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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걱정거리였던 종교가 모처럼 종교의 본 역할을 찾았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12/15 [09:37]
언론의 ‘정치·사회 갈등 부추김’을 반성케 한 종교의 중도·화쟁정신

세상 걱정거리였던 종교가 모처럼 종교의 본 역할을 찾았다

언론의 ‘정치·사회 갈등 부추김’을 반성케 한 종교의 중도·화쟁정신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12/15 [09:37]
언론의 ‘정치·사회 갈등 부추김’을 반성케 한 종교의 중도·화쟁정신
-종교 자체의 갈등과 분열 해소할 때 더 큰 정치·사회적 역량 발휘한다
 
종교간 갈등과 분열, 종교내 금권·권력 다툼으로 세상 사람들의 걱정거리였던 종교가 모처럼 종교의 본 역할을 찾아 세상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덜어주는 일을 해냈다. 지난 11월 14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직후인 16일부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한 24일 동안의 과정에서 종교계가 보여준 자세와 행동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여·야, 정부·반정부, 보·혁, 좌·우, 기업·노동자로 분열되어 극한 대립의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종교계의 중도·화쟁정신은 빛났다.
 
우선 과잉진압과 폭력시위의 재발이 우려됐던 12월 5일의 제2차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불교, 개신교, 성공회, 원불교, 천도교 등 5개 종단 성직자와 신도로 구성된 종교인평화연대가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열고 평화 집회를 염원했는데 그 영향력과 파장은 컸다. 평화 집회 개최를 중재해 온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폭력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며 제안한 이날 기도회에서 이들은 호소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이를 앞세운 배제와 다툼, 분열과 갈등의 논리는 이제 지양돼야 한다”며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ㆍ존중할 때 다시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당부했으며 평화시위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10일 한 위원장의 체포를 놓고 민노총과 경찰의 위촉즉발 상황에서 조계종이 고민 끝에 내놓은 화쟁정신의 해법은 언론의 표현대로 ‘신의 한 수’였다. 과잉진압과 폭력시위의 악순환으로 번져갈 사태에서 조계종은 정부의 법집행과 한 위원장의 자진 출두 명분을 살려주었다. 종교와 공권력의 갈등으로 번질 조계사 성역에서의 경찰의 강제 집행도 피할 수 있었다.
 
▲ 불교, 개신교, 성공회, 원불교, 천도교 등 5개 종단 성직자와 신도로 구성된 종교인평화연대가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개최한 ‘평화의 꽃길 기도회’     © 포커스뉴스
 
* 전 사회에서 필요한 화쟁정신-"네가 다 옳을 수 있으며 내가 다 그를 수 있다“
- 화쟁정신 강조해 사회통합 이뤄야 할 언론이 앞장서 진영논리 품어내

 
‘평화시위’와 ‘한 위원장의 자진 출두’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중재의 노력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화쟁정신이다. 다양한 종파와 이론적 대립을 소통시키고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려는 불교 사상으로 신라의 원효대사가 정립한 한국 불교의 가장 특징적인 사상인 화쟁사상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화(和)’는 화해(和解)ㆍ화합(和合)ㆍ조화(調和)를, ‘쟁(諍)’은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는 말이나 학설이나 이론을 말한다. 즉 화쟁(和諍)은 서로 대립하는 다양한 학설과 이론의 화해와 화합을 뜻한다. 나만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상대는 절대적으로 그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여·야, 보·혁, 좌·우의 진영다툼을 "네가 다 옳을 수 있으며 내가 다 그를 수 있다“는 상호간 입장의 이해와 배려로 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현실은 더욱 진영 간 불신의 벽이 높아졌고 화쟁정신을 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야의 대립, 공천갈등을 둘러싼 여당내의 불신, 안철수 탈당 등 야당내의 당권·대권 욕심, 대기업과 노동자간의 간극 등 상대에 조금이라도 있을 진정성은 도외시한다.
 
게다가 화쟁정신을 강조해 사회통합 이뤄야 할 언론이 앞장서 진영간 골깊은 대립논리를 증폭시키는 상황이다. 평화시위를 이끌어낸 지난 5일에도 보수진영은 “국민들 여론의 압박이 평화 시위 이끌어 냈다”, 진보진영은 “공권력 과잉진압이 없으면 폭력시위도 없다”는 아전인수식 해석과 평가를 했다. 평화시위 성사를 평가해 평화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화시위를 통해 또 다른 갈등을 조장하는 데에 이골이 난 것이다. 보혁언론이 더욱 이를 부추겼다.
 
한 위원장 체포관련 각 진영 언론의 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수언론은 ‘끝까지 법(法) 조롱한 한상균’, ‘종교 뒤에 숨은 26일 한상균의 착각', ’한상균, 고성 지르며 정부 비판...55분간 출두 세리머니' 등 한 위원장과 민노총의 불법파업 대한 비판기사를 앞세웠다. 화쟁위의 노력에 대한 평가보다는 진영 편에 서서 종교계가 불법(不法)을 감싸면 안된다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반면 진보 언론은 한위원장의 발언내용을 심도있게 전달하는 한편 노-정 충돌, 노동 5법 강행 처리 우려를 부각시켰다. 또한 도법 화쟁위원장의 역할을 비중있게 다뤄 진보진영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각각 진영논리에 매몰된 보혁언론에 독자들도 편을 가르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근래 중도정론지를 표방한 한국일보가 큰 틀에서 화쟁정신을 살려주는 논조를 보여주는 듯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5일 평화시위에 대해서는 ‘민심과 여론을 시위대와 공권력이 모두 의식한 결과’라는 두 입장을 포용하는 객관적 평가를 해놓았으며 10일 한상균 체포 관련기사에서는 ‘인내·타협이 충돌 막았다’며 조계종의 중재역할을 높이 샀다. "네가 다 옳을 수 있으며 내가 다 그를 수 있다“는 입장에서 한 편을 매도하거나 추켜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사회갈등 해소의 새 이정표로 평가해 놓음으로써 중도정론지의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민노총의 역사와 투쟁이유’에 관련한 보혁언론의 대조적인 기사도 각각의 진영논리를 무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진보언론은 정부의 불통·노동정책 앞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과격한 비판으로 화살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보수언론은 노조조직율의 저하를 앞세웠으며 귀족노조화를 꼬집았다. 상호간 갈등을 부추긴 셈이다. 반면 한국일보는 ‘노조조직율 저하와 정부의 불통·노동정책’을 동시에 지적하는 논조를 보였는데 ‘모두 다 그를 수 있다’는 화쟁정신이었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갈등을 해소하게 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중립적 기사가 진영논리에 길들여진 독자에게 먹혀들어 가진 않을 밋밋한 기사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과제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만, 내것만 옳다’는 종교갈등에서부터 화쟁 정신 필요
-한위원장 처리, 종교인과세, 이슬람 배타 등 종교내 진영논리 깊숙이 도사려

 
종교계가 모처럼 얻어낸 사회갈등해소와 화합의 장은 일부 진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깥사회의 문제는 중재하면서도 종교간, 종단내 갈등과 다툼에선 ‘제것만이 옳다’는 입장이 견고해 그 설득력과 파장력이 약해지게 된다. ‘모두가 다 옳을 수 있다’는 화쟁정신이 종교안에서 발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계사에 피신 중이었던 한 위원장에 대한 처리를 놓고도 불교계 내에서는 보혁 진영의 이견이 있었다. 종교계의 보혁갈등과 정치·사회의 진영다툼이 맥을 같이 함으로써 화쟁정신은 집안에서 공염불이 되었다. 최근 조계종 출가자 연령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불교 청년들이 ‘조계종 아닌 경로종’ 등을 운운하며 노청(老靑) 갈등을 유발했다.
 
개신교단체는 KBS가 12월 9일부터 3부작으로 이슬람의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자 “KBS가 이슬람 문화를 옹호 조장한다”며 국민을 기만했다는 논평을 내 종교간 반목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엇다. 또 다른 개신교 단체는 '2천700조, 할랄푸드 시장‘을 잡기 위한 정부차원의 할랄산업 육성에 반대해 전북 익산 할랄식품 테마단지 조성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거짓 기부금영수증 발급해 국세청이 종교단체 60곳의 명단을 공개하는 상황에서 47년만의 종교인 과세 입법화에 대한 종교내 찬반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여타 종교계가 '종교인 과세'에 긍정적인데 반해 개신교 내부에서 보혁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눈치를 보는 정치인은 “신앙인이 하나님과 부처님께 바친 돈에 까지 세금을 물린다면 저승에 가서 무슨 낯으로 그분들을 보겠느냐”고 항변하기까지 하는 코메디를 연출한다. 종교내 진영갈등에 정치사회도 덩달아 물들고 있는 상황이랄 수 있다.
 
갈등과 불통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진영논리인데 종교가 그 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만, 그리고 내것만 옳다’는 종교갈등에서부터 화쟁정신이 필요하며 그래야 종교는 물론 사회의 진정한 평화정착이 이루어질 것이다.(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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