종교사, 내가 만난 스님과 목사님 이야기, 시시콜콜한 종교관련 잡담을 비롯해 내 나름대로의 종교적 명상(신앙심깊은 사람에겐 유치한 상념이겠지만 한국인 표준을 들여다 본다는 입장에서 양해해주시길)을 토로해놓겠다.

누구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짊어지고 산다. 그 고통스런 삶을 구원받기 위해 종국에는 믿음을 갖게 된다. 무언가를 믿지 않고서는 삶과 죽음을 맞이하기가 버겁다.

내 평범한 종교이야기가 한국평균인의 신앙상태를 점검하게 하는 한편 구도자 길에 들어서는 초입에서 내 스스로를 정립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주필)

  • 도배방지 이미지

신민형 범종교시각 많이 본 기사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